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가요계 최고의 스타는 그룹 핑클에서 솔로로 전향한 이효리였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인기를 끈 것은 아니다. 노래를 제일 잘하지도 않았고, 춤을 가장 잘 추지도 못했다. 뒤로 나자빠질 정도로 섹시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대스타가 될 수 있었을까.

당시만 해도 넥타이부대 아저씨들에게 스포츠신문은 연예인들에 대한 절대적인 정보 제공자 역할을 했다. 그들은 불경기를 극복하며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었다. IMF 사태 때 골퍼 박세리가 그랬던 것처럼 밀이다. 음반 시장도 신통치 않았다. 불황을 돌파해 줄 수 있는 대형 스타가 출현해 주기를 간전히 바라고 있었다.

이를 간파한 스포츠신문들은 일종의 묵시적 ‘담합(?)’을 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이효리를 ‘시대의 피그말리온 조상(彫像)’(왕의 사랑을 받고 여자로 변한 상아 조각)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유방성형을 논란거리로 만들어 대중의 관심을 끌게 하고, 기술적인 노출과 섹스어필 홍보에 열을 올렸다. 강한 이미지와 강북 지향적 스타일도 가미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거의 매일 1면 톱기사로 장식했다.        

대중은 스포츠신문사들이 쳐놓은 여론전에 걸려들었다. 점점 세뇌되어 가더니 얼마 가지 않아 이효리에 푹 빠지고 말았다. 마침내 이효리 신드롬이 만들어진 것이다. 미디어에 의해 세공(細工)된 이효리는 그렇게 대스타가 됐고, 여전히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효리와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여론재판으로 이미지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옳고 그름이 정확하게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론은 성급하게 누군가를 심판한다. 그리고 그의 악행(?)은 지라시 언론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 당사자는 졸지에 ‘악인’이 되고 만다. ‘진실’에 대한 접근은 아예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이처럼 여론전은 보통 사람을 ‘영웅’으로 포장하기도 하고, 선량한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 ‘악인’을 선인(善人)으로 둔갑시키기도 하는 ‘요술 방망이’ 같다.

여론전은 또 전쟁터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사용된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은 마지노 선 근처에서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 평화를 사랑하는 군인들” 이라는 거짓 여론전을 펼치며 프랑스군을 속인 뒤 마지노선을 우회해서 프랑스를 공격했다.

일본 정부는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인식을 자국 국민과 국제사회에 심기 위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는 영상, 사진, 그림 등을 인터넷에 올리는 등 대대적인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처음에는 먹히지 않더라도 계속 홍보하면 언젠가는 아니라고 하던 사람이 ‘의심’을 하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자신들의 말을 믿게 만들려는 속셈이다. 

최근 ‘드루킹’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파워블로거가 우리 사회를 발칵 흔들어놓았다. 이른바 ‘댓글조작’ 사건으로, 그는 인터넷에서 각종 여론조작을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연일 이 일을 두고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은 이 사건을 “19대 대선 불법 여론 조작 게이트”라며 국회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수사를 요구했다. ‘드루킹’이 지난 대선 때 反안철수 정서를 조장하는 인터넷 글을 올리는 등 불법 활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다. 다가오는 6·13 지방선거는 물론이고 앞으로 치러질 선거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매크로’라는 프로그램을 돌려 순식간에 여론을 조작해 엉뚱한 사람을 당선시키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지난 1월 중순 ‘드루킹’이 댓글 조작을 한 직후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10% 가까이 급락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하고 있지 않은가.

IT(정보기술) 강국이라고 자처하는 한국이 되레 IT에 당한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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