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건설 VS 삼성물산 40억 민사소송


국내 1, 2위를 다투는 국내 굴지의 거대 건설사간 법정 공방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일어난 ‘GS홈쇼핑’ 이천물류센터 붕괴사고의 책임공방을 둘러싸고 형사 및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는 GS건설과 삼성물산이 이번에는 민사소송으로 법정공방을 벌이게 된 것.
GS건설은 지난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하도급 계약을 통해 삼성물산 측이 시행하던 PC(콘크리트 구조물)공사 부분이 붕괴돼 사고가 난 만큼 삼성 측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두 업체는 사고책임을 둘러싸고 정확한 원인이 가려지지 않은 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형국이어서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한 업체는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GS와 삼성의 ‘이천’ 악연

두 업체간의 악연은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GS건설이 시공을 맡은 경기도 이천 GS물류센터 신축공사장이 공사 도중 무너져 내려 인부 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중상을 입은 것. 사고발생 직후에는 그 원인이 ‘중대재해’냐 ‘부실시공’이냐를 놓고 시공사와 정부 및 민간조사단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부실시공의 흔적이 드러나면서 구체적 책임규명까지 이어졌다. 특히 대한건축학회가 사고원인을 PC설계와 제작에 관한 부분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 후 책임소재가 시공사인 GS건설뿐만 아니라 삼성물산에도 넘어왔다.
GS물류센터공사는 GS건설이 이를 다시 삼성물산을 비롯한 여러 회사에 하도급을 준 형태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PC설계부분을 삼성물산이 하도급을 받았다.
당시 삼성물산은 PC공법에 대한 특허를 가지고 있었다. PC(Precast Concrete)공법은 공장에서 틀에 맞춰 미리 만든 콘크리트를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인데 이 공법을 사용하면 비용이 늘어나지만 공사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대한건축학회는 원인조사 보고서를 통해 “붕괴사고를 초래한 주원인으로 3층까지 하나의 기둥으로 올라가는 ‘3층 1절’ PC기둥 공법을 국내에 처음 적용하면서 구조적 안전성에 대한 사전검증이 없었다”며 “‘2층 1절 PC기둥’ 공법은 구조적 안전성이 입증됐지만 이번 공사에 사용된 3층 1절 PC공법은 횡변위 강성(가로로 받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공법 보완이 이루어졌다면 붕괴사고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 조사결과에서도 “접합부를 콘크리트 타설로 고정하지 않은 채 PC작업을 진행하던 중 붕괴했다”며 PC작업 부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건축학회나 경찰 조사결과만 놓고 본다면 삼성물산에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GS건설도 사고의 책임이 삼성물산에 있다는 입장이다. GS건설은 삼성물산 측에 제기한 소송에서 “피고는 건축물의 기둥과 보 슬라브를 공장에서 제작해 현장으로 운송, 이를 조립하는 ‘PC’방식으로 하도급 공사를 진행했는데, 계약에는 PC공사와 관련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때에는 삼성물산이 일체의 책임을 지고 손해를 배상하도록 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원고는 사망자 보상금 등으로 총 24억여원을 지출하는 등 사고로 61억여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PC공사 대금으로 원고가 피고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을 제외하더라도 피고가 42억원을 원고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에 삼성물산 측은 직접 하도급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쪽 모두 “책임없다”
즉 두 업체간의 공방은 “삼성물산이 담당한 부분에 원인이 있기 때문에 삼성 측에 책임이 있다”는 GS건설의 주장과 “PC부분을 담당한 회사인 삼연PCE는 우리와 관계없는 회사이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는 삼성물산의 주장이 맞부딪치고 있는 형국이다.
공방의 핵심은 가장 큰 사고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PC작업’을 과연 삼성물산이 맡은 작업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삼성측의 주장처럼 실제 물류센터의 PC작업을 진행했던 회사는 삼연PCE다. 삼연PCE는 1998년까지 삼성물산 음성공장으로 있다가 분사한 회사이다.
이에 대해 GS건설은 삼연PCE는 실질적인 삼성 계열사로 봐야하며 하도급도 삼성물산이 가지고 있는 특허 때문에 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삼성측이 이 공법 적용과 관련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이면각서까지 써놓았기 때문에 당연히 삼성 측에 책임이 있다는 것.
반면 삼성물산은 자사가 갖고 있는 특허는 지하공사와 관련한 PC공법일 뿐이고 삼연PCE는 1998년까지 삼성물산 음성공장으로 있다가 분사한 회사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천 물류센터 공사 수주도 삼연PCE가 삼성물산과 사전협의 없이 진행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삼연 PCE를 삼성물산 계열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 오히려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 시공현장에서 조인트 콘크리트를 타설하지 않고 다른 공정을 진행하는 등 시공프로세스를 지키지 않은 것도 붕괴사고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단 관계자들을 구속기소한 검찰은 삼연PCE를 삼성 관계사로 보고 사건을 조사했다. 검찰은 작년에 관계자들을 기소할 당시 삼연 PCE를 사실상의 삼성물산 PC사업부로 간주해 삼연PCE 대표와 함께 삼성물산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법정에서 소송이 진행중이어서 최종 판단은 내려지지 않고 있다. 만약 법원이 삼성물산과 삼연PCE가 무관하다고 판단할 경우 삼성물산은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도 있는 셈이다.
한편, GS 건설은 사고의 직접적 원인 이외에도 사고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삼성물산 측의 태도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GS건설 측은 “삼성물산은 사고 직후부터 구조작업 완료때까지 일체 협조하지 않았으며 이틀 후에야 간부들이 사고 현장을 방문하는 등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태도를 취해 왔다”고 비난했다. 즉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 외에도 수습과정에서의 도의적 책임을 소흘히 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관계자는 “GS측이 제기한 문제는 그 쪽의 의견일 뿐이고 사실이 아니다”라며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해명했다.

어느 쪽이 이겨도 치명타
2006년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종합시공능력’ 평가에서 삼성물산은 2위를 차지했고, GS건설은 두 단계 낮은 4위를 차지했다. 사고가 일어날 당시 매출순위로는 두 업체가 1, 2위에 올라있었다. 두 업체 모두 건설업체의 ‘골리앗’인 셈이다. 책임소재를 둘러싼 두 업체간의 전면전은 결과에 따라 한 쪽이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이천물류센터 붕괴는 최근 몇 년간 건설현장에서 일어난 사고 중 인명피해가 가장 큰 사고에 속하기 때문에 책임여부에 따라 ‘안전불감증에 걸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안전도는 건설사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최우선 요소여서 그 충격은 예상보다 클 수 있다.
사실 두 건설사 측은 당시 사고가 재차 거론되는 것 자체가 달가울리 없다. 이번 GS건설이 제기한 민사소송도 홍보실에서 뒤늦게 알았을 정도로 법무팀 자체적으로 조용히 진행됐다. 즉 법무 관계자들은 GS건설이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은 책임소재를 분명히 함으로써 ‘오명’을 벗겠다는 강한 의지로 풀이된다. 삼성 측도 법원에서 가려질 일이 다시 언론에서 거론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현재 두 업체를 바라보는 건설업체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타 건설사 관계자는 “현재 두 업체는 ‘네탓공방’을 벌이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이보다는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 거대 건설사간의 법정 공방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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