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10월 김우중 회장이 해외로 도피할 당시 DJ정부의 압력을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또 대우사태 직전 김 회장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려 했으나 정부의 압력으로 무산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달 27일 금융감독위원회 및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한 김우일 전 대우구조조정본부장의 입에서 나왔다. 그동안 김 회장에 대한 정부의 해외도피 권유설이 끊이지 않고 제기됐다. 그러나 대우 임원의 입을 빌려, 그것도 김 회장의 최측근이 증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일요서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정부가 그룹 법정관리 신청을 못하게 협박을 했으며, 일방적으로 워크아웃을 선포해 결과적으로 공적자금 규모를 키운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김 전 본부장이 회고하는 당시의 상황. <본지 597호 사회>대우사태를 한달여 앞둔 지난 99년 9월. 김우중 회장은 부평 대우자동차 회의실로 (주)대우 및 대우자동차 임원들을 불렀다. 이 자리에서 김 회장은 (주)대우와 대우자동차의 경영권 사수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한다. 김 전 본부장은 “추석 연휴였음에도 불구하고 참석자들은 3일 동안 쉬지 않고 그룹 회생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면서 “특히 회장은 어떻게 해서든 (주)대우와 대우자동차만은 살리고 싶어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회의가 있은지 한달도 안돼 해외로 잠적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김 전 본부장은 김 회장의 출국 이면에 정부의 입김이 숨어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는 “부평 회의에서 (주)대우와 자동차의 경영권을 정부로부터 보장받았다는 얘기를 회장으로부터 귀띔받았다. 관련 회사 처리 문제도 갔다 와서 상의하기로 하고 떠났다”면서 “이같은 상황에서 회장이 몸을 숨긴 것은 일정 부분 정부와 조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실제 김우중 회장은 자금압박이 가중되던 99년 초부터 은밀하게 그룹 법정관리를 추진했다. 김 전 본부장은 “대우그룹의 경우 타 재벌과 달리 회장 주식이 전혀 없다. 법원이 경영권을 갖는 법정관리를 신청할 경우 전체 채무를 동결받을 수 있었다”면서 “때문에 회장은 최후의 카드로 법정관리를 택했다”고 말했다. 즉시 법정관리를 위한 준비팀이 구성됐다.

이들은 힐튼호텔에 모여 밤낮으로 법정관리를 위한 준비를 했다. 법정관리 신청은 김&장에 위임하기로 했다. 그러나 김 회장의 계획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금감위 S국장이 ‘법정관리 신청하면 부도처리하고, 관련자들을 다 구속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 김 전 본부장은 “정부에서 대우의 법정관리를 막을 이유가 없다. S국장이 이같은 시도를 막은 것은 대우그룹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기 위함이 아니겠냐”면서 “이 과정에서 김 회장도 잠시 동안 해외에 나가있도록 권유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정부는 그룹 구조본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대우에 대한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이후 대우그룹에 대한 해체작업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정부 내에 대우그룹 CEO 심사위원회가 결성됐다. 김 전 본부장은 대우그룹에 공적자금이 26조원이나 허비된 것도 어찌보면 이같은 정부의 조치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당시 발표된 그룹의 부실자산은 35~36조 규모다. 이중 3분의 1은 평가손실이고, 실제로는 23조 정도다. 그러나 워크아웃이 선언되면서 채권자들이 영업용 자산에까지 압류를 거는 등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됐다”면서 “이 때문에 공적자금이 과다하게 허비된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구조조정 초기 정부의 지원도 아쉬운 대목이다. 김 회장이 그룹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할 당시 정부는 재촉만 했지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심지어 사돈그룹인 ‘이수그룹’조차도 김 회장을 외면했다. 구조조정이 미적거리자 결국 정부가 나섰다. 당시 정부가 김 회장에게 제시한 돈은 10조원. 대우 회생을 위해 필요한 자금이 40조(신규 10조, 리볼빙 30조)임을 감안할 때 턱없이 모자랐다. 더군다나 정부가 제시한 자금 10조원 중 신규차입금은 3조원에 불과해 오히려 화를 키웠다는 게 김 전 본부장의 설명이다. 그는 “이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더 빨리 망하라고 제사지내는 것과 같았다. 10조원을 신규차입금으로만 주었어도 상황이 그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신규 차입금 3조원으로 불을 끄다 보니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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