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퀴벌레’, ‘연탄가스’ 실검 순위 오를수록 ‘역풍’
- 지방선거 나서는 한국당 후보, ‘죽을 맛’ 한탄

 
홍준표 대표는 항렬상 나의 아저씨뻘이다. 기자의 부친이 ‘표’자 돌림이기 때문이다. 최근 술자리 가면 자주 듣는 농담이 “어르신 좀 잘 보필해라”는 식이다. 제1야당 대표라는 위치가 무색할 정도로 집권 여당을 견제하지 못하고 차기 대권을 노리는 인사로서도 함량 미달인 것에 대한 질타다. 국회출입한 지 오래됐고 정치부장으로서 받는 일종의 조롱도 섞여 있다.
 
서울시에 출마하는 기초의원 후보를 만나는 자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최근 홍 대표가 중진들을 향해 ‘연탄가스’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인재영입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홍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 등 인재영입에 지지부진하자 중진 의원들이 들고 일어섰다. 정우택 전 원내대표는 “홍준표 대표가 직접 출마하라”고 압박했다.
 
이에 대해 홍 대표는 “한 줌도 안 되는 그들이 당을 이 지경까지 만들고도 반성하지 않고 틈만 있으면 연탄가스처럼 비집고 올라와 당을 흔드는 것을 이제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바로 ‘연탄가스’ 발언이다. 조기 전대를 개최해 재출마하려는 홍 대표와 차기 당권을 노리는 중진들의 정치적 공방이다. 차기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당권을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가 짙게 깔려 있다.
 
참으로 제1야당으로서 면이 안 서는 공방이다. 자신의 당 소속이었던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간 상황이다. 지지율도 2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정권을 빼앗긴 인사들이 보여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문제는 당 대표와 중진이 자신들의 정치적 셈속으로 공방을 벌이는 동안 자유한국당 후보로 지방선거에 나서는 인사들은 죽을 맛이다. 서울시 시의원에 출마하는 이 인사는 “우리 동네는 음식점이 많은데 특히 연탄에 고기를 구워주는 집이 상당수”라며 “저녁에는 주로 음식점을 방문해 선거운동을 하는데 홍 대표 ‘연탄가스’ 발언 때문에 소주병이 날아올까 봐 일정을 취소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이 인사는 “가뜩이나 선거 환경이 불리한데 당의 간판인 홍 대표의 절제되지 않은 말 때문에 현장에서 뛰는 선수들만 죽을 맛”이라며 “우리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인사는 서울에 출마하는 후보들과 함께 현 지도부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낼 계획도 갖고 있다며 시기를 조율 중이라고 했다.
 
기초의원만 그럴까. 수도권 광역단체장에 나서는 후보 캠프 역시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여당 후보가 누가 나와도 여론조사에서 야당 후보가 지는 상황이다. 당 대표의 거친 언행이 문제다. 희망적 비전이나 공약을 제시하기보다는 해명하기에 바쁜 게 현실이다. 사실상 홍준표 대표 체제로 지방선거를 치르면 필패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홍 대표의 거친 언사로 지방선거가 유리하게 돌아가는 게 여권 입장에서도 마냥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민주당 충남지사 경선이 대표적인 예다. ‘경선승리=당선’라는 공식이 팽배한 선거환경에서 아군이 적이 된 케이스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의혹 사건’이 먼저 터졌지만 유력했던 박수현 전 충남지사가 ‘내연녀 문제’로 중도하차하는 데 기여한 것은 같은 당 소속 경쟁자의 측근 폭로가 한몫했다.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는 나서지도 못하고 있을 정도로 여당 분위기가 좋았다.
 
서울시장 선거도 마찬가지다. 한국당이 홍정욱 전 의원, 이석연 전 법제처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병준 전 부총리까지 홍 대표가 접촉한 인사들은 모두 출마를 고사했다. 제 1야당이 제대로 된 후보를 내지 못하고 있자 경선만 이기면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취해 여당은 너도 나도 출마했다.
 
막강한 야당 후보가 존재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대가로 서울 시장 후보에 출마한 민병두 의원, 정봉주 전 의원 등이 ‘미투 운동’의 타격에 중도하차했다. 서울시장 출마를 안 했다면 사면을 받지 않았다면 과연 그런일이 터졌을까. 민주당의 유력한 인물 4명의 정치적 생명이 끝이 났다.
 
홍 대표의 거친 언행이 여당에게 ‘약’이 아닌 ‘독’이 된 경우다. 흥행한 영화를 봐도 ‘실력 있고 멋있는 악당’이 있어야 주인공도 빛난다.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배트맨 시리즈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역을 맡은 ‘히스레저’가 없었다면 배트맨의 존재감도 빛나지 않았을 것이다.
 
제 1야당이 제대로된 견제나 인물을 내세우지 못하면 여당은 오만해질 수밖에 없고 제2의 안희정, 박수현, 민병두, 정봉주 사건이 터져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왜냐면 선거는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총성 없는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다시 홍준표 대표다. 홍 대표의 거친 언사가 김성태 원내대표와 장제원 대변인과 함께 막말 트리오를 형성하면서 힘이 빠지는 사람들은 지방선거 현장에서 뛰는 선수들이다. 오죽하면 같은 당 선수들조차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이 한국당 경선에서 탈락한 후보들 ‘이삭줍기’에 나서는 것에 대해 이해할 정도다.
 
당 중진들은 홍 대표에게 4가지를 공식 요청했다. ▲ 최고위원 보임을 통한 정상화 ▲ 지지율 제고 대책 제시 ▲ 대표의 언행 자제 ▲ 인재 영입 전력 투구다. 하지만 선수들 입장은 다르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자신의 지역구에 홍 대표와 같이 서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모습이다. 홍준표 대표 체제가 물러나고 지방선거를 위한 비대위 체제로 전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 중진들의 ‘홍준표 서울시장 출마론’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이 맞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명확하다. 60여 일 남은 지방선거에서 ‘홍준표 간판’으로는 희망이 없으니 나서지 말라는 얘기다. 야당이 살아야 여당이 산다는 말에 홍 대표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더 이상 보수의 ‘마이너스 손’이 돼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