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회장은 골프를 않기로 유명하다. 임원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체질에 맞지 않다”면서 고사해왔던 게 사실이다. 이로 인해 대우그룹 임원 40명의 목이 한꺼번에 달아나는 사건도 있었다.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대우그룹 내부가 한때 발칵 뒤집혔다는 게 김우일 전 대우구조조정본부장의 회고다. 대우그룹 내에서 ‘골프채 파동’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지난 98년 불거진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간의 빅딜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 양사는 빅딜의 실패 이유에 대해 실무자간 협상이 결렬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골프채 사건으로 잘린 한 임원의 물밑 공작이 숨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은 지난 97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우그룹은 미국 스탠퍼드 및 MIT 대학에 3주 코스로 임원들을 보내는 연수를 실시 중이었다. 커리큘럼 중에는 골프 강좌도 포함돼 있었는데, 이 강의가 문제의 발단이 됐다. 1시간 동안 골프 강좌를 받은 임원들은 즉석에서 고가의 골프장비를 구입했다가 공항에서 정희자씨와 마주친 것. “당시 정희자씨는 허리 치료를 받고 휠체어에 의존하는 신세였습니다. 그런 정씨에게 골프가방을 멘 임원들이 곱게 보일리 있었겠습니까. 바짝 열이 오른 정씨는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김회장에게 알렸습니다.”김 회장은 기획조정실장을 불러 관련된 임원 리스트를 파악하도록 지시했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사태가 그렇게까지 확산될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김 회장이 이들 임원 모두에게 사표를 받도록 지시하면서 그룹 내부가 발칵 뒤집혔다. 나중에는 김 회장이 직접 리스트를 들고 다니면서 계열사 사장에게 조치를 취할 것을 종용하면서 40명의 임원 모두가 잘리게 됐다. 이중 20명은 나중에 관련 회사에 복직시켜주는 방식으로 구제받기는 했지만, 나머지 20명은 결국 구제를 받지 못했다. 김 전 본부장은 이 사건이 외환위기(IMF) 직후 진행된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간 빅딜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요컨대 정부는 지난 98년 2월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의 주식 맞교환을 요지로 하는 빅딜을 선언했다. 이 발표가 나간 직후 외국인 투자자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그러나 재계 내부에서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자동차는 비상장으로 지분의 대부분을 삼성가나 상성 관련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대우전자는 지분의 90% 이상을 소액투자자나 기관투자자가 가지고 있었다. 주식을 맞교환하기 위해서는 대우그룹이 지분 50%를 매입해 삼성측에 바쳐야 되는 상황이다. 대우전자가 기성제품을 출시하는데 반해, 삼성자동차는 아직까지 마케킹 셰어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당시 대우그룹은 삼성자동차의 가동률을 줄이고, 이중 절반을 삼성에서 구입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삼성측은 “캐파(총생산능력)를 줄이면 안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런 문제가 불거지면서 실무진은 수시로 의견이 부딪혔다. 결국 양사는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협상이 결렬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협상 결렬 이면에는 또다른 이유가 숨어있다는 게 김우일 전 본부장의 설명이다.

그는 “당시 양사는 실무자간의 조건 협상이 결렬되면서 빅딜이 실패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대우전자의 한 경리담당 임원이 내부자료를 삼성측에 건네줬기 때문”이라면서 “이로 인해 정보를 제공한 K 이사는 한때 신라호텔 이사로 취직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요컨대 ‘골프채 파동’으로 목이 달아난 임원이 김 회장에 대해 앙심을 품고 내부 자료를 넘겼다는 것이다. 내심 대우전자와의 빅딜이 탐탁지 않았던 삼성자동차측은 즉시 이 자료를 들고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을 찾았다. 이때서야 빅딜을 종용하던 청와대나 금감위에서도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빅딜을 무효로 선언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은 상태. 때문에 양사 실무자들의 협상 결렬로 빅딜이 무효가 된 것으로 외부에 발표했다. 김 전 본부장은 “정부는 위환위기 이후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는 데 대해 적지 않게 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의 빅딜은 이런 투자자들을 묶어두는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정부는 기대했던 것”이라면서 “그러나 대우그룹 내부의 양심선언으로 인해 이 빅딜도 무효가 됐다”고 말했다.

# 삼성-대우 빅딜 숨겨진 또다른 얘기

1998년에 한국 재계 전체를 소용돌이속에 몰아넣은 세칭 ‘빅딜’은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 그리고 현대전자와 LG반도체를 서로 맞교환하는 이른바 3각 빅딜이 골자였다. IMF가 터지면서 대기업의 문어발 사업확장이 도마위에 올라 추진된 이 빅딜플랜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주축이 되어 이헌재-강봉균-이기호 등 경제3인방이 추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빅딜플랜을 짠 사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었다. 황경로 당시 포스코 고문이라는 얘기도 있었고,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이라는 말도 있었다. 항간에는 재경부의 한 과장급 인사라는 말도 있었지만, 확실하게 누가 만들었는지는 지금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이 빅딜로 인해 재계 전체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온데다, 수혜자와 피해자가 있어 자칫 실체가 드러날 경우 대규모 소송전이 벌어질 공산도 크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빅딜로 가장 피해를 본 기업은 LG였다. 당시 LG는 울며겨자먹기로 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겼다. 지금도 LG측은 노다지였던 반도체를 현대에 넘긴 것에 대해 울분을 토하고 있다. 실제 구본무 회장은 빅딜이 있은 뒤 전경련에 회비도 내지 않고, 참석도 하지 않았다. 삼성은 자동차사업을 대우에 넘기진 않았지만 여론의 압력에 못이겨 르노에 넘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삼성 역시 지금도 자동차사업을 포기한데 대해 할말이 많다. 더욱이나 이 문제로 지금껏 채권단에 시달리고 있으니 빅딜 후유증은 앞으로도 쉽게 가라앉기 힘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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