특판사람들(창고대바겐세일)의 세계
길 한복판 큼직한 글씨로 다가오는 전단지속에는 상상 불허의 메이커 가격들이 적혀 있다. 유명브랜드신발 가격이 단돈 1,000원부터 시작, 양복 한 벌의 가격이 1만원. 예전 ‘천원 더’를 외치며 광고하던 인터넷 경매 쇼핑몰을 생각나게 하는 가격파괴시스템 들이다. 광고 속 안내대로 호텔 연회장을 들어선 순간 500여 평의 풍경은 행사장을 가득 메운 스포츠 의류, 골프웨어, 등산용품, 숙녀복, 신사복, 아동복 등 유명 메이커에 관심을 보이는 손님들의 입에서 “싸다!” 라는 탄성과 가격흥정으로 뒤엉킨 행사장 풍경은 ‘싼게 비지떡’이란 속담을 잠시 비켜가게 만든다. 그 현장에 들어가 보자.


특가판매업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1997년 이전 특가판매장을 피하던 소비자들이 질 좋은 상품과 이월브랜드 상품들로 꾸준한 저가의 고품질 상품 판매 방식에 관심을 보인 가운데 2000년 초부터 흑자를 본 사업이 되었다. 예전에는 ‘땡처리’로 불려졌지
만 현재 특가판매업 종사자들은 ‘특판원’으로 불려지기를 선호한다.

특가판매가 초창기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로 백화점에서 3만~4만원에 판매되었던 나이키, 아디다스, 필라 등 고급 브랜드 모자가 단돈 1,000원, 유명 골프복 바지 한 벌에 5,000원이라는 가격 제시에는 ‘가짜가 아닐까’, ‘물건에 하자가 있나’ 식의 의심 때문에서였다.


틈새시장을 노린 특가 판매
금융위기 당시 도산한 의류 업체들의 물건을 다량으로 내 놓으며 질 좋은 상품을 확보한 특판 업체들에는 현재 인터넷·TV 홈쇼핑, 백화점에 반품 혹은 재고 물품, 품질과 디자인에서 우수한 저가 브랜드 등이 이들의 판매 전략 대상이다. 특가 판매원이 만약 바지 한 벌을 1만원에 팔고 있을 경우 최고 70%의 이익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물건의 매입 방식을 개발한 그들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모든 특판 들이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재고 물품을 준비하지 못한 이들과 중국에서 장보고의 후예를 칭하며 저질 상품을 무분별하게
들여온 업자들 역시 현명해진 소비자들을 속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장을 찾는 손님들의 반응을 들어보면 대부분 “제품이 싸서 보통 한 벌 가격으로 4~5벌을 구입할 수 있어 가격에 만족스러움을 느낀다. 싸다고 품질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써보면 의심은 말끔히 사라진다” 며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일부 소비자들은 “물건이 싸다는 생각에 분별없이 물건을 다량 구매해 평상시보다 지출이 많고 사후관리(A/S)가 안 된다”는 불평을 하고 있다.


창고바겐세일 이렇게 만들어 진다
일반적으로 창고 대 바겐세일, 염가특가판매 등의 문구로 열리는 행사장의 시작과정은 이벤트 팀장이라 불리는 업체사람들의 움직임으로 막을 연다. 이벤트 팀장은 행사장 장소의 물색과 함께 특판 업체 중 물건의 질이 좋거나 다양한 품목을 보유한 회사들의 리스트를 가지고 참여, 현황을 조사한다. 조사가 완료됨과 동시에 기간에 맞춰 팀장들은 장소 임대비용을 지불하고 특판 업체에 물건의 종류와 인기도에 맞는 자리를 정확히 분배해 준다. 이후 한 행사에 모인 50개 이상의 업체들은 행사 전일 배정받은 자리에 맞는 의류상품들을 전시한다.

보통 물건의 수량은 2.5톤 트럭을 기준으로 여름철은 1대 분량을 운반하고 겨울철은 옷의 부피가 커진 만큼 2~3대 분량의 물건을 운반, 전시 후 소비자들에게 판매가 이루어지게 된다.


행사장 하루 매출액 일반 과장직 1년 연봉
행사장의 하루매출액은 일반인의 상상을 불허한다. 보통 호텔과 같이 1,000여 평의 규모를 보유한 장소에서 100여개 업체가 모여 판매할 경우 한 행사장에서 3,000만원에 육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시기적으로 명절이 가까울수록 행사장 하루 매출액도 1억원을 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게 종사자들의 얘기다.

이러한 행사장의 매출에 매료되어 특판 산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중도에 탈락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경험 없이 이 분야에 뛰어든 이들은 앞서 말한 이벤트 실장의 리스트에 올라있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장소와 업체를 선정하는 실장들의 리스트에 들기 위해선 관련 업체에 종사하며 3~4년 정도의 판매 방식을 익히고 업종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를 가져야만 실장의 리스트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특판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스포츠 물품, 숙녀복, 신사복, 골프웨어, 란제리 등 잦은 물품 변경으로 상품 관련 노하우와 한 품목의 깊이 있는 패션 감각을 키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려는 욕심으로 저가의 질이 낮은 상품을 취급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처음 출시 당시 고객들이 싼 가격에 현혹되어 구매할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고객들이 저질 상품으로 인하여 물건 판매현황은 줄어들게 되며 전체 행사장 이미지 역시 떨어트려 결국 업종을 유지 할 수 없게 된다.


행사장의 불청객 손님들
특가 판매장의 규모와 물품의 수, 유동인구와 판매사원간의 비율을 놓고 볼 때 보안 분야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한 업체당 4명 정도 배치돼 있지만 인기 품목의 경우 한 순간 몰려드는 20~30명의 구매자들을 감시하기란 속수무책이다. 또한 일부 청소년의 경우 이런 행사장에 팀을 이뤄 돌아다니며 일부는 물건을 고르는 척 하며 일부는 물건을 몰래 가방에 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적발 시에도 이들은 일관적인 답변으로 “재미로 그랬어요. 다른 애들도 다 그래요”라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또 “돈 주면 될 거 아니에요. 집에 전화하면 엄마가 줄 거예요”라며 죄책감을 못 느끼고 있다고 전한다. 또한 주부들의 경우 예외 없이 탈의실에서 새 옷으로 몰래 갈아입고 헌옷을 두고 가버리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현재 서울에만 특가판매업 종사업체의 수는 최소 630개 업체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한 업체당 2명 이상의 사람들이 3년 내 독립하여 신생 업체로 자리매김하지만 1년 내 100개 이상의 업체들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라면 필히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특가판매의 제왕들 제2의 이랜드 전설을 꿈꾼다

제2의 이랜드 신화를 창출하기 위한 특가판매 업체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메르제니’라는 고유 브랜드를 만들어 현재 백화점 및 할인마트에 납품을 시작한 부흥유통의 권상대표를 찾아 도태되는 특판 업체와 성공하는 업체와의 차이점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연금매장 형식의 슈퍼마켓을 운영하다 백화점에 납품을 하며 특판 세계에 들어섰다는 권 대표는 이 분야에서만 10년 이상 잔뼈가 굵은 베테랑 사업가다.

1년 전부터 ‘메르제니’라는 고유 브랜드를 만들어 40~50대 중·장년층 여성들의 패션 이미지에 맞는 브랜드의류로 성장하고 있다. 현재 4개의 직판장을 자체 보유하고 특판 행사장, 백화점, 마트에 입점해 판매를 통한 브랜드 영역을 넓히고 있으며 9월 오픈을 목표로 온라인 쇼핑몰을 준비 중이다. ‘메르제니’란 브랜드는 ‘그랑메르제니’라는 장미과의 꽃에서 착안했으며 화려하고 기품이 있어 40~50대 중장년층을 잘 표현하는 컨셉트라며 “자체 브랜드 개발에 앞서 누구를 겨냥할 것인가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고 권 대표는 말문을 열었다. 자신과 같이 자체 브랜드를 보유한 특판업체는 서울에만 9개 업체 정도이며 그중 3개 업체가 본사와 같은 라인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 대표는 “10여년 이상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와 기술로 판매 대상이 지향하는 패션을 알 수 있게 됐고 현재와 미래의 중장년층 여성들이 원하는 스타일을 예상할 수 있는 단계여서 브랜드를 창출 할 수 있었다”며 출발하는 업체들이 꼭 알아야할 판매 전략에 대해 설명했다.


노하우가 발전의 지름길

1.타잔 줄타기 식으로 업종변경
특판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을 당시부터 직접 현장에서 뛰며 판매 과정의 변화를 지켜본 그는 “업체가 선택한 판매 물품이 소비되지 않는다고 스포츠 의류업, 아동복, 신사복, 숙녀복 등 잘 팔릴 것 같은 물류로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며 “한가지라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실패의 지름길로 이어진다”며 업종의 노하우 중요성을 강조했다.

2. 중국산 싸구려 물건은 피하자
그는 저질 물품을 싸게 선보이며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인물이 있다며 요즘 소비자들은 절대 구입하지 않는다며 결국 한국에서 팔지 못한 싸구려 물건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중국이나 후진국에 역수출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3. 노력하는 자만이 성공한다.
또한 하루의 일정이 오전 10시 30분부터 저녁 9시에 영업이 끝나지만 다음에 더욱 발전된 상품 판매를 위해 잘 팔린 물건을 파악하고 물건을 사지 못한 손님은 어떤 스타일은 원하고 있었나를 면밀히 기록해 다음 행사 때 꼭 참고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보유한 상품의 태마를 두자
숙녀복을 판매한다고 계절의 유행 스타일로만 일괄적으로 보유하거나 잘 팔릴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비슷한 스타일로만 진열하는 사례들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면은 전문성이 있어 보일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찾는 손님들이 일괄적인 스타일만 고집하지 않고 개성 있는 연출을 원하는 현대인의 특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권 대표는 마지막으로 “확실한, 준비된 자만이 위의 기본적 4대 요소를 바탕으로 특판 사업을 준비·운영한다면 한시적인 직업이 아닌 발전성을 보유한 직업으로 성공할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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