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왜 이러나

롯데그룹이 연초부터 잇따른 악재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롯데호텔에서는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해 한명숙 국무총리가 아찔한 사고를 당할 뻔했는가 하면 롯데월드는 놀이시설에 안전결함이 있다는 진단결과에도 불구하고 영업을 강행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이같은 악재가 5개월 만에 한국을 찾은 신격호 회장이 업무보고를 받기 시작한 시점이어서 롯데 관계자들은 더욱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런 악재를 제쳐놓더라도 녹록지 않은 일들이 많이 있다. 특히 사업 분야에서는 제2 롯데월드 건설, 우리홈쇼핑 인수, 대형할인점 2위 경쟁 등 넘어야 할 산이 한 둘이 아니다.
연초에 일어난 일들이 롯데 측에 액땜이 될지, 불행의 시작일지 재계관계자들이 롯데의 2007년을 그 어느 그룹보다 관심있게 지켜보는 이유다.


롯데월드는 지난해 10~11월 외부 전문기관에 안전진단을 의뢰해 지난해 12월 5일 쯤 종합보고서를 받았다. 보고서는 실내놀이시설 중 하나인 ‘환상의 오딧세이’는 “케이블 과다 적재로 인해 천장붕괴가 우려된다”며 “영업장을 폐쇄한 후 보수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영상모험관, 수영장, 크레이지 범퍼카, 혜성특급 등 5개 시설에 대해서도 천장 부분 균열 등을 이유로 ‘영업장 폐쇄 후 보수공사’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9개 영업장 전기시설은 전선의 노후화 등으로 누전, 감전, 화재발생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롯데월드는 이런 경고가 있은 후에도 3일간이나 영업을 계속해왔다. 손님들이 많이 몰리는 크리스마스와 방학 특수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칫 대형참사를 빚을 수 있는데도 장삿속에만 눈이 어두워 시민들의 안전을 뒷전으로 한 채 영업을 강행한다는 등 여론이 악화되자 언론보도 사흘 만에 ‘늑장휴장’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롯데월드측은 “자체 의뢰한 검사에서 결함이 발견됐고 굳이 보도가 없었더라도 3월부터 개·보수를 시작할 계획이었다”고 반박하며 늑장대처가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롯데월드는 전날까지 연간회원권을 팔면서 휴장에 대한 사항을 전혀 공지하지 않았다. 롯데월드는 이러한 지적이 있기 전에 지난해에만 이미 3차례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났었다. 이 때문에 네티즌들은 롯데월드를 ‘데스월드’(death world)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을 비꼬은 표현이다. 다음은 지난 9일 롯데월드가 전격적으로 휴장을 발표하자 한 네티즌이 인터넷 포털에 올린 댓글이다.
‘데스월드… 고객은 아랑곳 하지 않고 푼돈 벌어보려고 안전은 내팽개친 롯데… 이번기회에 아예 영업장 일시폐쇄하고 전면보수해서 거듭나라! 개장한지 십년이 넘었으면 이제 신경 쓸 때도 되지 않았니?’ (아이디 aniempire / 네이버 게시판)
롯데월드는 기자회견을 통해 “8일부터 휴장에 들어가 어드벤처, 매직아일랜드, 수영장, 민속박물관, 아이스링크 등 롯데월드 전 시설을 전면 개·보수하기로 했다”면서 “휴장 기간은 4개월 정도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4개월 동안 임시직 직원들이나 주변상인들과의 마찰을 풀어나가는 것도 중요한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총리가 탄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언론에서 롯데월드의 안전불감증을 지적한 5일 롯데호텔에서는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문제는 시점이 좋지 않았다는 것. 하필이면 한명숙 총리가 방문했던 시간에 사고가 일어났다.
한 총리는 지난 5일 오후 ‘건설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을 찾았다. 한 총리가 1층 로비에서 2층 로비로 향하는 도중 에스컬레이터의 역주행이 시작됐다. 일행 중 맨 앞에 서 있던 한 총리는 무사히 2층에 도착했지만 한 총리가 내리자마자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뒤따르던 총리실 간부와 수행원 중 일부는 예상치 못한 사고에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다행히 5초쯤 역주행하던 에스컬레이터가 멈춰섰고 별다른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행사가 끝난 뒤 한 총리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에스컬레이터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다친 사람 없이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의전이나 경호 담당자들로서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며 “사고 직후 호텔 측이 사과와 함께 경위를 해명했다”고 밝혔다.
롯데호텔 측은 “기계적 결함이 아니라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타면서 손잡이 부분에 부하가 많이 걸리면 멈추는 시스템인데 기계가 하중을 이기지 못해 사고가 발생했으며 바로 복구됐다”고 해명했으나 일반적으로 한꺼번에 하중이 많이 걸린다고 멈춰서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어서 많은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이같이 악재가 잇따라 발생하자 롯데측의 안전불감증에 대한 비난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시설, 설비와 관련업종의 ‘안전불감증’은 자칫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는데 롯데 측의 고민이 있다.
롯데 측은 ”언론의 지적에 대해서는 겸허히 받아들이겠지만 지금까지 안전관리에 많은 노력을 쏟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도약이냐 후퇴냐
연초부터 터져 나온 일들이 더욱 달갑지 않은 이유는 2007년이 롯데그룹의 도약과 후퇴의 갈림길에 서있는 한 해이기 때문이다.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러운 행보를 해야 할 마당인 것.
롯데는 지난 한 해 경쟁업체들이 여럿 M&A에 성공하면서 도약할 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마트는 월마트 코리아를 인수하며 롯데마트와의 격차를 2배로 벌려놨고, 이랜드는 까르푸를 인수하며 2위 자리에 올라섰다.
롯데는 지난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까르푸를 인수해 신세계 이마트를 누르고 업계 1위로 도약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예상 외로 이랜드에 까르푸를 빼앗기고 지금은 업계 3위 자리도 위협받는 상태다. 올해는 여세를 몰아 10개 이상 점포를 새로 열고 2010년에는 100호점 기틀까지 마련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대형할인점에 대한 지방 영세 상인들의 반발이 심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롯데그룹이 사활을 걸고 있는 또 다른 카드는 제2롯데월드 건설. 롯데 측은 “현재 건축심의 중인 제2롯데월드 지구단위계획안의 행정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올 상반기에는 건설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고 본격적인 투자가 진행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번 롯데월드 휴장은 제2롯데월드 사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제2롯데월드는 공군 측이 “서울공항의 비행안전구역 일부에 포함되므로 고도제한이 필요하다”며 신축에 제동을 걸어왔다.
우리홈쇼핑의 마무리 인수 작업도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우리홈쇼핑의 2대 주주인 태광산업은 롯데의 홈쇼핑 사업 진출을 꺼리고 있다. 태광산업은 케이블TV 방송국(SO)의 시장 점유율 20%가량을 차지하고 있어 태광 측의 의사를 무시한 채 사업을 진행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현재 태광 회장은 롯데와 먼 사돈지간으로 이번에 귀국한 신격호 회장이 태광과의 관계개선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GS홈쇼핑, CJ홈쇼핑 등 기존 홈쇼핑 터줏대감들도 좋은 채널을 양보할 리 없다.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백화점 사업에서도 후발주자들의 추격이 거세다. 기존의 명동상권이나 유통업계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분당, 판교 쪽의 주도권 다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다.


원활한 경영권 승계 이뤄질까
이같은 현안들은 곧 신격호 회장에서 신동빈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와도 맞물릴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악수를 거듭한다면 신동빈 부회장의 리더십에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격호 회장은 올해로 85세가 됐다. 본격적으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질 시점이다.
실제로 신 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격월로 오가며 ‘셔틀경영’을 해오다 지난해 9월과 11월 한국에 들어오지 않아 세간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신 회장이 신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적극적으로 권한을 위임한다는 차원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했다.
신회장이 신동빈 부회장에게 정책본부장을 맡긴 지 2년 정도 됐다. 1~2년차의 성적이 기대처럼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과도기란 측면에서 이해됐을 수 있으나 3년째가 되는 올해의 성적마저 신통치 않다면 그룹 안팎에서 리더십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뜸해진 신격호 회장의 ‘셔틀경영’
신격호 롯데회장은 셔틀경영으로도 유명하다. ‘셔틀경영’이란 신회장이 홀수달에는 한국에 머물며 한국 롯데를, 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물며 일본 롯데를 경영하는 것을 일컬어 붙인 말이다.

신회장은 한국에는 주로 홀수 달 초에 입국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1~3개 계열사의 보고를 받아왔다. 신회장은 대선자금 수사로 시끄러웠던 지난 2003년부터 2004년까지 10개월간을 제외하고 셔틀경영을 거른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던 신회장이 지난해 9월과 11월 한국에 들어오지 않고 5개월 동안 일본에 머물자 각종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9월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만해도 롯데호텔 노조가 잠실점 리모델링에 반발하는 대규모 시위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11월에도 귀국하지 않아 갖가지 소문이 돌았다.

특히 이 기간에는 대외적으로도 롯데와 관련한 별다른 이슈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귀국하지 않고 국내 롯데그룹 관계자들을 일본으로 불러들여 업무를 처리해 재계관계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가장 먼저 나돌았던 소문이 신동빈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것. 현재 신회장은 일본롯데는 장남인 신동주 부사장을, 한국 롯데그룹은 차남인 신동빈 부회장을 경영에 참여시키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부회장의 경영능력이 2% 부족하기 때문에 귀국을 미루고 있다는 상반된 추측이 돌기도 했다.

이 와중에 신격호 회장의 ‘와병설’이 나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신부회장을 비롯해 한국롯데 사업에 문제가 있어서 신회장이 입국을 미루는 것은 절대 아니다”며 “단지 일본 롯데의 현안이 많아서 일본 일정 위주로 스케줄이 운영되고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신부회장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도 “그룹에서는 신 회장이 받는 계열사 보고에 신동빈 부회장을 배석시키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신 부회장의 의견을 꼭 물어본다”며 전과 달라진 신 부회장의 위상을 말하고 있다.

신격호 회장은 지난해 12월 29일 귀국해 고향인 울산시 울주군에 위치한 별장에서 연말을 보낸 후 서울로 올라와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집무실에서 계열사 업무 보고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방문에서는 우리홈쇼핑 인수건 마무리에 가장 큰 신경을 쓰고 있다. 현재 롯데는 우리홈쇼핑 인수를 둘러싸고 우리홈쇼핑 2대 주주인 태광 측과 법정소송을 벌이는 등 마찰을 빚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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