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확인농협 인테리어공사 회장 친척이 ‘독식’

“농협은 자체가 파워다. 전국 각지에 조직이 있어 농협이 힘이 센지, (대통령인) 내가 힘이 센지 아직 모르겠다.”
지난 2003년 2월 4일,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전국 순회 토론회를 가진 노무현 대통령은 강원지역 대토론회에서 거대공룡 농협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노 대통령의 표현대로 현재 농업협동조합중앙회는 설사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졌다. 심지어 정부의 주무부처인 농림부마저 “농협이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대해졌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이에 본지는 기획시리즈를 통해 농업협동조합중앙회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한다.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정대근 회장이 지역농협 인테리어 설치 및 시공을 자신의 친인척인 정모씨에게 78차례에 걸쳐 몰아준 사실이 본지를 통해 단독 확인됐다.

문제의 업체는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에 위치한 ‘W’기업으로 건축자재와 실내건축공사를 주 업무로 하고 있다. 지난 2001년 9월 20일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에서 ‘H’라는 상호로 건설업 등록을 한 이 회사는 이후 7차례에 걸쳐 상호명과 소재지, 대표자를 수시로 변경했다.

특이한 점은 ‘H’업체가 건설업 등록을 한지 5개월도 채 안 돼 대표자와 소재지가 한차례 바뀌었으며, 약속이라도 한 듯 그로부터 5개월만인 지난 2002년 7월 18일 문제의 정모씨가 대표자로 재 변경됐다. 이때 자연히 상호명도 ‘H’에서 ‘A’로 바뀌었고, 지난해 1월 16일 현재의 ‘W’로 재변경해 주로 농협관련 인테리어 공사 및 환경개선공사, CI집기 설치, 365자동코너를 독점해오는 특혜를 누려왔다.

‘W’가 직접 작성한 주요 공사실적에 따르면 ‘W’는 지난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무려 54차례나 농협지점의 인테리어 공사를 했고, ‘W’의 자회사인 ‘K’건설 또한 지난 1년간 총 24건의 농협관련 시설공사를 했다. 더욱이 ‘W’는 지방업체임에도 ▲서울 ▲경기 ▲충청 ▲경남 ▲강원 ▲전남 ▲전북 등 전국 농협지점을 두루 ‘섭렵’했다는 점에서 이목을 집중시킨다.


동생이 아닌 친인척

‘정대근 회장 친인척 특혜 논란’은 지난해 8월, “농협교류센터가 농협 실내인테리어 사업을 진행하면서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의 친동생인 정모씨에게 하청 독점권을 부여했다”는 한 지역농협 모 조합장의 양심선언에 의해 물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두 사람이 형제관계라는 것을 입증하기란 어려웠다. 본적 자체가 정대근 회장의 경우 경남 밀양이고, 정모씨는 광주광역시로 되어 있다. 심증은 굳건하지만 물증이 잡히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 셈.

이는 농협중앙회가 의혹투성이인 정모씨와 ‘W’업체에 대해 “정○○이라는 사람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고, W업체에 대해서도 오늘 처음 들었다”며 “정씨라고 해서 모두 정대근 회장님과 관련된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고 강력하게 발뺌할 수 있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봐도 봐도 풀리지 않는 듯했던 수수께끼는 의외로 싱겁게 풀렸다. 그것도 ‘회장님’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곳으로부터 두 사람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 관계자는 정모씨에 대해 “알려진 바와 같이 정대근 회장님과 친형제거나 사촌지간은 아니다”면서도 “먼 친척뻘로 정 회장님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농협중앙회 문화홍보팀과 다시 접촉하자 그때서야 홍보팀 관계자는 “저번에 말했던 바와 같이 정○○와 회장님과의 관계는 (기자를 통해) 처음 들었다”면서도 “홍보팀에서 가지고 있는 내부 자료에 따르면 정대근 회장님과 정모씨가 안면이 있는 사이일 뿐 친인척 사이인 것까지는 나와 있지 않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였다.

특혜 논란과 관련, 당시 리모델링 입찰을 했을 때 자료를 보여줄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문화홍보팀 관계자는 “그것까지는 알려줄 수도 없고 설사 자료가 있다고 해도 내부적인 것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외부에서 거기까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어느 기업체라도 검찰이 압수 수색영장을 가져와서 하면 모를까 내부적인 사항을 언론에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이에 따라 검찰의 수사야 말로 ‘정대근 회장 친인척 특혜 논란’을 둘러싼 해묵은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최후의 열쇠로 떠오를 전망이다.



#정대근 농협회장 활동 본격 재개

3억원의 뇌물을 받고도 법원으로부터 무죄선고를 받은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이 최근 대외활동을 재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법원이 돈을 받은 것 자체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린 것이 아니라, 농협임원을 공무원으로 볼 수 없다는 해석에 따라 무죄판결을 내린 상황에서 정 회장의 공식 활동 재개는 부도덕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2월 27일 강원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는 자리에 참석, 후원금 10억원을 김진선 강원도 지사에게 직접 전달했다.

또 지난해 11월 9일에는 강원 평창에서 열린 1사 1촌 결연식에 참석해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 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으며, 이보다 앞선 3일에는 경기 고양 농협대학 야구장에서 농촌사랑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농촌사랑음악회’에도 참석했다.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가 지난 8월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정 회장은 현재 법적으로는 비상임 회장 자격을 유지하고 있으나 농업계의 여론 때문에 그동안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농업계 일각에서는 ‘정 회장이 경영 복귀를 서서히 시도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에 농민단체들은 정 회장이 스스로 사퇴할 것을 요구하며 1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회장님 퇴진 요구하니 자금지원 회수”

농협중앙회와 지역농협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지난 2월 법원의 무죄 판결로 풀려난 정대근 농협중앙
회장에 대해 전국농협노동조합이 ‘정대근 퇴진투쟁 1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자, 농협중앙회가 ‘발끈’하고 나선 것.

농협중앙회의 야심찬 ‘회장님 구출작전’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나뉜다. 하나는 전국농협노동조합 간부가 소속된 지역농협에 대해 ‘무이자 지원 자금’을 회수해 목줄을 옭아매는 수법이다.

최근 농협중앙회 경남지역본부는 3개 지역농협에 ‘전체 농협의 신용도와 공신력을 실추해 지원 자금을 회수한다’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내 지난 12일자로 지원 자금을 회수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3개의 지역농협은 모두 노조간부가 소속된 곳이었다.

이번에 자금 회수를 요구받은 ㄷ농협의 경우 신종원 울산경남본부장이, ㅅ농협에는 정재우 울산경남본부 사무국장이, ㅇ농협에는 서필상 농협노조위원장이 몸담고 있다. 이들은 각각 농협중앙회로부터 무이자 지원 자금 28억원, 15억원, 19억원을 받고 있었다.

이에 농협노조 울산경남본부는 지난 12일 지원 자금 회수 방침 철회를 촉구하는 자리를 마련, 농협중앙회의 ‘보복성 처사’에 대해 조목조목 반발했다.

이날 본부 측은 ▲공문에서 해당 농협이 ‘전체 농협의 신용도와 공신력을 실추’시킨 구체적인 사유를 찾아볼 수 없는 점 ▲대부분의 지역농협이 농협중앙회의 무이자 지원 자금을 받고 있는 점 ▲해당 농협에 대한 자금 회수기한이 1~8개월 남아있는 점 등을 들어 중앙회의 방침을 ‘회유와 압력’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보복성 처사’라는 지적에 휩싸였음에도 농협중앙회의 ‘회장님 지키기’는 끝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대근 수호대’는 지난 2월부터 ‘정대근 회장 즉각 퇴진 1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농협노조에 대해 최근 서울중앙지법에 ‘회장퇴진 서명’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농협중앙회 측은 가처분신청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정대근 현 회장이 1심에서 이미 무죄판결을 받았는데도 전국농협노조가 서명운동 등으로 잘못된 여론을 형성하려는 것은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가처분신청서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노조는 “정 회장이 1심으로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 회장은 법률적, 도덕적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맞섰다.

한편, 대검 중수부는 지난달 5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대근 회장이 ‘농협 임직원에게는 특가법상 뇌물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서울중앙지법 측의 판결에 불복해, 지난달 7일 항소장을 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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