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 부회장 체제 마무리 단계


유통재벌 2·3세대들의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다. 최근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부회장이 2계급 특진으로 경영권 승계가 가속화된데 이어, 정지선 현대백화점 부회장 역시 기업의 실권을 잡게 됐다. 현대가(家)에서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 이후 첫 명예회장이 탄생하고, 첫 3세대 경영체제가 구축됐다.
지난 12월 14일, 현대백화점은 정몽근 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을 맡을 것이라고 밝혔으며, 정기임원인사를 통해 새로운 경영체제를 구축했다. 여론은 정 명예회장의 일선후퇴로 정지선 부회장을 주축으로 한 경영체제가 확립됐다는 반응이다.


정 명예회장의 경영권 물림은 정해진 수순을 밟아왔다. 1997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한 뒤 기획관리담당 부사장을 거쳐 그룹총괄 부회장에 내정된 2002년 12월부터 그룹 전체를 총괄해왔다고 볼 수 있다.

‘시작’이 아닌 ‘마무리’
따라서 이전부터 자리를 잡아왔던 정지선 부회장의 경영체제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현대백화점 경영진들 사이에 형성돼 있다.
물론 표면적으로나마 정 명예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정 부회장에게 더 힘이 실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단계에 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지선 부회장의 경영권 확립이 그의 오너경영이나 독자노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세계그룹이 구학서 부회장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 부회장에게도 그를 보필할 능력과 경륜을 갖춘 경영인이 필요하다.
현대백화점은 이번 임원인사에서 경청호 그룹 기획조정본부 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겸임발령하고, 민형동 부사장을 대표이사사장으로 승진발령했다.
두 명의 사장이 각각 전문분야를 지휘하는 복수 대표이사사장 체제를 운영하게 되는 것이다.
경사장은 오랜 기획실 업무를 통해 관리분야의 경험이 풍부하며, 민 사장은 현대백화점의 상품과 영업관리를 맡은 경력으로 영업부문에서 탁월한 경영능력을 보인다는 것이 주변의 평이다.
따라서 현대백화점은 두 대표이사가 지닌 고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관리와 영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킨다는 전략이다. 물론 정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기본 경영체제에 변화를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남은 과제 산적
물론 정지선 부회장은 경영체제 확립 이후에도 풀어야할 과제가 남아 있다. 우선 경쟁 유통업계에 비해 뒤처진 기업실적을 회복해 나가야 한다. 해외진출 사업부문만 해도 현대백화점은 롯데와 신세계에 비해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다.
반면 롯데백화점은 2007년 모스크바 점포 오픈을 기점으로 2008년에는 베이징 2호점을 연다. 또 롯데마트는 2008년 베트남 호치민을 시작으로 점포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역시 정용진 부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이마트의 중국진출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또 경쟁사들이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백 개에 달하는 할인점을 출점한 상태에서 현대백화점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
더구나 현대백화점은 최근 수 년 동안 신규 점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국내 시장 장악을 위해서는 대책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소 소극적인 기업내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들리고 있다.

구조조정으로 위기돌파
사실 정지선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몇 차례의 위기가 있었다.
그룹을 총괄하기 시작한 이후 그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 500여 명의 직원을 감원시켰다. 그동안 적자에 허덕이던 패션 아울렛 ‘메이’와 서울 반포 ‘아울렛’을 각각 125억원과 310억원에 매각했다.
기업의 내실을 다지고 확고한 수익경영 체제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이후 현대백화점은 2003년에 전년대비 8%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것을 기점으로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 나갔다.
이어 정 부회장은 투명경영을 내세우며 기업이미지 제고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정책이 바로 부조리 척결과 비리 임원 감축이었다.
또 고객들에게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인식시키기 위해 끼워팔기 등을 금지시켰다. 가격을 왜곡시키고 정상적인 제품의 품질저하를 불러 종내에는 고객만족도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안정을 되찾으면서 정 부회장의 경영전략은 공격적인 성향으로 급변한다. 기업의 핵심사업인 유통업의 강화를 위해 할인점 사업 진출을 시도한 것이다. 할인점 진출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결과가 바로 농협유통과 제휴이다.
하지만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한 농협 하나로마트와의 제휴를 통한 시장진출은 아직까지 별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 부회장은 또 지분인수 과정에서 편법의혹에 따른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2월 현대백화점은 자사 무역센터와 목동점을 운영하는 비상장 계열사인 한무쇼핑의 주식 32만주를 매입했다.
하지만 이 한무쇼핑의 주식은 그 전해에 정 부회장이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증여 두 달 만에 현대백화점에 되팔았던 것이다.
이 지분거래가 논란이 되었던 부분 역시 현대백화점-정지선-한무쇼핑의 관계이다.
정 부회장은 현대백화점의 지분 17.11%를 소유하고 있는 최대주주이다. 당시 현대백화점은 한무쇼핑의 지분 34.33%를 확보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현대백화점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정 부회장은 현 상태로도 한무쇼핑에 대한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결국 정 부회장이 300억원에 달하는 한무쇼핑 지분의 증여세를 현대백화점에서 얻어내고 계열사의 지배권도 유지한 일거양득의 결과를 얻었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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