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 검찰청 내의 1·2·3차장들이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두산총수일가의 비자금 사건, 안기부 X파일 불법도청사건, 삼성에버랜드의 편법증여 및 이재용 상무 배임혐의 사건 등 재계를 좌불안석으로 만들고 있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3명의 차장들의 손에서 ‘쥐락펴락’하고 있기 때문. 서울중앙지검이 전국 19개 지방검찰청 가운데 유일하게 세명의 차장을 두고 있을 정도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재계 저승사자’로 급부상한 서울지검 3인방인 황희철 1차장, 황교안 2차장, 박한철 3차장의 면면을 분석했다.2003년 2월17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그룹 빌딩 33층의 구조조정본부 사무실에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현 금융조사부) 검사 4명을 포함한 50여명의 수사팀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바로 회장실과 구조본 직원 전원을 사무실 밖으로 내쫓고 외부와 통하는 사무실 전화까지 모두 끊었다. 오후 7시30분까지 10시간 가까이 이어진 압수수색 끝에 검찰은 사과박스 20여개 분량의 서류를 압수했다. 컴퓨터 본체와 디스켓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SK 압수 수사로 ‘형사 9부’주목받아

이날 압수수색의 최대 성과는 이른바 ‘대책문건’의 확보였다. 여기엔 최태원 회장 대신 누가 ‘희생양’이 될 것인가 등에 대한 그룹 차원의 대책이 담겨 있었다. 검찰은 이를 바탕으로 이틀 후인 2월19일 이번엔 서울 삼청동 SK글로벌 문서보관소를 급습했다. 3시간에 걸친 압수수색에서 검찰은 사과상자 250여개 분량의 서류를 확보했다. 이 압수물을 검찰청까지 운반하는데 2.5t 트럭(대형 이사짐 차량)이 동원됐다. 두 차례에 걸친 압수수색에서 나온 자료는 검찰이 최 회장과 손길승 회장 등을 분식회계 혐의로 형사처벌하는 데 결정적 근거가 됐다.

검찰사상 유례없는 성공작으로 꼽히는 ‘SK 분식회계 사건’ 수사의 일등공신은 전광석화 같은 압수수색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울지검내 형사9부는 재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금융범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전담 부서화되면서 3차장 검사 아래 금융조사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 2년이 지난 후 요즘 서울지검 3차장들이 다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검사장 아래 3명의 차장 검사들이 재계와 연관된 굵직한 사건을 맡아 진두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검찰청 가운데 차장이 세 명이나 되는 곳은 서울중앙지검이 유일하다. 부산, 대구, 수원, 인천지검 등 규모가 큰 곳도 그나마 두 명의 차장이 고작이다. 사건이 많기로 유명한 서울중앙지검. 올해 들어 3명의 차장들은 다들 몹시 바쁘다.

세상의 이목이 모인 사건을 진두지휘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서울중앙지검은 검사장 아래로 세명의 차장을 두고 있다. 그 가운데 1차장은 황희철 차장 검사(사시 23회)다. 1차장직은 서울중앙지검 차장들 가운데 수석차장이다. 검사장 부재 시 그 직무를 대리하는 것은 물론 모든 의전에서 검사장 바로 다음에 선다. 때문에 주변에선 황 차장을 다음 인사에서 검사장 진급 ‘1순위’에 올려놓는다. 사실 황 차장은 지난 5월 부임 이래 ‘조용히’ 지내왔다. 적어도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박용성 등 자신의 형제들을 ‘비자금 조성자’라며 고발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두산 비자금 사건이 곧바로 그의 지휘하에 있는 조사부에 배당되면서 서울중앙지검 6층 1차장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황 차장, 특수수사에 일가견

처음 두산 비자금 사건이 특수부 대신 조사부로 배당됐을 때 주변에선 진의 여부를 놓고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이는 황 차장의 전력을 모르고 한 행동이다. 그는 특수수사에도 일가견이 있다. 1998년부터 2000년 사이에 부산지검 특수부장, 대검 범죄정보2·1담당관을 차례로 지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황 차장은 검찰의 손꼽히는 ‘기획통’이다. 검찰의 인사와 예산을 주무르는 법무부 검찰1과장을 이미 역임했고, 지난해부터 올해 4월까진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으로 있으면서 법무부·검찰의 개혁정책 입안을 주도했다. 공안 1·2부, 공판 1·2부, 총무부, 사무국으로 구성된 2차장은 황교안 차장검사가 맡고 있다. 공판부는 이미 기소한 사건들의 공소유지를 맡는다. 총무부는 각종 기획 업무를 전문적으로 보는 부서니 둘 다 수사와는 거리가 있다. 결국 2차장 밑에선 공안부가 핵심인 셈이다.

황희철 1차장과 마찬가지로 사시 23회인 황교안 2차장은 올해 4월 부임이후 이렇다한 사건을 맡지 않았다. 과거 검찰의 공안파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위세가 높았지만, 국민의 정부시절부터 한풀 꺾인 상황. 하지만 전 국민들을 도청 공포 속에 몰아넣은 ‘안기부 X파일 사건’이 터지고 이게 황 차장의 지휘를 받는 공안2부에 배당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황 차장의 말 한마디나 행보가 재계는 물론 정계까지 초미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안기부 X파일 사건’이 특수부 대신 공안부로 보내진 것에 시민단체가 “검찰의 수사의지가 의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이자 황 차장은 “한창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공안검사들이 들으면 화낼 이야기”라고 맞섰던 일화가 유명하다. 그만큼 공안검사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차장은 대검 공안3·1과장,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 등 공안 분야의 요직을 두루 거친 명실상부한 ‘공안통’으로 평가받는다.

박한철 3차장 ‘수사 원칙에 충실’

최근 들어 박한철 3차장(사시 23회)의 행보에 대해 누구보다도 삼성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 차장 지휘아래의 금융조사부가 삼성관련 사건을 도맡아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통한 이재용 상무의 편법증여건은 물론 참여연대가 소송한 이재용 상무에 대한 배임혐의까지 모두 금융조사부의 몫이기 때문. 현재 금융조사부 정동민 부장검사(사시 26회) 아래 이원석 주임검사(사시 37회)와 얼마 전에 보강된 이주형 검사(사시 40회)까지 합쳐져 ‘역대 최강의 라인업’을 자랑하고 있다. 박한철 차장은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인천지검 특수부장, 그리고 특수부를 지휘하는 수원지검 2차장 정도가 눈에 띌 뿐이다. 대통령비서실과 헌법재판소에서 각각 4년, 2년간 파견근무를 했다. 박 차장은 올 상반기에 참여정부 실세들의 개입 의혹이 제기됐던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 사건과,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이 두루 연루됐던 행담도 개발 사건을 지휘했다. 유전개발 수사 때는 전례 없는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해 ‘수사 원칙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검 공보관을 지낸 정동민 부장은 4월 금융조사부장에 부임한 뒤 처음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는 대형 사건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주임검사인 이 검사는 ‘썬앤문’ 사건 때 이광재 의원을 직접 조사했고, 유전개발 수사팀에도 차출되는 등 수사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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