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세상’에 사는 ‘가진 자들’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땅콩 회항’ 4년 만에 한진가(家)의 ‘갑질’이 또다시 입방아에 올랐다. 이에 수많은 ‘을’의 분노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라면상무’, ‘맷값 폭행’에 이르기까지 재벌 일가의 반사회적 행위는 반복되는 모양새다. 이런 낡은 관행은 성장기부터 잘못 자리 잡아온 특권의식에서 시작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전문가들은 ‘뿌리박힌 폐단’, 이른바 적폐를 청산하는 게 시대정신인 지금 단호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일요서울은 갑의 심리를 알아봤다.


-왜곡된 특권·계급의식 탓…열등감도 한몫
-전문가 “사회가 일탈에 대한 책임 물어야”



재벌들의 일탈행위는 숱하게 많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인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은 지난 1월 서울 강남구 청남동 한 주점에서 만취 상태로 종업원을 폭행하고 마시던 위스키 병으로 종업원 얼굴을 향해 휘둘러 사회 문제가 됐다.

대림그룹 창업주인 고 이재준 명예회장의 손자인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은 지난 2014년 수행기사가 운전 매뉴얼을 지키지 않으면 욕설을 하고 폭행해 근로기준법 위반 등 혐의로 2015년 벌금 1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 밖에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 몽고식품 김만식 전 명예회장,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 등도 기업 총수들의 갑질 사례에 한몫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재벌 3세 자존감 낮아



정신분석·심리 전문가들은 재벌의 갑질 바탕에는 심한 열등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특히 재벌 3세들은 자존감이 낮다. 이는 대부분 어린 시절 가족관계의 문제에 기인해서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며 “양육 초기에 어머니의 보살핌을 충분히 받지 못했거나 부모 관계가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아울러 그는 “반복되는 가혹한 교육은 이들을 좌절하게 하며 내면에 열등감을 뿌리내리게 한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을 모욕해 열등감을 느끼게 하고 이를 통해 상대적 우월감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대한항공 직원이 녹음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음성 파일을 들어본 결과 본인을 오히려 피해자로 여기는 의식이 분노의 이면에 깔려 있었으며 이는 히스테리성 성격장애, 더 나아가면 경계선 성격장애에 해당한다고 진단했다.

해리성 장애 또는 연극성 인격장애라고도 불리는 히스테리성 성격장애는 감정의 표현이 과장되고 주변의 시선을 받으려는 특징이 있다. 경계선 성격장애는 정서·행동·대인관계가 매우 불안정하며 변동이 심한 이상 성격으로 감정의 기복이 큰 성격 장애다.

또 다른 전문가는 잘못된 특권 의식을 꼬집었다.

실제 조 전무의 개인 홈페이지에서는 “항상 타는 비행기 일등석은 당연한 자리였다”, “어릴 때부터 수입차를 타고 다녀 만족스러웠다” 등 특권의식이 엿보이는 글이 다수 발견됐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심리 치유로 유명한 이명수 ‘치유 공간 이웃’ 자문위원은 “재벌가들은 분노를 조절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들은 어떤 견제도 받지 않고 상한선도 없기 때문이다”며 “유일하게 눈치 봐야 할 대상은 아버지뿐으로 노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을 낮은 신분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라고 전했다.

이 위원은 갑질의 원인으로 확장된 자기효능감으로 인해 무너진 자기경계를 꼽았다.

자신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이 커 거칠 것도 없고 멈칫할 것도 없다는 말이다.

이와 더불어 그는 재벌의 갑질을 성격적 문제가 아닌 환경적 문제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선 재벌들의 횡포를 보며 ‘분노조절장애’를 추측하지만 이는 안일하고 속 편한 진단이라는 게 이 위원의 주장이다. 그는 “성격적으로 문제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화를 내면 대가를 치러야 해서 절제하는 거다”며 “환경적인 문제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성격의 문제로 가면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벌에 유독 관대한 처벌
‘갑질’ 흐름에 경종 울려야
 


고용주의 위법 행위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치는 것도 기업 총수의 갑질이 끊이지 않는 이유로 분석됐다. 지금까지 오너의 폭언에 대한 처벌은 벌금 1500만 원이 최대였다.

핀란드 노키아사의 안시 반요키 부회장은 제한시속 50㎞ 구간에서 75㎞로 오토바이를 달리다가 벌금 11만6000유로(약 1억5000만 원)를 물었다. 이는 소득에 따라 벌금이 달라지는 ‘일수벌금제도’ 때문이다.

이 위원은 이 같은 동등희생의 원칙이 우리나라에도 절실하다고 전한다. 그는 “미국 등은 오너 리스크가 크면 주주들이 그 집안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결국 버틸 방법이 없는 오너 일가는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는다”며 “우리나라는 이런 견제 장치가 없어 재벌가의 황당한 분노나 모멸감을 아버지가 회장이 아닌 대다수가 받게 된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도 재벌가에게 유야무야했던 처벌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 측 관계자는 일요서울에 “항공법에서는 안전운항을 방해하는 승객들의 처벌을 더욱 강화하는 추세이지만 권력을 가진 재벌에게는 이러한 책임까지 주어지고 있지 않다. 4년 전 조 전 부사장이 제대로 처벌됐다면 오늘의 조 전무 갑질은 없었을 것”이라고 일갈하면서 “우리 사회는 재벌에 대한 견제가 없는 게 문제다. 노조가 강해지거나 중소기업이 재벌에 대항할 수 있는 단결권, 단체 행동권 등의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대책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사회가 이들에게 일탈에 대한 책임을 엄격히 물어 ‘조현민’이 재벌가 갑질의 끝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인석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외부로 알려지게 된 것”이라며 “우리 기업도 의혹이 사실이 아닐 경우 따로 보상하는 한이 있더라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문제가 생긴 창업 기업가의 임원을 업무에서 즉시 배제하고 청문하는 절차를 갖춰야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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