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감독’ 받는 정부…공사 장비 추가 반입 불발

<뉴시스>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최종 배치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도 국방부와 주민·반전단체 간 갈등의 골이 메워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철회 성주주민대책위 등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6개 단체는 “평화 정세에 역행해 사드 부지 공사를 강행하면 저지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국방부는 기지 내 열악한 생활환경을 개선하려면 공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공권력의 위신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국방부 “사드기지 화장실 물도 못 내려…악취로 고통”
-나락으로 떨어진 공권력…사드 대치 장기화 하나



국방부와 성주 주민들은 지난 16일 사드 기지 내 장병의 생활공간 개선 작업에 필요한 공사 장비와 자재 반입 문제를 놓고 협상했다.

국방부 대외협력팀 관계자에 따르면 국방부 관계자 3명과 소성리 사드철회성주주민대책위원회 상황실장, 대변인 등 2명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11시 15분까지 총 1시간 15분간 대화를 이어갔다.

반대 단체는 이 자리에서 “국방부가 지난 12일 거짓말을 했다. 민간 장비만 꺼내겠다고 했는데 미군 장비만 가져갔다”면서 “이는 명백한 약속 위반”이라며 공식 사과를 국방부에 요구했다.

반면 국방부 측은 “당시 협상 과정에서 민간 장비만 반출한다는 것을 약속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날 추가 장비 반입 여부 등과 관련된 사안은 올리지도 못했다고 군 관계자는 전했다.
 

시위대 150여 명에
경찰 3000여 명 ‘철수’

 

앞서 ‘소성리 사드철회성주주민대책위원회’ 등 사드 반대단체 회원 150여 명은 지난 12일 이른바 옥쇄투쟁을 전개해 이목을 끌었다. ‘옥쇄’란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진다는 뜻으로 옥쇄투쟁이란 결기에 찬 모습을 보인다.

녹색 그물망을 뒤집어쓴 이들은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진밭교에서 목만 내민 자세로 모래 반입을 막았다.

반대 단체는 “남북과 북미 회담이 예고된 만큼 사드가 대북 방어용이라는 주장은 허위에 불과하다”며 “이런 시국에 사드 기지 공사를 재개하겠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침탈”이라고 강조하면서 시위의 강도를 높였다.

이에 경찰은 진입로 확보에 앞서 8차례의 해산 경고방송을 했으며 다리 아래에 안전 매트리스를 설치했다.

하지만 충돌 과정에서 소성리 주민 4명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일부 경찰관도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국가인권위 측 인사는 양측의 물리적 충돌이 심화할 조짐을 보이자 국방부 측 인사와 주민 대표 간 만남을 주재했다.

국방부 차량 등은 이 타협으로 당초 국방부가 계획한 중장비 기사용 승합차, 트레일러 12대, 트레일러 안내 차량 등 15대를 들여보냈고 이와 더불어 사드 기지 내에 있던 지게차, 포크레인, 불도저 등도 빼냈다.

아울러 국방부는 반대단체와 재협상 재개를 약속했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 대치 중이던 경찰 3000여 명은 후방으로 철수했다.
 

생활 여건 악화에도
발만 ‘동동’

 

국방부는 공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사드 기지는 지난해 4월 이후 1년 여간 반대단체의 출입구 검문·검색으로 시설 개선 공사를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현재 사드기지 내 주한미군 장병은 임시 숙소와 골프장 클럽하우스 등에서 거주하며 임무 수행 중이다.

문제는 비좁은 숙소와 열악한 시설이라고 군 관계자는 전했다.

골프장은 150명 기준으로 설계됐다.

하지만 현재 한국군 장병 260여 명과 주한미군 장병 140여 명 등 총 400여 명의 장병이 기지 내에 주둔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장병 수에 비해 좁은 숙소는 물론이고 장병의 생활여건도 날로 악화하고 있다. 천장은 비가 오면 물이 새고 곰팡이가 슨다. 누전이 일어날 위험도 있어 장병의 안전이 걱정이다”며 “건물이 10년 되다 보니 전선도 노후화됐다. 심지어 화장실도 자주 막히고 오수 처리 시설까지 고장 나 장병들이 악취에 괴로워 한다”라고 토로했다.

조리시설 환경도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현재 조리실 내 바닥 배수관은 막혀 있으며 천장 환풍기는 작동하지 않는다.

군 관계자는 반대단체가 ‘조리시설 증축 반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전한다. 그는 “증축이 아닌 보수 공사이며 한미 장병 공동으로 사용하는 시설이다. 미 장병이 먹는 것도 안 된다고 하니 난감하다”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전체 사드 부지에 대한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지시하면서 그 결과에 따라 사드 최종 배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환경영향평가는 현재 공사가 지연됨에 따라 7개월째 시작도 못하고 있다.
 

악순환 언제까지
“군도 필요없나”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국가의 주요 군 시설이 시위대의 통제를 받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경석 새로운한국을위한국민운동 집행위원장은 “정부가 공권력으로 반대 단체를 강력히 억제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면서 “게다가 남북 간 대화국면이라고 하지만 아직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바뀐 게 없다. 사드는 방어 무기체계다. 반대단체의 주장대로라면 군도 필요 없다는 말이 된다”라고 꼬집었다.

또 그는 “두 달 전 사드 현장에서 집회 신고를 내고 행진을 준비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를 안 반대 단체가 가로막았다”며 “법적으로 허용된 행진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충돌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이유로 행진을 막았다. 눈치만 보는 경찰도 문제”라고 전했다.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 소장 역시 “현재 성주 미군 사드 기지에는 민간인의 바리케이드가 2단계로 설치돼 장비, 식량 등의 이동이 차단된 상태다. 이 때문에 헬기로 실어 나르고 있다고 한다. 현지 경찰 수십 명은 민간의 불법 도로 차단을 멀리 떨어져 방치하고 있다”며 “경찰이 ‘수사권 독립’을 주장하려면 공권력 행사 또한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법대로 해야 한다”라고 했다.

국방부가 장비를 반입할 때마다 반대단체의 허락을 받는 모양새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올바른 사실관계를 알려주고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대화일 뿐, ‘허락’이 아닌 ‘양해’로 봐야 한다”라고 반박해 앞으로 대화를 통한 협상이 진전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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