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거리 비례 표준운임제 도입…내년 7월 1일부터 시행

- 10년 넘는 논의 끝 국회 본회의 통과…표준운임제 불이행시 과태료 처분
- 화물운송 운임 산정할 때 화물자동차 안전운송원가 참고해 산정해야
 
 화물차주에게 적정운임을 보장하는 내용의 화물자동차 표준운임제(안전운임제)가 10년 넘게 논의되던 끝에 전격 도입된다. 화물차 업계 ‘최저임금’이 보장되는 셈이다. 국회는 지난달 30일 본회의를 열고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내년 7월1일부터 시행되며 국토부 장관은 화물자동차 안전운송원가를 공표해야 한다. 화주(화물주), 운송사업자 등이 화물운송 운임을 산정할 때는 이를 참고해 산정해야 한다. 만약 표준운임보다 적은 운임을 지급할 경우,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국토부는 화물차주의 운임수입이 열악하다고 판단해 기존제도를 대신할 운임제를 추진해왔다. 실제로 화물운송 시장의 지역별 편차가 크고 다단계 하청구조가 일반화돼 최종적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화물차주에게 지급되는 운임은 상대적으로 낮다. 또한 국내 화물차 운송시장은 신고운임제를 운영하고 있는 일부 운송품목을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화주 등을 중심으로 한 자율운임제를 채택하고 있어 화물차주들의 운임을 보호해줄 장치도 없는 상황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토부는 2016년 8월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을 통해 화물운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참고원가제 도입을 추진한 바 있다.
 
버스나 택시처럼 운임 표준화
 
당초 국토부는 참고원가제를 통해 형성된 시장 가격을 참고해, 추후 표준운임제를 도입한다는 계획이었다. 참고원가제를 1년 시행한 뒤 효과를 보고 표준운임제를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이헌승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참고원가제는 화물운송 이해주체들이 원가정보를 제공해 계약 시 협상에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참고원가제는 정부와 연구기관, 차주단체 등이 매년 참고원가를 산정해 발표하는 제도로 강제성이 없다.
 
표준운임제는 화물의 무게, 운송거리 등을 고려해 버스와 택시요금처럼 표준화된 가격을 정한 뒤 운임을 계산하는 것이고 불이행시 처벌받는다.
 
화물연대 등 현장 근로자들은 단순한 참고지표인 운임제를 실제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업계 관계자는 “참고원가제의 경우 프랑스 도로위원회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국내 현실에 맞지 않다”며 “특히 이는 화물차주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운송과 주선업체가 화주에게 운임을 청구할 때 참고하는 비용 계산법”이라고 지적했다.
 
화물연대는 “현재 비용을 몰라 낮은 운임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며 “참고원가제는 계약을 맺을 때 요구할 수 있는 근거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적정운임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어 “운송원가를 안다고 해도 지입차주가 화주와 운임협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화물운송시장이 지입제와 다단계 하청구조로 이뤄져 있어 법적으로 화주와 화물노동자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상임위 단계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참고원가제 1년 시행에 대한 의문을 표하면서 법안 통과에 빨간불이 켜지기도 했다.
 
참고원가제는 업계에서 산정하다 보니 정부가 고시하는 운송원가에 비해 원가가 낮다. 화물차 운전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화물연대 등은 앞서 새로운 대안으로 표준운임제 도입을 주장한 바 있다. 사실상 운임을 강제해 다단계 하청구조의 틀을 깰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11월 표준운임제 도입을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했다.
 
결국 이헌승 자유한국당 의원의 제안으로 표준운임제와 참고원가제를 동시 도입하기로 했다.

표준운임 산정은 국토부 장관 소속의 화물자동차안전운임위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위원회는 안전운송원가(참고원가) 및 운송품목, 차량의 종류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한다.
 
국토부 장관은 매년 10월31일까지 위원회 의결을 거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운송품목에 대해 다음 연도에 적용할 안전운송원가를 공표해야 한다. 안전운임 대상은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 등이다.
 
文 정부 100대 과제이기도
 
운송사업자와 위·수탁 차주가 위·수탁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는 표준계약서를 우선 사용하도록 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운송사업자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방지하기 위해 현재 6년까지 보장되는 위ㆍ수탁계약 갱신청구권을 6년 후에도 보장하도록 했다.
 
현재 대기업 중심의 화주와 운송사업자는 개인 화물차주와 개별적으로 위·수탁 계약을 맺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화물차주들이 적정운임을 보장받지 못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 교통사고 등 위험도 크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8월 화물자동차법 개정을 100대 국정과제로 지정, 올해까지 법 개정을 마치겠다고 제시한 바 있다. 또한 2020년에는 표준운임 산정위원회를 구성해 2021년부터 표준운임제를 본격 시행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개정안은 일단 이 제도를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하고, 국토부 장관이 유효기간 만료 1년 전에 시행결과를 분석해 연장 필요성을 국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정부 관계자는 “표준운임제를 통해 최대 38만 명의 화물차주의 적정운임이 보장되고 처우가 개선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표준운임제가 도입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야당 소속 의원들은 정부가 화물운임 선정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시장경제 질서를 흔드는 것이라고 반대했고, 여당 소속 의원은 화물운송 종사자의 열악한 환경을 고려하면 도입해야 한다고 맞섰다.
 
화물차주에게 적정 운임을 법으로 보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의 역사는 짧지 않다.
 
정부가 표준운임제 도입 검토에 처음 나선 것은 지난 2008년이다. 당시 화물연대가 파업을 통해 표준운임제 도입을 주장하자 정부가 ‘표준운임제 도입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2010년 시범사업까지 진행했다. 금방이라도 도입될 듯 보였던 표준운임제는 이후 정부가 제도의 법제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면서 논의가 지지부진해졌고, 이는 2012년과 2016년 화물연대가 연이어 파업에 나서는 빌미가 됐다.
 
국토교통부는 2016년 12월 열린 국회 국토위 교통소위에서도 ‘표준운임제는 시장경제 원리 위배 문제 등의 문제가 있어 수용이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후 그간 제도 도입에 부정적이던 국토부가 벌칙 조항이 없어 강제성이 없는 참고원가제를 우선 도입하고 1년 후에 강제성이 있는 표준운임제를 도입하자는 중재안을 제안했고, 극적으로 여야가 합의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지난해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표준운임제 도입을 공식화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신규진입 운송업체의 직영 의무화와 함께 표준운임제 도입을 언급한 바 있다. 특히 국토부는 열악한 화물운송 체계가 연이은 화물차 대형사고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도입일정을 당초 2021년에서 내년으로 앞당기고 표준운임제의 공식 명칭을 ‘도로안전운임제’로 정해 정책취지를 명확히 했다.
 
호주, 1979년부터 표준운임 도입
 
운송시장에서는 표준운임제 도입을 놓고 상반된 온도차가 감지되고 있다. 일부 운송사들은 출혈경쟁으로 떨어질 대로 떨어진 운임이 올라갈 수 있다는 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표준운임제가 시행되면 화물운송시장의 전체적인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표준운임 도입으로 제3자물류가 감소할 수 있다”며 “운임책정에 강제성이 있는 표준운임제가 시행될 경우 운송비 상승 등의 부수적인 영향 등에 대한 대안도 함께 마련하는 등 신중히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호주에서는 ‘안전운임’이란 이름으로 표준운임제를 시행 중이다.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주는 이미 1979년부터 표준운임을 도입했다. 비정상적인 운임구조로 화물차 사고가 빈번해지면서 주 차원에서 실시한 것이다. 35년간 이 제도를 운영하며 축적된 연구 결과, 화물노동자가 받는 운임비가 낮을수록 화물차 사고율이 높아지고 운임비가 높을수록 사고율은 낮아진다는 원리가 성립됐다. 호주가 2012년 발표한 도로안전운임법은 이 법이 전국적으로 확대된 것이다.
 
2014년 3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초청해 한국을 찾은 호주운수노조의 마이클 케인 사무부총장은 “근본적으로 화주들이 끊임없이 비용 압박을 하기 때문에, 화물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낮은 운임비를 받고 장시간 노동이나 위험한 운행을 하게 된다”며 운임비 산정방식에 대해서도 “컨테이너당 운임비를 지급하면 화물노동자들은 과적 압박을 받고, km당 운임비를 지급하면 장거리-장시간 운행을 압박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2012년 ‘도로안전운임법’이 제정됐다”며 “핵심 내용은 화물노동자들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표준운임제를 시행할 것과 운송시스템 구조에 가장 꼭대기에 있는 화주들에게는 화물노동자들이 충분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 마지막으로 표준운임제를 위반한 당사자나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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