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2~3세 경영인 ‘우먼파워’

재계의 2~3세 우먼파워가 두드러지고 있다. 재벌 2, 3세대를 이어온 재벌가의 자녀들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움직이며 주목받고 있다. 일부 재벌 오너일가를 제외한 재께 2~3세 중 여성들의 경영활동이 눈에 띄고 있는 것. 대부분 재벌가에서의 2~3세 여성들은 일선에서 활동하지 않거나 집안 밖의 활동을 자제해왔다. 이런 관습은 최근 들어 빠르게 해체되어가고 있다. 경영환경이 급변하면서 단순히 성으로만 CEO를 결정짓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재계 우먼파워를 확산시키는 재계 2~3세 예비 CEO들의 면면을 취재했다.


초고속 승진으로 화제

최근 재계 3세 여성 경영자로 주목을 받고 있는 여성은 초고속 승진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맏딸 조현아(32) 상무보도 주목받은 재벌3세다.
현아씨는 지난 21일 제주시 KAL호텔에서 열린 국제기내서비스협회(IFSA) 아시아 태평양 컨퍼런스에서 그동안 자제해온 침묵을 깨고 본격적으로 공식 활동에 첫선을 보였다.
현아씨는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국제적 감각을 갖춘 예비 CEO로 주목을 받고 있다. 현아씨는 애초 호텔 경영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아씨의 전공은 호텔경영학. 현아씨는 99년 미국 아이비리그인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녀는 당초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본부에 입사했으며, 기내판매팀장 등의 보직을 거쳐 올 초 기내식사업본부 차장에서 상무보로 초고속 승진했다.
국제기내식협회가 주관하는 ‘머큐리상’을 수상하고 다양한 아이템을 기내식에 도입하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조 상무보에 대해 ‘국제적 감각이 뛰어나며, 리더십과 추진력을 겸비했다’는 평을 내놓는다. 또 업무에 대한 감각과 이해가 빨라 실무능력이 탁월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직원들과의 대인관계가 원만하다.
물론 아직 ‘경영권후계’나 ‘경영수업’ 등을 거론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일단 조 상무보의 모든 경영활동을 앞서 거론된 상황으로 전제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점과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도 그렇다.
더구나 이들과 관련한 주변과 언론의 시선에 현아씨 본인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나이나 지분소유분 등의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한다면 아직 이른 감이 있으나, 차후 경영권을 승계할 후계자들을 예견하는 측면에서도 표면적으로는 차남 조원태(30) 대한항공 부장과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만은 명확하다.
재벌의 2, 3세대들 대부분이 새로운 얼굴만은 아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 이부진(36) 신라호텔 상무는 이미 세간에 잘 알려져 있다. 경영에 참여한지 10년이 넘은 이 상무의 업무처리능력은 베테랑급이다.
부진씨는 1994년 연세대를 졸업하고 다음해 삼성복지재단에 입사했고, 삼성전자 일본 본사 과장과 국제경영연구원 해외인력관리팀 차장을 거쳐 2001년 신라호텔 기획팀 부장으로 임명돼 호텔업계에 발을 들였다.
지난해 경영전략담당 상무로 승진하면서 신라호텔의 경영전반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서비스 개선과 경영혁신에 괄목할만한 실적을 보여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각인시켰다.
또 외국의 유명 선진호텔 및 레스토랑을 벤치마킹하며 국제화를 추진하며, 이를 바탕으로 신라호텔의 변화와 개혁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진씨는 ‘제왕의 딸’답지 않은 의외의 소탈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직원들과의 모임이나 회식자리에 참석해 실무자들과 자연스러운 관계를 유지한다. 삼성전기의 임우재(38) 상무와 99년 결혼했으며, 슬하에 자녀는 없다.
호텔업에 종사하는 또 다른 재벌가의 딸은 조선호텔의 정유경(34) 상무다.

디자인 전공 호텔업계 기린아
정 상무는 동종업계에 활동하고 있는 이부진 상무와도 고종사촌관계에 있어 두 사람이 함께 주목을 받기도 했으며, 이러한 배경들로 인해 세간에서는 선의의 라이벌로 인식하기도 한다.
예원고교를 졸업한 정 상무는 이화여대 비주얼 디자인학과를 거쳐 1995년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학교를 졸업했다.
96년 조선호텔에 입사한 정유경 상무는 전공을 반영한 호텔의 리노베이션 작업 등 호텔의 전반적인 디자인 작업에 집중하면서 실용적이고도 편안한 현대적 디자인으로 호평을 얻었다.
정 상무의 디자인 작업 참여는 조선호텔의 이미지를 상승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이다.
미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함께 작업한 룸 키(Key), 성냥, 메모지, 우산 등의 소품 디자인은 고객들에게 고풍스러우면서도 젊은 느낌을 강조했다.
2001년 당시 소프트뱅크에 근무하던 회사원 문성욱씨와 결혼 후 이듬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정 상무는 서울과 미국에서 신개념 레스토랑 ‘베키아 앤 누보’의 디자인 작업에 직접 참여하는 등, 호텔의 전반적인 이미지 향상에 적극적인 활동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남편 문씨와의 슬하에 2녀를 두고 있다.
이들과 달리 보령그룹의 김은선(48) 부회장은 경영권 인수를 예견할 수 있는 경우다. 김승호 보령그룹 회장의 장녀인 김 부회장은 가톨릭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82년 보령제약에 입사했으며, 2000년 사장을 거쳐 이듬해에 부회장에 임명됐다.
김 부회장의 소유지분은 부친과 다른 자매들보다 월등히 앞서 있다. 4녀로 막내인 김은정(37) 보령메디앙스 부사장 역시 활발한 경영활동으로 재계 전면에 나서고 있다. 김 부사장은 미국 세인트루이스대를 졸업하고 94년에 보령제약에 입사했으며, 97년 보령메디앙스로 자리를 옮겨 아이맘 사업본부장과 패션유통사업본부장을 지냈다.
보령메디앙스는 유아/생활용품과 패션/유통 사업을 하는 회사로 1979년 보령장업(주)으로 설립되었으며 98년 현재의 상호로 변경됐다.
이명희(63) 신세계회장과 신영자(64) 롯데쇼핑 총괄부사장은 재계의 2세대 우먼파워를 대표한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딸인 이 회장과 신격호 롯데호텔 회장의 장녀인 신 부사장의 경영활동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이화여대 동문이며 동종업계에서 활동하는 배경과 성공적인 경영능력으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경쟁구도가 형성되어 있다.
최근 이명희 회장은 남편인 정재은(67) 신세계 명예회장의 2세(정용진, 정유경) 지분증여와 관련, 수천억원대의 증여세관련 소식이 재계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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