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화그룹 어디로 가나?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헤엄친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좌우명이다. 그런데 너무 실감나게 물을 거슬러 헤엄쳤다. 이번 김 회장의 술집종업원 보복폭행 사건을 지켜본 시민들은 마치 자신의 자식 또는 형제가 폭행당한 듯한 분노와 거부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경찰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사건의 종착점을 예견할 수는 없지만, 폭행사건으로 한화그룹은 그동안 쌓아왔던 명성에 먹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룹 전체에 위기가 닥쳐왔다. 당장 사활을 걸고 시작했던 글로벌 전략의 일환인 5억 5,000만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대형화학 계획도 무산될 위기이며 유럽, 중국, 베트남 등 보험업의 해외 진출도 어렵게 됐다. 중국에 설립을 검토하던 한화석유화학도 일정을 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한화그룹에 대한 반감은 돈을 주고도 해결할 수 없다.
또 김 회장이 사법처리를 받게 된다면 법적으로 일부 계열사의 대표이사직 유지는 불가능하며 유지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사회적인 비판을 받고 있어 당분간 경영권 유지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김 회장은 항상 입버릇처럼 “명예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며 명예를 욕되게 하면서까지 사업을 할 생각은 없다”고 말해왔다. 그룹 회장 개인 뿐 아니라 그룹의 향배를 읽게 하는 중요한 함의(含意)가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한화는 창사 이래 최악의 사건에 휘말렸다. 글로벌 뉴 한화를 내걸고 직원들에게 변화를 강조하며 대대적인 CI선포식을 가졌던 한화그룹의 절대적 경영자인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쓰나미가 덥쳐 들었기 때문이다. “의식부터 경영체질까지 대변혁하자”고 요구했던 회장 스스로가 가장 변혁하지 못했다.


기업통합 이미지작업에 500억 투자

새 기업통합 이미지(CI) 선포식은 100년의 원대한 꿈을 품고 새롭게 태어나자는 글로벌 뉴 한화라는 모토로 신뢰(trust), 존경(respect) 혁신(innovation)을 뜻하는 세 개의 원이 만나 제조, 건설, 금융, 서비스 레저 등의 주력사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한화가 투자한 금액만 300억~500억원으로 추산된다. 보험업 유럽진출과 한화 기업이미지 광고전에 대대적으로 투자한 몫이다.

특히 그룹 연매출 22조원 가운데 10%를 차지하고 있는 국외매출 분야를 2011년까지 40%로 끌어올리고 상반기 중 대한생명과 중국의 합자파트너를 선정해 국외진출을 모색하고 있던 터였다.

또 유럽 및 중동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영국 런던의 현지 법인 설립 추진, 총 5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사우디 아파비아 플랜트 건설공사의 하반기 공식체결을 앞두고 있었다. 이런 해외경영전략의 강화와 맞물려 한화종합화학㈜와 ㈜한화갤러리아, 한화테크엠㈜, ㈜드림파마, 한화건설 등 5개 주요 계열사의 등기이사를 맡아 경영전면에 뛰어 들었다.

김 회장의 영향력은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주) 한화 지분의 22.64%를 보유하고 있어 독보적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가해자 신분으로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실형이 선고될 경우 그는 당장 한화건설의 대표이사 자리를 유지할 수 없으며 보험업의 임원자리도 위태롭다. 대표이사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그러나 한화는 김 회장의 카리스마 경영에 길들여져 그룹차원의 경영지원 뿐만 아니라 후임 경영자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의 경영공백은 마치 뿌연 안개에 싸인 듯 한화의 불안한 미래를 암시하는 듯하다. 한화의 대위기설에 재계 전문가들은 수긍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번 사건으로 지금까지 쌓아왔던 기업 이미지도 만회하기 힘들어 보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는 김 회장이 가야 할 곳은 전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듯 긴 자숙의 시간을 가질 만한 암자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돌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김승연 회장 그는 누구인가?

‘의리파’, ‘다이너마이트 2세’, ‘보스형 총수’ 라고 불리는 김승연 회장. 스스로도 자신을 ‘재계의 깡패’라고 말한다.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 불같은 성격으로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의리를 중요시하고 그에 못지않게 권위적인 면도 갖고 있다.

회사 내에서는 그의 성품과 관련된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의 집무실에 걸려있는 김기창 화백의 군마도라는 작품에서 말이 몇 개인지 아는 사람은 한화 그룹의 부회장과 김 회장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른 임직원들은 고개를 조아리느라 그림을 볼 수 없다는 것.

이 같은 성격은 급작스럽게 그룹을 떠맡게 되면서 시작됐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 1981년 부친 김종희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29세에 회장직에 올랐다. 그때부터 자신의 나이가 어려 권위가 서지 않을까 걱정했으며, 나이가 들어보이게 하기 위해서 지금의 올백 머리를 고수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어딜 다니든지 임원들과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다니면서 자신의 세를 과시했다는 것이다. 회의 때 담배를 피우던 전직 장관 출신 계열사 사장에게 재떨이를 집어 던졌다는 일화는 그의 저돌적이고 직선적인 성격을 말해주는 단적인 예로 알려져 있
다.

합리적인 절차보다는 힘을 앞세우는 독단적 캐릭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나타났다.

1993년 외화를 빼돌려 미국에 호화주택을 구입한 혐의로 57일간 감옥살이를 한 적이 있으며 동생인 김호연 빙그레 회장과 재산 분배를 둘러싸고 4년에 걸친 31번의 재판으로 형제간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또 2004년에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되던 중 미국으로 7개월간 도피했었으며 대한생명 인수를 놓고 87억원 비자금조성 로비의혹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는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보스의 기질이 회사와 직원들에게는 카리스마로 보이기도 했다. 외환위기 때 한화에너지를 팔면서 수십억원의 피해가 가도 좋으니 고용승계를 해달라고 부탁한 것을 두고 “그래도 우리 보스총수” 라는 믿음을 줬던 것. 또 90년대 후반 계열사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김 회장과 친분을 쌓은 한 간부가 타계하자 빈소에서 8시간이나 목 놓아 통곡을 해 주변을 놀라게 한 것 때문에 회사 내 김 회장의 평가는 그리 인색하지만은 않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되새겨야

사업적 수완도 김 회장의 평가를 후하게 한다. 외환 위기시절 추진하던 정보통신 등 신규 사업이 좌초하면서 한화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선친인 김종희 회장에게 물려받은 한화에너지, 한화 기계와 그가 가장 아꼈던 경향신문 등을 줄줄이 매각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고자하면 죽는다는 글귀를 모토로 삼아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성공했다. 이후 1년 동안의 노력 끝에 99년 9월 협조융자를 다 갚고 그는 2002년 대한생명 인수에 성공하면서 취임 당시 5,846억원인 한화그룹의 총자산을 61조원으로 104배 증가시키는 사업수완도 발휘했다.

김 회장의 이번 불미스러운 사건을 두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지근거리에서 김 회장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업수완이 좋고 의리 있으며 보스 기질이 다분한 그가 너무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그룹총재가 된 탓에 인격적인 부분을 다듬어줄 사람이 없어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즉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세 아들들에게 “내가 회장이 될 때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너희는 내가 지킬 테니 걱정할 게 없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미운 열 사위 없고, 고운 외며느리 없다”

‘미운 열 사위 없고, 고운 외며느리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특히 재계에서는 이러한 속담에 대한 징크스가 있는 듯하다. 남에서 다시 남이 된 며느리와 남에서 집안의 기둥이 된 든든한 사위들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신세계의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한때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고현정을 며느리로 맞이하는 순간부터 헤어지게 된 순간까지 한시도 그들과 관계된 이야기는 잠잠했던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신세계 정용진 부사장과 고현정에 관련된 루머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관심이 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03년 전격 이혼했다. 형식상 이혼사유는 ‘성격 차’다. 그러나 ‘정용진 부사장의 지나친 외도 때문이다’ ‘고현정에게 다른 남자가 있었다’ 는 각종 추측성 이야기가 나돌았다. 하지만 이혼의 결정적인 사유가 된 것은 포르쉐 사건이다. 고현정이 강남 압구정동에 있는 한강둔치에서 1억 7,000만원 상당의 포르쉐를 도난당하면서 차 안에 동승했던 남자가 있었다는 것. 그 후 정 부사장과 고현정은 위자료 15억에 합의했지만 고현정
이 센트럴시티 신세계를 합의금조로 요구했다는 등 시가 40억짜리 서울 인사동의 스타벅스를 받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돌았다. 어쨌거나 재계 20위권인 신세계는 며느리로 인한 금전적인 손실뿐만 아니라 기업 이미지에 심한 타격을 받았다. 애경가도 마찬가지다. 지난 1996년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은 94년도 미스코리아진출신 한성주 아나운서를 며느리로 맞이했다. 막내아들인 채승석씨와 결혼을 올린 것. 그러나 이들은 10개월만에 이혼했다. 이들의 이혼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짧은 결혼기간으로 인해 말 못할 속사정에 대한 초점이 맞춰졌다. 마찬가지로 애경가도 ‘지나친 시집살이’‘부부간의 성격차 ’라 루머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기업 이미지의 뼈아픈 손상이다.

하지만 잘들인 사위가 집안의 기둥이 되는 경우가 있다. 동양그룹이다. 동양그룹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의 장녀 혜경씨, 차녀 화경씨와 각각 결혼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현 회장의 경우 지난 1977년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하다가 동양시멘트 이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경영에 뛰어들었다. 외환위기 당시 심각한 부채에 시달렸던 동양그룹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그룹을 안정시켰다. 담 회장도 오리온그룹을 기존의 제과사업에서 유통·미디어·영화·외식 등의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10여년 만에 10배 넘는 매출 신장을 기록, 2004년 기준으로 2조원에 달하는 등 토털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현대가도 사위 경영이 탄력을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둘째 사위인 현대카드·캐피탈 정태영 사장이다. 카드 사태로 현대카드가 어려울 때 운영을 맡아 당장의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착실히 운영해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을 ‘동반 흑자’를 달성했다.

셋째사위인 현대하이스코 신성재 사장도 일등공신이다. 영업본부장 시절 1조원대에 머물던 연간 매출액을 사장으로 부임해 2조 3,000억원대로 끌어올려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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