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1위 삼성의 결정…대기업에 직접고용 바람 부나

창업주부터 이어오던 80년 방침 전면 폐기 가능성 높아
 
민주노총 “이 부회장이 직접 무노조 경영 폐기 선언해야”

 
[일요서울 | 오유진 기자] 창업주 故 이병철 회장부터 80년 동안 이어졌던 삼성의 ‘무노조 원칙’이 깨졌다.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직원 8000명을 직접 고용하고 노조 활동을 보장하기로 하며 무노조 경영 역사가 사실상 마침표를 찍은 것. 앞서 삼성그룹에도 노동조합이 생기고 몇 개 계열사에 노조가 존재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노조활동은 어려웠다. 이는 노조의 활동에 사측의 탄압과 감시가 뒤따른 탓. 그러나 삼성이 노조를 대화상대로 인정하며 삼성 계열사들의 노조 활동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 재계 1위인 삼성의 결정으로 타 대기업의 협력업체 근로자 직접 고용에도 긍정적 변화가 찾아올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그룹 총수 일가 중 유일하게 구속됐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53일 만에 풀려난 지 두 달여 만인 지난 17일 삼성전자서비스는 협력업체 직원 8000명의 직고용 방침을 발표하며 “고용의 질이 개선되고 서비스의 질 향상을 통한 고객 만족도 제고는 물론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삼성 측은 “합법적 노조활동을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삼성전자가 100% 출자한 자회사로 정규직이 되는 8000여 명 가운데 이미 조직화된 노조원만 7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삼성전자서비스의 직고용 방침과 노조활동 보장 발표는 창업주부터 이어져 오던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 방침이 이재용 부회장 시기에 전면 폐기 가능성을 높인 것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사실상의 폐기’라고 평가한다.
 
다만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 노동조합이 직접고용에 합의했지만 검찰 수사와 민사 소송은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성훈)는 지난 18일 경기도 수원 삼성전자서비스 본사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건물 지하 창고에 보관된 문서 등 증거 자료를 확보했다. 부산 해운대센터 등 4곳에도 수사 인력을 보내 인사관리와 경영 관련 자료를 압수 수색했다.
 
원칙 접은 이유는
 

앞서 삼성그룹 계열사 중 민주노총 산하 노조 설립은 2011년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지난해 3월 삼성엔지니어링, 4월 삼성웰스토리, 7월 에스원 등이 있었으며 삼성SDI, 삼성증권 등에도 한국노총 산하 노조가 있다. 그러나 노조 활동에 사측의 강도 높은 탄압과 감시가 계속 잇따라 노조 활동에 제약이 많았으며, 사측과 직접 단체교섭에도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돌연 삼성이 80년을 이어가던 ‘무노조 원칙’을 사실상 접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 뇌물사건이 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노조 와해 공작 문건 발견’으로 관련된 검찰 수사가 삼성 수뇌부로 칼끝이 향하자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에 이번 삼성의 선택은 이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각종 의혹들이 존재하지만, 이번 삼성 측의 ‘결단’이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재계 1위인 삼성의 결정으로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대기업에서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인 것. 이에 협력업체 근로자 직접 고용에 큰 변화가 잇따를 것으로 보여 고용시장에 어떤 변화에 바람이 불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삼성전자서비스가 직접고용을 약속한 협력사 직원수 8000명으로 단일 기업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정규직화라는 점 때문에 업계는 긍정적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앞서 대기업들 중 협력사 직원들을 직접 고용한 사례는 존재했지만 본사가 직접 채용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자회사를 설립하는 등 간접고용 형태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본사가 직접 나서 협력사 직원들을 전원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직접고용’을 택했다. 직접고용으로 연봉이나 처우도 기존 직원들과 동등하게 할 것으로 보여 차후 고용되는 협력업체 근로자의 기대감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의 이번 결정이 향후 다른 계열사로 노조활동이 번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서비스의 모회사인 삼성전자에 노조가 설립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삼성 경영진이 무노조 경영 위주에서 이제는 노조와 동반해 경영을 해 나가는 것이 노무 관리의 정도가 돼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기대된다”고 말했다.
 
변화의 바람 예고
 
한편 민주노총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센터 직원의 직접고용은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검찰수사를 면하려는 ‘꼼수’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나서 무노조 경영이 공식 폐기되었음을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삼성 무노조 전략 공작들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확인된 게 6000건이 넘고, 이 모든 게 삼성 그룹의 최정점인 미래전략실에까지 보고 됐다”며 “삼성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합의한 것이 삼성의 면죄부가 돼선 안 된다”고 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삼성 이재용은 야만적인 무노조 경영전략과 노조파괴 범죄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며 “무노조 경영을 폐기했음을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 공식 선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삼성 노조 와해 문건 수사에 대한 입장 천명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및 웰스토리지회, 삼성에스원노조 등 25만 삼성노동자에게 노조 할 권리 보장 ▲삼성그룹 포함 재벌대기업들이 고용한 50만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삼성 무노조 경영을 종식시키기 위한 요구사항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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