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시장에서 업종은 크게 외식업, 유통판매업, 서비스업 3가지로 분류한다.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지역에 이들 업종들이 세분화되어 뒤죽박죽 혼재되어 있는 상태로 각기 영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업종별 나름대로의 자기자리는 따로 있다. 업종별로 적합입지에 대한 보이지 않는 룰이 있다는 얘기다.대로변이나 상권의 초입, 유동인구가 흘러들어가는 메인라인엔 편의점이나 의류, 액세서리, 휴대폰대리점, 화장품전문점 등 유통판매업종이 여지없이 눈에 가장 많이 띄고, 대로변에서 한 블록 들어간 이면도로나 메인라인에서 뻗어나가는 줄기라인에서부터 외식업종이 자리를 잡는다. 지하나 2.3층 점포에서는 노래방, 피시방, 피부관리실 등 서비스업종이 자리를 잡고 고객을 유인한다. 웬만한 상권에서는 이러한 패턴이 기본이다. 왜일까.

“다른 데도 둘러보고 올게요”

예를 들어보자. 봄옷을 사기 위해 옷가게에 들어선 한 여성이 옷을 고른다. 디자인, 색상, 바느질 등 꼼꼼히 살펴보며 몸에 대어 보기도하고 입어보기도 하지만 이내 종업원의 따가운 눈초리를 뒤로 한 채 “다른 데도 돌아보고 올게요”하며 점포를 나선다. 다른 점포에 들러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유통판매업종은 고객이 내점을 해서 상품에 대해 충분히 살펴보고 내심 마음에 들었더라도 바로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구경만 실컷 하고나서 사지 않고 나와도 그만이라는 얘기다. 휴대폰대리점에서도, 액세서리전문점에서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인다. 즉, 유통판매업종은 내점고객대비 구매비율이 5~10% 선에 그친다.

따라서 가능한한 많은 고객이 내점을 해야 하고 그래야 하나라도 더 팔 수 있다는 얘기다. 눈에 잘 띄고 유동인구가 많은 대로변, 상권의 초입에 입점해야 하는 이유다.외식업의 예를 들어보자. 점심시간에 동료와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들이 즐비한 골목길을 찾았다. 왼쪽엔 설렁탕집, 오른쪽엔 국밥집이 있다.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이내 설렁탕집에 들어선다. 이들이 점포에 들어선 이상 이미 구매결정은 끝난 상태나 다름없다.

진열된 기성상품을 골라 구매하는 유통판매업종과는 달리 고객의 결정에 따라 주문 후 조리되어 나오는 상품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반품불가다. 예를 들어 설렁탕이 테이블에 내어져 첫술을 들었는데 맛이 형편없다. 맛없다는 이유로 돈 안내고 나오겠는가. 첫술 뜨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해도 돈은 지불하고 나와야 한다. 즉, 유통판매업종과는 달리 외식업종은 내점고객대비 구매비율이 90% 이상이다. 따라서 굳이 임대료가 비싼 대로변이나 상권의 초입 등에 입점할 필요 없이 다소 점포비용이 저렴한 이면도로나 메인도로의 줄기라인에 입점해도 된다는 얘기다.

서비스 업종은 지하로

서비스업종도 마찬가지다. 퍼머를 하기 위해 새로 생긴 헤어숍을 찾았는데 마음에 들게 머리를 해줄지 어떨지는 서비스를 받아봐야 안다. 결과적으로 머리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서비스를 받은 이상 돈은 지불해야 한다. 노래방이나 피시방, 피부관리실 등과 같은 서비스업종들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 된다. 외식업종에 비해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서비스업종도 내점고객 대비 구매비율은 70~80%에 육박한다. 따라서 지하나 지상2.3층에 입점해도 충분히 매출이 가능하다.이와 같이 고객들의 구매비율에 의해서 업종별 적합입지 라인이 형성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내점 고객의 회전율에 의한 영향이 가장 크다.

유통판매업종의 경우 고객이 내점해서 머무는 시간은 비교적 짧다. 물론 적극적 구매의사를 갖고 상품을 꼼꼼히 살핀다면 다소 점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 수 있다 하더라도 다른 고객들이 얼마든지 동시에 드나들 수 있다. 5평짜리 소형점포에서도 하루에 수 백명 이상 점포내 고객 회전이 가능하다는 얘기다.그러나 외식업종의 경우는 다르다. 고객이 내점해서 음식을 주문하고, 주문한 음식이 나와 먹고 일어서기까지 보통 30분 이상은 걸린다. 따라서 30평 이상의 점포에 테이블이 15개 있다고 가정하고 테이블당 4명씩 60명이 동시에 점심시간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아무리 넓은 점포라고 하더라도 더 이상 추가고객을 받기가 힘들다. 즉, 한정된 시간 동안 고객의 회전율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수 백, 수 천명이 내 점포앞을 지나다니면 뭐하겠는가. 내 점포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고객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데…. 따라서 굳이 유동인구가 많은 대로변 또는 메인라인에 입점할 필요는 없다. 물론 예외는 있다. 외식업종 중에서도 패스트푸드나 테이크아웃전문점, 테이크아웃이 가능한 분식점 등은 대로변이나 메인라인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외식업 아이템들이 대로변이나 메인라인에 입점할 수 있는 것은 빠른 고객 회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서비스업종의 경우도 이용시간에 따라 비용이 지불되는 노래방이나 피시방, DVD방 등 아무리 많은 고객이 들어온다고 해도 받아 들일 수 있는 고객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들 아이템들을 대로변 1층에서 찾기 힘든 이유이다.

고객 소비수준 살펴야

위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상권내 업종구성은 자연스레 자신의 위치를 찾는다. 이러한 업종의 배치가 안정적이라면 그 상권 또한 안정적으로 고객을 확보, 유지해 나간다. 물론, 이같은 상권내 업종구성 공식을 맹신해선 안 된다. 상권의 규모, 상권내 고객들의 소비수준에 따라서 함정이 있는 경우도 많다. 서울의 강남역 상권이나 명동상권 등 초대형상권의 경우 대로변이나 메인라인에는 기업의 대표적인 브랜드매장이 많다. 대부분 유통판매업종이다. 당연히 엄청난 유동인구를 자랑하고 점포의 임대료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다. 개인이 점포를 얻어 장사를 하기엔 그림의 떡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엄청난 비용을 들인 기업의 브랜드매장이라고 해서 충분한 매출과 수익을 올리고 있을까. 빛좋은 개살구인 경우가 많다.

기업에서 이런 대형상권의 대로변, 메인에 직영매장을 운영하는 이유는 매장의 매출보다는 ‘브랜드 홍보’를 노린 전시매장 개념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월 수천만원에 달하는 임대료와 십 수명의 인건비를 감당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의류와 구두를 팔아야 할까. 개인 창업자라면 한 두달도 못 버티고 두 손 들 것이다.성남의 신흥역상권은 지하철 개통 후 기존의 모란시장상권을 밀어내고 성남의 대표적 상권으로 올라섰다. 엄청난 유동인구를 자랑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구나 알만한 대표적인 브랜드들의 무덤이기도 하다. 엄청난 유동인구에 비해 고객들의 소비수준이 높질 않다보니 기대이상의 매출은커녕 폐점 또는 업종전환이 빈번하다. K패스트푸드점의 경우 신흥역상권의 메인으로, 상권의 초입에 입점했으나 얼마 못가 폐점할 수밖에 없었다.

상권의 규모, 사람 수만 봤지 소비수준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이어 치킨호프집이 업종배치의 룰을 무시하고 K패스트푸드점 자리에 입점했으나 역시 몇 개월 버티지 못하고 폐점했다. 상권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외형적으로 보여지는 상권의 규모, 모습에 현혹당하지 말라. 상권을 제대로 알고 적합한 입지를 찾기 위해서는 그 속으로 들어가 소비자가 돼야 한다. 또 소비자의 입장에서 소비욕구, 구매심리가 작용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실패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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