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지주 라응찬 회장 ‘황제경영’

17년을 이어온 신한금융지주의 라응찬 회장 체제가 최소 3년간 연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써 라 회장은 1991년 신한은행장에 오른 이래 17년간 CEO 자리를 지키는 초유의 진기록을 세우게 됐다. 지난 2월 15일 이사회에서 신한금융지주는 라응찬 회장과 이인호 사장을 재추천하고, 신상훈 신한은행장 등 3명을 새로운 등기이사로 추천했다. 그러나 최근처럼 급변하는 국내외 금융 환경 속에서 금융업계의 보기 드문 신한금융지주의 ‘1인 장기집권체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라응찬 회장의 장기집권에 대해 “금융사 CEO로 3년 임기를 채우기도 쉽지 않은 환경에서 무려 17년이나 신한에서 CEO를 역임한 것은 신한금융지주가 종신체제로 가겠다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제기했다.



국내 금융계의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는 신한금융지주 라응찬 회장이 지난 2월 15일 열린 신한지주 이사회에서 이사로 재추천돼 사실상 회장 연임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라 회장은 은행장 3연임(8년), 지주회사 회장 3연임(9년) 등 금융권 최장수 최고경영자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여기에 99년부터 2001년까지 신한은행 부회장 2년을 더하면 20년 가까이 CEO 자리를 지키게 되는 셈이다.

한 신한그룹 관계자는 최근 다시 회장으로 추천된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을 두고 “라 회장에게는 더 이상 회장이라는 직함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고 평했다.

라 회장이 회장직에서 물러나든 현직을 유지하든 그가 신한그룹에 끼치는 영향력에는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라응찬 회장이 일흔을 바라보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3연임에 성공해 2010년까지 신한금융지주호의 선장을 맡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군주은행?

이와 같이 금융가에서는 전례가 없는 라 회장의 ‘장기집권’에도 불구, 신한금융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별다른 잡음이 들리지 않는 것은 라 회장이 신한금융그룹 내에서 쌓아온 ‘카리스마’와 함께 그간의 업적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고졸 출신으로 특별한 배경도 갖추지 않은 그가 이처럼 장수하는 이유로 금융계는 조흥은행과 LG카드 등 굵직굵직한 기업 인수·합병 때마다 발휘되는 타고난 승부력과 리더십 등을 꼽았다.

실제로 라 회장이 1982년 신한은행 상무이사로 취임한 이래 은행장을 3연임하며 신한은행을 국민, 우리, 하나은행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빅4’로 끌어올렸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라 회장은 재임기간 동안 신한금융지주의 자산을 2001년말 62조원에서 2006년말 216조4,000억원으로 급성장시켰으며 은행, 증권, 카드 등
주요사업부분에 걸친 포트폴리오를 갖춰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복합금융시대를 이끌 새로운 기대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신한금융지주의 고속성장을 이끌어온 특유의 조직 장악력이 역설적으로 라 회장 체계의 최대 약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라 회장의 경영능력은 인정하지만 비정한 리더십도 있다는 것.

실제로 라 회장은 저항 세력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칼을 휘두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대표적인 사례가 최영휘 전 신한금융 사장이다.

신한은행 창업공신이자 지주사 출범 당시 초대 대표이사를 지냈던 최영휘 전사장은 2005년 4월 향명파동으로 사장직에서 물러난 데 이어 최근 열린 이사회에서도 등기이사직을 신상훈 행장에게 넘겨주게 돼 ‘불명예 제대’를 하게 됐다. 이인호 현사장도 한때 신한은행장을 그만두고 한직에 머무른 바 있다.

이러한 라응찬 회장의 독단적 경영에 대해, 신한금융지주 관계자는 “신한지주는 앞으로도 LG카드 통합작업 마무리와 본격적인 해외 진출 등 1등 금융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한 과제를 안고 있다”며 “이러한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라 회장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계속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재추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금융계 안팎은 신한금융지주의 1인 종신체제에 대해 근심어린 눈빛이다. 오는 2010년까지 이어질 라응찬 회장의 임기 동안 후계자 육성이 가장 주요한 과제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신한금융지주에는 뚜렷하게 두각을 보이는 후계자가 없다”며 “경쟁과 상호견제를 통해 주요 경영진의 역량을 이끌어내는 라 회장의 인사방식 아래서는 ‘후계자 부상=퇴출’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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