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2017년 7월 말부터 올해 2월 말까지 전 수행비서 김지은 씨를 상대로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지난 3월5일 김 전 비서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지 40여 일 만이다. 그동안 검찰은 김 씨가 사용하던 업무폰에서 안 전 지사 측이 기록을 삭제한 흔적을 잡고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고 결국 불구속 기소했다. 김 씨는 ‘자신은 기록을 삭제하지 않고 후임자에게 건넸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후임자 어모씨는 “인수인계 받을 당시 기록이 다 삭제되고 전화번호부만 남아 있었다”고 반박했다.
 

- “업무폰은 알고 있다!” 김 씨와 후임자기록 삭제 공방
- ‘김지은’ 후임 수행비서, “인수인계 제대로 못받아”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강제추행 5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를 저지른 혐의로 4월 11일 불구속 기소됐다. 김 전 비서는 2017년 6월부터 그해 12월 20일까지 7급 수행 비서를 담당했고 이후 승진해 6급 정무비서 자리로 옮겼다.
 
당초 검찰은 김 씨가 사용하던 업무용 휴대폰을 압수해 복원하는 과정에서 작년 9월 이전의 통화목록과 문자 메시지, 사진 등이 모두 삭제된 사실을 확인했다. 안 전 지사 측이 증거인멸을 시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안 지사, 김씨 2017년
9월 수행비서 교체 지시해”

 
당시 김 씨는 자신이 6개월 가까이 사용하던 업무폰을 후임자인 어모씨에게 넘겼다. 어 씨는 2017년 12월21일부터 2018년 3월8일까지 수행비서 역할을 담당했다. 안 전 지사가 검찰 출두하기 전 마지막까지 운전을 하며 수행을 했던 인사다.

어 씨는 4월 13일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인수인계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이미 모든 기록이 삭제된 채 업무폰을 인수인계 받았다고 해명했다.
 
어 씨는 “정무팀에서 일하다가 2017년 9월에 지사님께 수행비서를 준비하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며 “당시에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나가시나 하고 아무래도 여성보다는 남성이 체력이 강해 교체하려고 하나 단순히 생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 전 지사는 3선 도전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재보선에도 나가지 않았다.
 
안 전 지사는 사실상 작년 9월부터 김 씨를 수행비서직에서 다른 팀으로 옮기려고 한 셈이다. 어 씨는 “12월 초로 기억한다. 정무팀에서 수행비서로 교체됐다. 당초 2018년 3월로 기대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진행됐다”며 “이후 12월15일부터 20일까지 김 씨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김 씨는 수행비서직에서 정무직으로 한 급 올린 승진 케이스였지만 ‘한직으로 물러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어 씨는 인식했다. 어 씨는 그 인수인계 과정에서 벌어진 두 가지 사건을 소개했다.
 
하나는 안 지사와 일주일에 1회 정무회의를 가졌던 회의실에서 발생했다. 정무팀장과 관계 공무원, 공보관, 부지사 등 고위공무원이 참석해 의상과 일정을 정하는 자리에서 갑작스럽게 김 씨가 ‘펑펑’ 울었다고 전했다.
 
그는 “회의 중에 갑작스럽게 울어서 모두 의아해했다”며 “지사님도 ‘왜그래?’라고 물을 정도로 당혹해했다”고 전했다. 어 씨는 “당시에는 수행비서를 교체해 서운해서 우는 것으로 참석자들은 이해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사건은 안 전지사가 타는 1호차 안에서 벌어졌다. 운전기사와 조수석에 어 씨가 앉고 뒷 좌석에는 김 씨와 안 지사가 있었다. 관사로 출발하는 자리인데 김 씨가 또 펑펑 울었다. 어 씨는 “안 지사가 재차 ‘왜 우느냐’고 묻자 김 씨는 ‘전임인 신 수행비서도 떠날 때 울었는데 저두 울면 안 되느냐’고 지사에게 따지듯 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김 씨는 ‘만약 정무팀에서 일을 못 하게 하면 세계여행을 떠나겠다’고 해 지사가 웃으면서 ‘여행갈 돈은 모아놓았냐’고 묻자 ‘모아놨다’고 말해 내가 ‘부럽다’고 한마디 거들었다”고 기억했다. 어 씨는 “당시 김 씨는 정무비서로 가는 게 한직으로 밀려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속을 잘 알 수 없고 엉뚱한 면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검찰에서 김 씨가 어 씨에게 건넨 업무폰은 2017년 9월 이전 기록이 삭제돼 증거를 인멸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김 씨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9월 삭제 건은 모르는 일이고 내가 김 씨로부터 업무폰을 받은 날이 12월 20일”이라며 “도청 지하에서 업무폰을 마지막으로 인수인계 받았는데 배터리가 2%밖에 남지 않아 집에 와서 10시 14분에 충전을 하고 보니 휴대폰이 완전 초기화돼 있었고 어플이나 문자 메시지, 사진 등이 없었고 전화번호만 남아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어 씨는 김 씨에게 전화를 해 “왜 다 지웠느냐? 이렇게 주면 업무를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항의했다. 어 씨는 “김씨가 ‘전임인 신용우 수행비서에게 업무폰을 받을 때도 그렇게 받았다’고 말해 화가 났지만 감정을 자극하기 싫어서 넘어갔다”고 말했다. 다음 날 어 씨는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업무를 이렇게 인수인계하면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따졌더니 비서실장 왈, ‘감수해라’고 말해 넘어갔다”고 전했다.
 
“기록을 삭제한 것은
맞지만… 증거인멸 아냐”

 
이후 어 씨는 2018년 3월5일 김 씨가 ‘안희정 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최초 폭로가 발생할 때까지 안 전 지사를 지근거리에서 수행했다. 안 전 지사는 지난달 6일 도지사직을 사퇴했다. 별정직인 어 씨 역시 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충남 도청에서는 어씨에게 공공재산인 법인카드, 태블릿 PC, 업무폰, 공무원증을 반납할 것을 요청했다.
 
어 씨는 “당시 지사님은 도지사직 사퇴와 정치활동 중단 선언을 하고 3월9일 검찰 출두하기 전 마지막까지 제가 남아 수행했다”며 “그래서 3월8일 김 씨에게 인수인계를 받지 않은 태블릿 PC를 제외한 것들을 다 반납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업무폰 반납의 경우 개인 신상 정보가 있어 반납하기 전 기록을 삭제한 것은 사실”이라며 “증거인멸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살 수 있지만 이미 받을 때 다 지워져서 받은 상황이고 나는 안 지사나 김 비서와 이해관계가 전혀 없어 삭제해도 상관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특히 검찰에서 증거인멸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어 씨는 “3월 12일 업무폰 비밀번호도 알려줬고 디지털 포렌식 방식으로 12월에 기록이 삭제된 사실을 알 수 있다”며 “내가 안 지사와 짜고 증거를 인멸했다는 의혹은 억울하고 제가 그럴 거였으면 반납하지 않고 분실처리하고 전화기 값을 물으면 됐다”고 항변했다.
 
한편 2017년 7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안 전 지사로부터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는 김 씨의 폭로에 대해서 어 씨는 “성폭행 당한 여성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둘의 일이라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몰랐다”고 했다.
 
그는 “사실 올해 초만 해도 김 씨가 정무비서지만 1월말 지사님 다보스 포럼 참석차 해외 출장이 있었고 2월초에는 청와대 VIP 행사도 있었는데 내가 수행비서지만 ‘가기 싫다’고 푸념하자 그럼 ‘내가 대신 가도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며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어 씨는 김 씨에게 섭섭함도 내비쳤다. 그는 “지난해 대통령 경선 때부터 올해 도지사직을 사퇴하기 전까지 술도 먹고 밥도 먹고 한 사람들이 후임인 나를 포함해 6~7명 정도 된다”며 “그런데 우리들한테는 한마디 상의도 없었는데 전임 신모 수행비서에게 피해사실을 밝혀 우리는 ‘모르쇠’하거나 묵인한 사람들이 됐다”고 억울해 했다.
 
실제로 김 씨는 3월5일 jtbc를 통해 ‘폭로’할 당시 “SOS 신호를 (보좌진에) 여러 번 보냈고 눈치챈 선배 한 명에게 이야기를 했다”며 “그러나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고 일단 거절하라고만 말해줬다”고 털어놨다.
 
신 씨는 2016년 6월 김 씨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해준 전임 수행비서다. 신 씨 역시 3월 6일 같은 방송에 출연해 “김 씨가 말한 그 선배가 바로 저였다. 러시아 출장을 다녀온 후였던 것 같다”며 “말하는 뉘앙스나 느낌이 무슨 일이 있지 않나 추측할 수 있는 정도의 메시지였다”고 말했다.
 
이어 신 씨는 “당신이 조심하면 되고 단호하게 절하면 된다고 계속 얘기했는데 미안하다”며 “그 당시 외면했던 비겁함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크다. 검찰 조사에 임하겠다”고도 했다. 이에 본지는 신 씨에게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듣기 위해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당분간 전화 통화를 할 수 없다’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어 씨는 마지막으로 안 전 지사에 대해서는 “안 지사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내가 2016년 11월 도청에 합류해 3월 5일 폭로가 있었고 그후 검찰 출두 전까지 피신할 때 끝까지 지사님을 수행했다”며 “안 지사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검찰에 출두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안 전 지사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의 재판은 성폭력 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재판부가 맡아 진행한다. 서울서부지법은 안 전 지사의 피감독자 간음 등 혐의 사건을 성폭력 사건 전담 재판부인 형사합의12부(김성대 부장판사)가 맡는다고 4월 13일 밝혔다.
 
안희정 마지막 수행비서에게
마지막 한 말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나 성폭력 사건이라는 특성상 증인신문 등 향후 진행 과정에서 비공개로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법원은 고소인인 전 충남도 정무비서 김지은 씨의 사생활 보호와 그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두되 김 씨가 자진해서 생방송에 출연해 폭로한 점, 국민적 관심사가 쏠린 점, 이 사안이 미투 운동의 추이 등 사회에 미칠 영향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공개 여부를 판단할 전망이다.
 
쟁점은 도지사와 비서라는 지위·업무관계를 이용해 강제적 관계가 이뤄졌는지 등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은 이 사건이 향후 미투 운동과 관련된 유사 사건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을 두루 고려해 합의부가 맡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