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타오르는 ‘미투 운동’의 불길

<포스트잇으로 그린 지켜보고 있는 눈>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미투 운동(#metoo·나도 말한다)이 일어나지 않은 곳을 찾아보자. 단초가 됐던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있었던 검찰계, 이후 문단과 연극을 비롯한 문화예술계, 정치계, 교육계, 체육계… 이 모든 곳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곳이 없다.

이러한 사실은 암암리에 각계에서 성폭력이 만연하게 자행돼 왔음을 뜻한다. 성폭력은 일상 속에 만연해 있다. 왜곡된 성의식과 관행이라는 다른 이름에 온존한 범죄 행위였다. 이번 미투 운동이 등장한 곳은 종교계와 문화예술·교육계 현장이다.


객원교수가 학생에게 낯 뜨거운 말…피해학생 대자보로 사실 밝혀
포스트잇 함께 붙여 학우에게 지지와 연대 응원



‘다들 그러는 줄 알았고, 여태까지 그렇게 해 왔으니까’라는 논리는 가해자에게는 변명의 빌미로, 피해자에게는 자기검열 기제로 작용된다. 폐쇄성 짙은 문화예술계의 경우 이러한 관행의 논리가 더욱 강하게 적용한다.

지난 13일 한 트위터 계정을 통해 알려진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서 일어난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이 계정의 주인은 “드디어 터질 게 터졌다”면서 한예종 전통예술원 객원교수로 있는 A씨의 발언이 담긴 사진을 게시한 뒤 공유를 요청했다.

사진에는 한예종 전통예술원 유리문 앞에 해당 교수의 발언을 워드로 적어 출력한 문건이 붙어있는 모습이 담겼다.

적힌 내용들을 살펴보니 ‘과연 이게 교수가 학생에게 할 수 있는 말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발언 강도가 셌다.

이와 더불어 프린트를 제작해 붙인 학생들은 “누군가 자꾸 프린트를 제거하고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프린트를 떼는 행위) 역시 2차가해”라고 주장했다.

현재 한예종 전통예술원의 ‘포스트잇 미투(문구를 적은 포스트잇을 통해 미투에 지지와 연대를 표하는 방식)’는 피해 학생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다는 것을 넘어 다른 학생들이 피해 학생에게 지지를 표하고 연대하고 있음을 뜻한다.

미투, 그리고 위드유(#withyou·함께하겠다)의 현장을 일요서울이 직접 찾아가 봤다.
 
대자보·포스트잇
무언으로 이어가는 투쟁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한예종 석관동 캠퍼스는 본관과 별관으로 나뉘어 있다. 현재 논란에 휩싸인 전통예술원은 별관에 위치하고 있다. 별관에는 미술원과 전통예술원 2개의 동이 있다.

현재 내홍을 겪고 있지만 학교의 분위기는 예상 외로 고요했다. 하지만 포스트잇이 붙은 전통예술원 유리문 앞은 학생들의 무언(無言)의 투쟁 현장이었다.

포스트잇이 주로 붙은 곳은 유리문과 전통예술원 1층 복도였다. 성폭력 발언을 한 교수 A씨와 해당 학교의 재학 중인 학생 B씨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 적었는데, 모든 종이마다 다른 말들이 적혀 있었다.

이어 학생들이 포스트잇, 볼펜을 활용해 그 발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 것도 눈에 들어왔다.

해당 논란에 관해 여성문제연구회 관계자는 “(쉽게 말하면 교수와 학생 사이는) ‘갑’과 ‘을’ 관계다. 자신이 갑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그러한) 성적 발언이 문제 될 거란 인지를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피해 학생이 글을 통해 입장을 표한 것이다.

해당 학생은 SNS에 “한국예술종합학교 구성원 여러분께”라는 글을 게시하면서 “억측을 막기 위해 말씀드린다. 나는 남성이다”라고 자신의 성별을 밝힌 후 “A 교수의 일부 발언 때문에 많은 분들이 나를 여성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는 분명 남성이다”라고 확실시했다.

이어 자신의 피해 경험을 말한 뒤 “성범죄의 피해자는 여성에 국한되지 않는다”면서 “성범죄는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 힘의 문제라는 것을 말씀드린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제3의 성이든, 상대의 의사를 무시한 모든 성적인 행위는 범죄”라고 토로했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절차와 행동을 통해 A강사의 영구 해임과 (또 다른 가해자) B씨의 제적 등을 요구할 것이고,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응분의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앞으로는 더 이상의 성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노력과 실천을 이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생들이 적은 메시지가 곳곳에 붙었다>

 
한예종 미투 처음 아냐
확실한 조치와 빠른 징계 촉구

 
한예종 내의 미투운동은 일전에도 있었다. 2016년 10월 23일 개설된 ‘한예종 애니과 여성혐오 아카이빙’이라는 트위터를 통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애니메이션과 내 여성혐오 사례를 수집, 공론화했다.

해당 트위터는 “교수, 강사, 다른 학생들로부터 성폭력, 성희롱, 여성혐오적 언행을 경험하신 졸업생, 재학생 분들께서 제보해주시면 (해당 내용을) 올리겠다”고 밝혔고, 실제로 접수된 사례들을 공개했다.

이 활동은 지난해 12월 7일 애니메이션 학과 내 복도에 ‘애니과 내 여성혐오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시스템 개선요구의 글’이라는 대자보 게시 및 서명참여로 확대됐고, 학교 측은 해당 학과의 학과장을 통해 같은달 21일 이에 대한 답변을 내놨다.

이 밖에도 ‘한국예술종합학교 대나무숲’, ‘한예종 연극원 여성혐오 아카이빙 갈무리’ 등의 페이지를 통해 유사한 성폭력 제보들이 들끓었다. 그 뒤 또다시 이번 계기를 통해 새로운 성폭력 피해 사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현재 한예종에서는 황지우, 김태웅, 김석만, 박재동 총 4명의 교수가 진상조사에 임하고 있다.

이번 성폭력 피해 사건에 대해 한예종 전통예술원 측은 “현재 해당 강사에게 강의 배제 조치를 내렸으며, 학교 차원에서 실시하는 진상조사 이후 결과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한예종 대외협력과 역시 “(사건에 대해) 객관적으로 조사를 진행할 수 있는 진상조사회를 꾸려 투명하게 절차 따라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포스트잇, 대자보 등을 떼어 2차 가해를 가한다는 의혹에 대해 한예종 측은 “학교 차원에서 (게시물을) 임의로 뗄 수 없다”고 답했다.

학생 측에서는 이에 대해 어떠한 대처를 마련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한예종 총학생회 측은 “현재 해당 사건에 관한 학우들의 의견을 취합 중에 있다”고 밝히면서 “가해자인 교수 A씨에 대해 확실한 조치와 빠른 징계를 바란다는 여론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과정 개설, 진상조사 현황 보고, 인권센터 설립 촉구 등을 시행하고 있다 밝혔다. 유사한 문제가 재발생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특히 교육과정 개설 부분이 주목된다. 이에 대해 총학 측은 “‘예술가를 위한 젠더연습(가칭)’이라는 이름의 교과과정의 개발을 완료했다. 올해 2학기부터 시범 운영될 예정이며 내년 입학하는 신입생들부터는 필수 과목으로 지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당 교과는 성폭력을 주로 다루던 이전의 교과과정에 위계폭력을 추가로 다루는 방식으로 개발됐다.
 
성폭력 혐의 제기
교회 측 “사실 아니다”

 
서울의 C 교회도 성폭력 의혹에 연루됐다. 해당 교회는 대략 150명 정도의 교역자가 근무하고, 약 13만 명 정도의 신자 수를 지닌 대형교회다.

지난 10일 JTBC는 ‘뉴스룸’ 방송을 통해 “서울의 대형 교회 담임 목사가 여러 명의 신도들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돼서 경찰이 지금 수사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JTBC에 의하면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5명의 진술을 경찰이 확보했으며 피해기간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15년까지 20년 가까이 된다.

이어 해당 매체는 지난 17일 방송에서 C교회의 부목사 D씨와 고위 직원 1명이 해당 교회에 사표를 낸 뒤 경찰에 자진 출석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부목사 D씨는 경찰로 향하기 전 ‘양심 선언’이란 제목으로 교회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음성 메시지를 성도들에게 보냈고, 해당 직원은 사임하기 전 신도들에게 “그동안 성폭행 문제를 알고도 외면해 왔다”고 전했다고 한다.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서울지방경찰청과 연락을 취했다. 서울지방경찰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것은 맞다”고 밝히면서 “(하지만 해당 사건이 벌어진 곳이)종교계이고 워낙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진행 과정을) 알리기 어렵다”는 말만을 남겼다.

C교회 측은 이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해당 논란이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사실을 아는지 묻자 C교회 측은 서면을 통해 “사실 여부는 경찰이 다 밝혀 주며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법적으로 정정당당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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