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4세들 대량지분 매입 내막

가족 간의 혹독한 내분으로 ‘족벌경영’의 단점을 그대로 드러냈던 두산그룹이 최근 들어 부쩍 오너 일가의 회사 장악력이 커져가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두산 그룹은 지난 2월말 이사회를 통해 박용성 전회장을 등기이사로 복귀시킨 데 이어 오너 4세들이 (주)두산의 지분을 대거 사들였다. 오너 4세들이 이처럼 계열사 주식을 대거 사들인 것은 지난해 8월에 이어 두번째다.
이에 대해 두산그룹 측은 순환출자구조를 끊고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한 중간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재계에서는 여기에 경영권 승계라는 또 다른 속사정이 맞물려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난달 2월 24일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사장 등 오너가 4세 10명은 두산산업개발이 보유 중이던 두산 지분 7.2%(171만주)를 인수했다. 매입 금액은 주당 5만4,000원(당일 종가 기준)으로 총 923억원에 달한다. 이들은 지난해 8월에도 334억원을 들여 두산산업개발이 보유했던 (주)두산 주식을 일부 매입한 바 있다.

표면적으로는 오너 4세들의 계속된 (주)두산 지분 매입은 장기적인 로드맵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내년 말로 예정돼있는 (주)두산의 지주회사 전환과 관련된 작업이기 때문이다.

두산 그룹은 작년 1월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선안 로드맵’을 발표하고 그룹 회장제를 폐지해 오너경영을 막는 것과 동시에 전문경영인(CEO)을 영입해 계열사별로 책임경영을 강화한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주)두산은 앞으로 두산엔진, 두산인프라코어가 보유한 두산 지분(8%)만 추가 취득하면 ㈜두산→두산중공업→두산산업개발→㈜두산으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구조를 끊을 수 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주)두산의 주가는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오너들의 주식 매입을 단순히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서만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지주회사로 바뀔 ㈜두산 지분이 늘어나 그룹 경영권을 쥘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증권가 관계자는 “이번 두산그룹 오너 4세들의 주식 매입은 경영권 승계와 맞닿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그동안 가족 경영을 지켜온 두산그룹의 특성이나 분식회계 등으로 비난여론을 맞은 박용오, 박용성 등 3세들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경영권 승계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이들 4세들이 조만간 경영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현재 두산그룹 4세들 중 경영일선에 나서고 있는 인물로는 3세의 맏형인 박용곤 명예회장 장남인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과 차남인 두산중공업 부사장, 박용성 전회장의 장남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등이 있다. 이번 지분 획득으로 이들을 비롯한 10명의 4세들이 그룹 내에서 입지가 강화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족벌경영 폐해를 가장 뼈저리게 경험한 두산그룹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금 족벌경영으로 복귀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전회장 복귀는 ‘왕의 귀환’

이같은 조짐은 비단 4세들의 지분매입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이사회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된 박용성 전회장의 움직임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박 전회장은 이사회가 열리기 전인 지난달 10일 한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은퇴한 것도 아니고 주식 한 주도 팔지 않았는데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주주인데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는 박 전회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한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사회가 끝난 후에 두산 측에서는 “당분간 스포츠 외교에만 전념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길 것”이라고 했지만, 박 전회장이 경영복귀의사를 밝힌 만큼 시간이 지남과 동시에 박 전회장의 복귀는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 측도 3세들의 경영일선 복귀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 분위기다.

두산 측 관계자는 4세들의 지분매입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3세들도 정정하기 때문에 그런 추측을 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이는 두산그룹 3세들이 여전히 경영일선에 나설 의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듯한 발언이다.

사실 두산그룹은 ‘형제의 난’이 터지기 전까지는 ‘가족경영’의 모범사례로 꼽혀왔다. 이는 두산그룹 박두병 초대회장이 강조한 ‘공동 소유, 공동 경영’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분식회계 등으로 불거진 두산그룹의 ‘족벌경영’논란은 아래 세대로 내려갈수록 분쟁의 소지를 많이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3세까지는 순환하며 공동경영 원칙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4세들이 15명(미성년자 5명 포함)에 달해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형제의 난으로 깊어진 감정의 골이 자녀들 세대에서 다시 불거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때문에 두산그룹이 어떤 식으로 경영권 승계를 이뤄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두산오너 책임경영론 시대착오적 발상”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8일 두산중공업 주주총회관련 기자간담회를 갖고 “두산중공업의 주식을 1주도 가지고 있지 않은 박용성 전회장과 박용만 전부회장이 경영복귀 명분으로 대주주 책임경영론을 제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따라 연대는 이날 산업은행과 국민연금관리공단을 비롯한 60개 기관투자가와 800주 이상을 소유한 760명의 국내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협조를 권유하는 문서를 발송하는 등 오늘부터 두산중공업 주주들을 대상으로 의결권대리행사를 위한 위임권유에 들어갔다.

연대는 이와 함께 두산중공업 주식 12.58%를 보유한 산업은행에 대해선 “국책은행이면서 공적인 기관투자가로서의 역할에 따라 두산중공업 이사후보에 대해 반대 의사표시를 해 달라”며 김창록 은행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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