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고 천천히 둘러본다. 빌딩숲이 아닌 나무로 우거진 언덕 정상에 올라 어선들로 뒤덮인 해안가를 바라본다. 화려함 대신 소박한 풍경으로 가득하고 복잡함보다 여유가 넘쳐난다. 홍콩의 섬 여행은 그런 것이다.

80년대 홍콩, 청차우
 
센트럴 페리터미널의 5번 선착장에서 일반 페리에 올랐다. 고속 페리를 타면 약 30분, 일반 페리는 30분이 더 소요된다. 멀리 청차우 섬과 함께 해안가에 정박해 있는 크고 작은 어선들이 보였다.
            섬 주민들의 주된 생계 수단이 어업이기에 섬 인근에 정박해 있는 어선도 수십 척이다. 선착장 주변은 해안가를 따라 늘어선 레스토랑과 호객하는 상인과 자전거로 복잡했다. 시골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청차우의 투박한 번화가는 화려함의 대명사인 ‘홍콩’과는 사뭇 다른 모습.
            사람들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자 청차우 섬 주민들이 살고 있는 풍경이 나타났다. 주택가와 상점, 식당 주변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좁은 골목에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건물마다 널려 있는 빨래가 바닷바람에 소리 없이 흔들렸다.

꾸밈없는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내보인 채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단번에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해적의 은신처, 청포차이 동굴
 
청차우 섬은 해적 청포차이가 은신처로 숨어 지내던 동굴이 있다. 과거 600척의 배를 이끌었던 악명 높던 해적의 흔적이 지금은 청차우의 명소가 됐다.
           선착장에서 우측 해안가를 따라 30여 분 걷다 보면 청포차이 동굴이 있는 작은 산이 나타난다. 산의 입구에 커다랗게 서 있는 정문을 지나 길을 올라갔다. 정상의 벤치와 전망대 뒤로 청포차이 동굴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절벽의 난간을 잡고 해안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자 거대한 바위와 절벽이 나타났다. 파도 소리가 절벽 밑에서 요란하게 들려 왔다. 먼저 도착한 여행객들이 작고 컴컴한 구멍을 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그 작은 구멍이 청포차이의 은신처이자 보물을 숨겨놓았다는 동굴.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까 말까 한 작은 크기의 동굴에 실망이 앞섰다.
           하지만 오는 길에 마주친 멋진 기암절벽의 해안가 풍경이 아쉬움을 달래준다. 산을 내려갈 때에는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갔다. 산 밑까지 이어진 계단 옆으로 작은 사원이 보인다. 누군가 피워둔 향 냄새가 바닷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평화와 안녕의 기도, 틴하우 사원
 
틴하우 사원은 중국의 해안가 마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원이다. 어부들은 출항 전 안전과 만선을 기원하며 바다의 여신 틴하우에게 제를 올린다.

  청차우의 틴하우 사원 역시 선착장과 멀지 않은 곳에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 옅은 하늘색 건물은 화려하기보다는 단아하고 정갈한 분위기를 풍긴다.
          규모는 작지만 사람들의 믿음이 작지 않아서인지 사원 앞 향로에 실처럼 가느다란 연기를 뿜어내는 향초가 몇 개 꽂혀 있다. 마침 지나가던 노인이 향로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인다.
 
         서퍼들의 놀이터, 통완 비치 & 쿤얌 비치
 
통완 비치와 쿤얌 비치. 두 해변은 나란히 이어진 작은 해수욕장으로 주말이면 바다 수영을 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청차우의 인기 해변이다.
        흐린 하늘과 거센 바람에 여행자들은 아쉬울 법도 한데 얼굴 한가득 환한 표정을 지으며 백사장에 앉는다. 날씨는 여행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듯 나란히 바다를 보고 있다.
        슈트를 입은 서퍼 몇몇이 서핑 보드를 들고 나타나 바다로 나간다. 마치 이런 날씨를 반겼다는 듯 자세를 잡고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그들만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통완과 쿤얌의 바다. 그 모습이 하나의 풍경이 돼 오래도록 멍하니 바라본다.
 
전망대로 가는 하이킹 코스, 미니 만리장성
 
통완과 쿤얌비치 옆에 곶처럼 튀어나온 작은 산에 ‘Minigreatwall’이 있다. ‘미니’ 만리장성을 상상하며 표지판을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가자 붉은 건물과 화려한 깃발을 펄럭이는 쿤얌사원이 먼저 보인다.
       숲속에 퍼지는 향내를 맡으며 만리장성으로 향하는 길을 오른다. 하늘을 가리는 우거진 나무와 주변을 둘러싼 수풀 사이로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가파른 오르막과 계단,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정신없이 올라가자 어느새 시야가 훤히 트이는 곳에 홀로 서 있는 정자다.

미니 만리장성이라는 말에 이끌려 올라온 전망대. 너른 바다와 조금 전까지 머물렀던 통완비치와 쿤얌비치, 그리고 그 너머로 청차우 마을의 풍경이 함께 펼쳐졌다. 기대했던 만리장성의 모습은 아니지만 땀을 식혀주는 바닷바람에 기분이 금세 좋아진다.
       어떤 여행지에서도 상상했던 풍경을 완벽하게 일치시키기란 어려운 법이기에 오히려 여행이 더욱 필요하다. 정자 왼편으로 바다까지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망설이던 끝에 계단을 따라가보니, 역시나 절벽 밑 바다와 가까운 곳에 정자 하나가 더 있다. 같은 풍경이지만 위에서 바라보는 전망보다 아래에서 마주하는 풍경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배고픈 자들을 위한 위로, 팍타이사원
 
팍타이사원은 선착장에서 금방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위치에서 곳곳에 비치한 표지판이 방향을 알려주기 때문에 길을 헤맬 일은 없다.
      팍타이사원의 규모는 틴하우나 쿤얌사원에 비해 꽤 큰 편이지만 소박한 마을풍경과 분위기를 그대로 품고 있다. 사원으로 들어서자 먼저 찾아온 몇몇 사람들이 조심스레 향을 피우고 있다.

한쪽에는 외국인 여행자들이 어설픈 모습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팍타이사원은 사실 청차우의 빵 축제로 유명하다. 매년 음력 4월 5일부터 9일까지 열리는 빵 축제의 유래가 흥미롭다.
      청차우 사람들은 해적들에게 희생된 배고픈 유령들이 음식을 찾아 이 평화로운 섬을 떠돌아다닌다고 믿었는데, 빵 축제는 이런 유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작됐다고 한다.

빵 축제로 유명한 섬 안의 마을을 돌아다니다보면 ‘평안’이라고 붉은 글씨가 적힌 하얀 찐빵 모양의 기념품이 자주 눈에 띈다. 올해는 5월 19일부터 23일까지 빵 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천천히 걸어가는 섬, 라마
 
홍콩에서 두 번째로 큰 섬 라마는 영화배우 주윤발의 고향이자 트레킹으로 유명한 섬이다.
     홍콩에서 ‘트레킹’이라는 단어는 약간 생소할 수 있지만 실제로 현지인들은 주말 아침이면 라마섬에서 트레킹을 즐긴다. 소쿠완에서 용수완을 이어주는 트레킹 코스가 가장 일반적인 루트인데, 편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라마섬은 센트럴 페리터미널 4번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약 25분 정도 가면 도착한다. 선착장은 용수완과 소쿠완에 각각 있다. 어느 마을의 선착장을 선택해도 상관없지만 페리가 더 자주 다니는 곳은 용수완이다.

 시작은 소쿠완에서, 라마섬 트레킹
 
소쿠완의 첫인상은 청차우 섬 선착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선과 양식장이 해변에 빈틈없이 떠다니고 있는 모습. 다만 이른 아침이라 조금 더 조용하고 고요하다.
    페리에서 내리자마자 선착장 앞에 비치된 표지판과 지도를 확인했다. 용수완으로 가는 길, 갈림길마다 팻말이 가야할 방향을 친절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트레킹 도중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해안가를 따라 이어지던 길은 금방 섬 안쪽으로 방향을 틀어 여행자의 발을 또 다른 마을로 들어서게 한다. 몇 개의 마을을 지나고 다시 숲으로, 산으로 오른다. 평탄하고 완만한 트레킹 코스는 산책하듯 걷기에 딱 좋은 편.
    산의 중앙까지 올라가자 시야가 탁 트인 언덕 중앙에 자리한 정자가 보인다. 그곳에서 소쿠완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산의 정상에 오르니 길이 다시 평탄해졌다.

난간도 없이 산맥의 능선을 따라 걷는 내내 흐린 하늘에서 햇빛한 줌이 쏟아진다. 그제야 라마섬이 품은 푸른 바다 빛깔이 드러났다. 대자연까진 아니더라도 소박한 자연의 모습에 조그마한 감동을 느낄 무렵, 멀리 산 아래로 조그맣게 용수완 마을이 보인다.

 덩그러니 놓인 벤치에 앉아 바다와 마을, 섬의 일부분을 바라본다. 누군가에게 지금 이곳이 홍콩이라고 얘기하면 믿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짧은 휴식을 취한다.
 
    트레킹의 종료 지점, 용수완
 
용수완 마을이 가까워 질수록 길목 풍경은 더욱 다채로워 진다. 색색의 꽃과 나무, 그리고 그와 어우러진 건물들이 자연스럽다. 넉넉하고 여유롭게 띄엄띄엄 서 있는 건물 사이에는 바나나나무와 수풀, 넝쿨이 빈 자리를 메운다.

완전히 갠 하늘에서 햇빛이 천천히 내려앉고 용수완 마을의 풍경이 조금 더 생동감 있게 변한다. 길마다 카페와 레스토랑, 소규모 상점이 문을 활짝 연 채 여행자를 기다린다.
 
    용수완이 라마섬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고 하지만 마을 크기는 작다. 그래서 더 아기자기하고 정겹고 또 알차다.

섬에서 산과 숲, 바다와 마을을 지나 도착한 용수완은 트레킹을 마무리하며 쉬어가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페리를 타기 전까지 빈 시간을 누리기 위해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내부 인테리어는 조금 어설펐지만 그것마저도 용수완 마을이 전해주는 사랑스러운 매력처럼 느껴진다.
 
밤보단 낮, 빅토리아 피크
 
홍콩 섬에서 빅토리아 피크를 방문하지 않는 여행자가 있을까. 홍콩 섬에서 가장 높은 산에 위치하고 있어 홍콩의 모든 풍경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최고의 명소. 빅토리아 피크 전망대에 오르는 가장 쉬운 방법은 피크 트램을 이용하는 것이다.
   케이블 철도 방식으로 운행되는 피크 트램은 가파른 경사를 타고 빠르게 빅토리아 피크까지 올라간다. 나무와 수풀 위로 천천히 드러나는 창밖의 전망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전망 포인트는 빅토리아 피크 곳곳에 존재하는데, 날이 맑고 깨끗한 날이면 9마리의 용이라 불리는 9개의 산맥과 함께 구룡반도와 홍콩 섬의 높고 화려한 건물들을 모두 볼 수 있다.

낮에는 태양 아래 드러나는 홍콩의 모습을, 밤에는 홍콩의 화려한 야경을 마주할 수 있지만 시간이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시간을 이곳에 투자하고 싶지 않다면 밤의 빅토리아 피크는 추천하지 않는다.
   너무나 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으로 몰려 피크에 오르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최소 1시간은 소요되니, 차라리 직접 야경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홍콩 섬의 핫 플레이스, 소호 & 할리우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근처에 위치한 유명한 거리 두 곳. 바로 소호와 할리우드 로드이다. 익숙한 이름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의 할리우드나 소호 거리와는 조금 다르다.
  두 거리는 홍콩식의 번화가로 많은 여행자들을 이끌고 있다. 유명한 맛집, 술 한잔 하기 좋은 바와 상점, 베이커리와 쇼핑 숍으로 가득해 온종일 이곳을 돌아다니며 머물러도 다 볼 수 없을 만큼 볼거리가 다양하다.

특히 낡은 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함께 어우러져 보이는 묘한 도시 풍경은 홍콩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낮보다는 밤에 찾아오면 더 활기찬 거리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사진제공=여행매거진 G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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