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시리아 폭격, 국제전 확대는 피해
서방의 시리아 폭격, 국제전 확대는 피해
  • 곽상순 언론인
  • 입력 2018-04-23 16:27
  • 승인 2018.04.23 16:27
  • 호수 1251
  • 28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러시아, 신냉전‘ 기류 오래갈 듯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15개월 안에 미국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반군 소탕을 명분으로 자국 민간인에 대한 화학무기 공격을 명령했기 때문에 이를 응징한다며 시리아를 두 차례 폭격했다. 국제정치 분석가들은 미국의 거듭되는 시리아 폭격을 시리아의 오랜 우방인 러시아를 겨냥한 대리전쟁이라고 해석한다. 1990년대 초반 소련이 붕괴하면서 자연스레 함께 소멸했던 냉전(冷戰)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분석가들이나 언론이 들고 나오는 ‘신(新)냉전’ 주장을 근거 없다며 일축하고 있지만,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추가 경제제재 카드를 꺼내들고, 러시아가 서방을 향해 사이버전쟁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미·러 간 ‘신냉전’ 기류는 지속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서방의 공격에도 미국 등이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전복을 원하지 않는 점을 보여준 만큼 오히려 향후 반군을 향한 시리아 정부군의 탄압이 더 거세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6일(현지시간, 이하 같음)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명단을 발표했다. 명단에는 러시아 알루미늄 회사인 루살의 올렉 데리파스카 회장을 비롯한 신흥재벌(올리가르흐) 24명과 기업 14곳이 포함됐다. 재무부는 보고서에서 “데리파스카 회장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러시아 연방 정부의 고위 관료를 대신해 행동했다”고 명시했다. 명단에 오른 개인과 기업은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 기업과의 거래가 금지된다. 미국 언론은 이번 제재가 2016년 미국 대선과 크림반도, 우크라이나, 시리아 사태에 개입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응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재무부의 이번 추가 제재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데리파스카 회장이다. 9일 그가 소유한 회사들은 전 세계 증권시장에서 총 60억 달러(약 6조4146억 원) 이상의 손실을 보았다. CNN에 따르면 이날 홍콩 증시에서 루살 주가는 50.4% 폭락했다.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 업체인 루살 시가총액은 이로써 45억 달러가량 증발했다. 루살이 미국의 제재로 파산 위기에 처하자 러시아 정부는 11일 루살에 단기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분석가들은 러시아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루살이 파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번에 루살에 대해 가한 제재는 전례 없이 강도가 높은 것이다. 미국 정부는 루살의 부채(채권)와 주식을 소유한 어떤 사람도 이를 2018년 5월 7일까지 처분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지난해 말까지 루살의 부채는 76억 달러(8조1000억원)인데, 이 가운데 92.5%가 달러로 표시된 부채다. 런던 금속거래소에서는 루살 알루미늄 거래가 중단된 상태다. 루살 사태는 러시아 입장에서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미국의 전례 없는 이번 제재는 러시아 자산 가격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 루블화는 미국 달러화에 대해 12% 하락했다. 미국은 러시아 최대 에너지 기업 가즈프롬과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와 같은 주요 러시아 기업들을 이미 제재했지만 이번처럼 제재 대상 기업 주주들에게 주식 처분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미국 재무부는 이번에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루살 주식이나 채권을 보유한 사람들은 우리가 정한 시한까지 그것을 처분하시오. 우리 권고를 따르지 않아 나중에 입을 손해에 대해서 미국은 책임이 없소”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금융을 지배하는 미국의 이런 엄포에도 불구하고 루살에서 발행한 증권(證券)을 그대로 쥐고 갈 투자자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 개입했다”는 소위 러시아 스캔들이 그와 무관한 것임을 입증해야 할 처지다. 따라서 트럼프의 러시아 옥죄기가 앞으로 어떤 양상과 강도(强度)로 더 지속될지 전망하기 어렵다. 러시아는 2015년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합병했으며, 서방이 지지한 대중적 봉기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친(親)러시아 정권이 축출된 후 우크라이나 동부 친(親)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일으킨 반란을 부추겨오고 있다. 유럽과 미국은 크림반도 합병으로 냉전 종식 이래로 서방과 관련된 가장 심각한 위기 속에서 러시아에 제재를 가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2차대전 후 강대국들끼리 서로 약속한 현상변경 금지, 즉 개별 국가의 영토를 인위적으로 변경하는 것에 대한 금지를 어긴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간의 정치적 말싸움은, 화학무기를 저장하거나 생산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시리아 내 시설들에 대한 세 차례 폭격을 트럼프 대통령이 13일 명령하면서 계속 가열됐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자동차로 약 27분 거리에 있는 도시 두마에서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고 러시아는 말한다. 미국·영국·프랑스는 화학무기 관련 의심 장소 3곳을 타격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실행했다. 미국이 주도한 이번 공습에서 시리아나 러시아의 군사 시설이나 공용 건물이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가 무력 보복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더라도 미·러 화해를 기원했던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보고 기대를 접어야 할 수밖에 없게 됐다. 트럼프는 이번 시리아 공격을 푸틴 탓으로 돌림으로써 냉전 시대 식(式) 언설(言說)을 되살렸다. 푸틴은 시리아 공습 다음날인 14일 성명을 내고 이번 공습이 트럼프가 명령한 두 번째 공습임을 상기시키면서 이번의 경우 “어떤 현지 주민도 화학무기 공격이 실제로 발생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미국은 시리아 사람들에게 7년간 고통을 가함으로써 이 나라와 지역을 탈출하는 난민의 물결을 일으킨 테러범들에게 영합한다”고 비난했다.

이번 ‘신냉전’이 1980년대의 그것과 사뭇 다른 것은 미국 외교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의 동향이라는 점이다. 중국은 최근 미국과의 무역분쟁을 진화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10일 중국 남부 하이난성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서 중국의 시장 개방을 대폭 확대할 것을 재천명했다. 이날 오전 보아오포럼 개막식 기조연설자로 나선 시 주석은 “중국의 시장은 열려 있다.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이 열겠다”면서 금융과 자동차 분야에 대한 개방 확대와 투자 제한 완화를 약속했다. 그는 특히 더 많은 미국산 상품과 서비스에 중국을 개방하겠다고 말했다. 만약 ‘신냉전’이 본격화한다면 이번에 그 주역은 미국과 중국이 될 것이다.


곽상순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