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러시를 이루며 글로벌 경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 단병호 의원과 민주노총은 최근 지난 7월 실시한 ‘동남아시아 진출 국내 기업의 노동탄압 실태조사’를 통해 해외에 진출한 삼성, 한진, 삼한 등 한국기업의 비도덕적 인권침해와 노동기본권 침해 사례를 발표했다.현지 한국 기업은 임금체불, 공장폐쇄, 경영자 도주 등 현지법 위반과 노사 중재 기구들의 결정도 무시하고 있었으며, 또한 범죄행위에 가까운 사기, 감시, 폭언 등의 인권침해와 노동기본권조차 보장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삼성의 경우는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지에서 ‘무노조’ 방침을 이어가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글로벌시대를 거꾸로 돌리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의 허와 실. 그리고 해외진출 사업장에서의 노조 정책을 추적해 본다.

노조 파괴 전략인가 경영 전략인가

글로벌시대를 맞이하여 국내 기업들은 어느 기업할 것 없이 국외 진출을 하고 있다.세계적 기업군으로 성장한 삼성그룹도 해외에 진출하여 세를 확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성장배경 뒤편에 ‘무노조 신화’라는 경영방침으로 인한 노사갈등이 자리 잡고 있어 노사분쟁이 발생하면 도화선처럼 불붙기 시작할 것이고 자칫 한국 상품에 대한 신뢰도와 인지도가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다.국회 환경노동위 단병호 의원과 민주노총은 최근 지난 7월 실시한 ‘동남아시아 진출 국내 기업의 노동탄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태국에 진출한 삼성 현지 법인 삼성 일렉트로 메카닉스는 지난 5월 부당전출, 해고, 노조설립을 놓고 노사 갈등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측은 노조 설립에 동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반대 서명’을 강요하는 등 노조탄압을 했다는 것. 노사간 갈등은 추가 근무수당과 부당전출에서 비롯되었다.

태국 삼성 일렉트로 메카닉스에 채용된 현지 정규 노동자는 3,278명. 일일 급여는 215바트로 최저임금 175바트보다 높다. 노동 기준법에 휴일 근로수당이 8시간 초과시 시간당 3배인데 반해 삼성측은 2배만 지급해 왔다. 삼성측은 일정 기간 외국기업에 부여되는 특혜를 유지하기 위해 2개 라인을 분리하여 두 개의 신규 사업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겐 신규 사업주와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신규 채용형식으로 고용계약서에 서명케 했다. DY라인 1,130명과 FBT라인 450명을 각각 MIR과 Anyon이라는 기업과 신규 고용계약을 맺게 했다. 이때부터 삼성측은 노조가 설립될 움직임이 보이자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등 노조 파괴 공작을 시작했다는 것.

삼성측의 노조 파괴 전략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거부한 노동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며 ▲3인 이상 모임 금지 ▲ 전화통화 감시 ▲총연맹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연장근무로 퇴근시간을 지연하는 방법 등을 사용했다.삼성측은 추가 근무 시간에 대한 수당 미지급건에 대해 지난 8월18일 노동청으로부터 시정 명령을 받자, 삼성측은 400여명 노동자에게 지난 2년간 과소 지급된 초과 근로 수당(1인당 2,000바트)을 지급했다.국회 노동환경위 단병호 의원은 “삼성측이 현지 노동자들에게 노조를 결성하면 회사가 문을 닫게 될 것이고,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고 전제한 뒤 “노동자들 가운데 노조 결정을 지지하는 조직이 있었다.

삼성 관리자 측에서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노조 지지 서명을 철회하도록 했다”고 밝혔다.노조 설립을 원천 백지화시킨 뒤 삼성측은 노조설립추진에 관여한 7명을 해고했고, 그 중에서 5명을 복직시켰다. 그리고 2명에겐 보상금 2만불을 지급하면서 더 이상 법적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아냈다는 것.단병호 의원은 “삼성 일랙트로 메카닉스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일부는 빈혈, 면역 체계 이상 호소, 유산하는 사람이 매년 있었다”고 비난했다.해외진출한 삼성측의 무노조 경영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말레이시아 삼성전자는 지난 99년 노조 설립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있다. 당시 노조설립 신고서가 제출되자 가입 노동자들을 상대로 회사측이 노조탈퇴 서명을 받아 결국 노조 설립을 무산시킨 바 있다.

삼성전자, 말레이시아·독일서도 노조설립 방해

말레이시아 전기산업노조 한 관계자는 “노조설립을 하자마자 사측의 한국 관리자들은 삼성에서 노조는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탈퇴서명을 강요했고, 언어폭력, 협박, 해고위협을 했다”며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탈퇴서에 서명했고 이후 동력이 소진됐다”고 증언했다. 삼성전자가 전기 노조 가입을 그토록 꺼렸던 이유는 전자 산업에서는 국가가 투자 증진 차원에서 각종 보조금, 세금 면제, 산별노조 불허 등의 특혜를 받고 있기 때문. 전기노조에 가입하면 그러한 특혜를 받을 수 없게 된다. 때문에 전기노조 가입을 거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삼성전자 독일지사는 지난 95년 법원 판결을 무시하며 노조 결성을 막다가 검찰의 수사를 받은 사실도 있다.

당시 독일의 현지 신문들은 삼성전자가 비록 고임금을 지급했지만, 일부 노동자들의 ‘종업원평의회’(Betriebsrat) 설립 시도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금품으로 회유하려 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삼성전자 한국 본사는 “종업원평의회는 노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 철학에 위배된다. 종업원평의회가 설립되면 우리는 공장을 이전하거나 폐쇄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종업원평의회 구성은 회사쪽 방해로 결국 좌절됐고, 이를 추진하던 노동자 5명도 해고됐다. 그러나 해고자들은 프랑크푸르트 노동재판소에 제소했고 “회사는 종업원평의회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보장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삼성전자쪽은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일부 노동자들한테 종업원평의회 선거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각서 제출을 요구하고 금품 제공을 통한 회유에 나선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

특히 삼성측은 회사주도로 ‘종업원 평의회’를 한발앞서 구성해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평의해 결성을 차단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유령노조를 만들어 노조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던 한국에서처럼 성공하지 못햇고, 오히려 독일 프랑크 푸르트 검찰당국에 고발되었다. 해외에서도 무노조 신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삼성의 국내 노조정책은 더욱 심각하다.삼성의 한 계열사는 불법 휴대폰 복제와 위치추적, 산별노조 가입 탈퇴강요, 법정기준을 뛰어넘는 장시간 노동 등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한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주며 노조 결성을 원천봉쇄 해왔다는 것.

삼성측 노조원에 면담제도 통해 노조설립 포기 종용

삼성SDS의 한 해고노동자는 “최근 삼성SDI가 휴대폰을 불법 복제하여 전·현직 삼성노동자 20여명에 대해 ‘위치추적’ 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를 고소한 해당노동자와 가족들을 집요하게 탄압하며 고소취하를 위해 온갖 회유, 협박을 자행했다”고 말했다. 최근 한 언론에선 삼성SDS의 이상한 ‘면담제도’를 폭로했다. 회사 측이 회사와 격리시킨 뒤 노동자를 데리고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20여일까지 전국을 여행하며 진행하는 면담이 있다는 것. 이 면담의 요지는 노조설립을 포기하고, 해외로 나가거나 사직하라는 것이다.삼성 SDI 수원공장에서 노조 설립을 시도했던 김갑수(삼성SDI천안공장)는 노사협의회를 구성하려다 일본에 끌려가서 협박을 당한 사례도 있다.

당시 김갑수와 함께 노조 설립을 주도했던 사람들 역시 업무와 무관한 중국 등으로 출장을 보내 ‘노조 설립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도록 강요당했다고 한다. 또한 삼성SDI 울산공장 해고자 송수근도 폭력배들이 동원돼 자신을 테러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삼성은 면담으로도 노조설립을 사전봉쇄하지 못하면 유령노조 전술이 가동된다고. 이는 노동법 상의 복수노조 금지규정을 악용하는 것이다. 삼성그룹이 노조결성을 막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집요하다. 때로는 막대한 비용과 인력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노조설립을 무산시켜 왔다. 그것이 지금껏 무노조 신화를 유지해 온 ‘비결’이었다. 김성환 삼성해복투 위원장은 “삼성의 문제는 노사갈등이 아니라 범죄행위”라고 잘라 말하며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성뿐만 아니라 한진 등 해외진출 기업도 노동 탄압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들도 노조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다.한진 건설은 필리핀 건설현장 노동자들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안전도구도 지급하지 않고 자부탐케하여 노동자들은 안전도구 없이 건설작업을 하고 있다. 게다가 화장실을 자유롭게 가지 못하게 하는 비인간적인 대우와 폭언이 일상화되어 있다. 문구용품으로 유명한 모나미는 태국공장에서 언어폭력과 산업안전 사고가 빈번하다. 10명의 노동자들이 손가락이 잘리고 박스가 손위에 떨어지는 사고가 잦으며, 엄청난 두통을 호소하며 2명의 여성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삼성, 한진 등 대기업을 제외한 일반중소기업들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임금, 퇴직금 체불 후 부도와 도주를 하는 사례가 많았다. 대부분 회사로부터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채 무방비로 있거나 자국내 보호장치가 없어 해결이 묘연한 상태로 놓여 있다.또한 노동조합을 설립하면 폐업한 후 다른 이름으로 공장을 재가동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단병호 의원은 “노조탄압, 인권유린 등은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외교 분쟁으로 확산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따라서 해외진출기업은 OECD 가이드라인 준수를 포함한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하고 정부는 반인권, 노동탄압 근절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삼성의 ‘무노조 경영’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삼성의 ‘무노조 경영’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동조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병철 회장의 말은 처음에는 ‘방침’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회장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무노조 경영’이 이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무노조가 삼성의 기업문화이자 경영철학, 나아가 이데올로기로 굳어져버린 셈.‘무노조 삼성’의 신화는 지난 77년 제일제당(김포공장) 여공들의 노조 설립 시도가 좌절된 이후 30년 가까이 똑같은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지난 97년 IMF 이후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용불안이 심화되면서 삼성 내부에서도 노조설립 시도가 많아졌지만 삼성의 철저한 노무관리로 인해 모두 깨지고 말았다. 초일류기업 삼성이지만 노조 설립을 탄압하는 방식은 아날로그식이다.

노조 설립이 시도될 때마다 복수 노조 금지 조항을 악용한 유령 노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룹 차원의 회유·협박·매수 그리고 치밀한 감시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결국 당사자들은 굴복해 노조 설립 포기각서를 써야 했다. 노동자가 막강한 ‘돈’과 ‘조직’의 힘 앞에서 무노조 삼성은 뚫기 어려운 장벽인 것이다. 삼성 내부에서 ‘무노조 경영은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문율이다. 또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든 노조 설립을 막는다. 이제 삼성에 노조가 생길 전망이다.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에 따르면 2007년 1월부터 개별 사업장에서도 복수 노조가 허용된다. 복수 노조 시대가 개막되면 유령 노조 전술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어 삼성의 무노조 경영도 변할 것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에서 삼성에 깃발을 꼽기 위해 다각도로 작전을 펼치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