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펀드 파동으로 적대적 M&A(기업인수 및 합병) 파동에 휩쓸렸던 삼성물산이 또다시 M&A 폭풍에 휘말리고 있다. 특히 삼성물산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으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계열사의 지분구조상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회사이다. 헤르메스 파동(헤르메스펀드가 삼성물산의 지분 7% 가량을 매입한 사건)이 벌어진 당시에도 M&A 문제는 그룹 전체를 바짝 긴장시켰었다.이같은 상황이 다시 반복될 조짐인 것이다. 이번에는 적대적 M&A설이 다시 삼성물산을 강타하고 있다. 이번에 나선 주인공은 호주계 펀드 플래티넘에셋매니지먼트. 지난 9월20일 플래티넘은 금감원에 삼성물산의 주식 250여 만주를 추가로 매입했다고 밝혔다. 플래티넘은 기존에 이 회사의 주식 905만여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금감원에 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이 펀드는 지난 8월10일부터 9월15일까지 총 13차례에 걸쳐 삼성물산 주식을 사들였다. 이들의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지난 8월10일이었다. 세부적인 내용을 보면 플래티넘은 지난 8월10일 삼성물산 주식 1만4,000주, 17일 1만4,430주, 25일 3만2,000주를 샀다. 모두 장내에서 매수했고, 정확히 일주일 씩 차이를 두고 입질이 시작됐다. 플래티넘의 본격적인 ‘주식 사재기’가 시작된 것은 9월 들어서였다. 이들은 지난 9월2일 5만6,000주, 5일 4만4,900주, 6일 7만1,300주를 추가로 샀다. 삼성물산의 주가는 연일 평균 2% 가량 상승했고, 플래티넘은 급기야 하루에 수십 만주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플래티넘은 지난 9월7일 32만6,100주, 8일 64만3,700주, 9일 23만330주를 사들였고, 마지막날인 9월 15일에는 41만9,500주를 매입했다. 플래티넘이 가장 많은 주식을 사들인 지난 8일 시장에서 거래된 총 주식 거래량은 168만3,000주. 하루 거래량의 절반 가까이를 플래티넘이 산 것이다. 플래티넘의 ‘싹쓸이형 주식 매집’으로 이들은 13번에 걸쳐 삼성물산 주식 252만8,900주를 보유하게 됐다. 지분율은 종전의 5.83%에서 7.37%로 껑충 뛰어올랐다.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삼성SDI에 불과 0.03% 못 미치는 수치다. 이들은 주식 보유 이유에 대해 ‘투자차원’이라고 밝혔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플래티넘이 오랫동안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해왔다”며 “단순 투자차원에서 주식을 사들인 것으로 파악됐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현대증권의 한 관계자도 “플래티넘이 그동안 국내에서 적대적 M&A를 시도한 적이 없었던 만큼 이번 주식 매입은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몇 몇 증권가 관계자들은 안심을 하기는 이르다는 분위기다. 삼성물산의 지배구조가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할 뿐더러, 항상 외국계 펀드의 M&A 대상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삼성물산이 지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사의 지분 구조가 취약한 것에 비해 회사의 중요도는 크다. 삼성물산은 삼성에버랜드에서 삼성생명, 물산, 다시 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삼성그룹의 지분 연결 순환 고리의 중심에 있다. 현재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주식 3.48%, 삼성SDS 17.96%, 제일기획 12.64%, 삼성정밀화학 5,59%, 삼성에버랜드 1.5% 등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의 중간 지주회사 역할도 하고 있어, 만일 경영권이 외국계 펀드로 넘어갈 경우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삼성그룹 전반에 대한 경영권이 위태롭다. 삼성물산도 이런 가능성에 대해 스스로 알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헤르메스 펀드가 M&A를 선언하자마자, 삼성물산의 대주주들이 증자를 선언해 정면 돌파 의지를 표현했을 정도다. 당시 삼성물산은 위험을 넘겼지만, 증권가 안팎에서는 여전히 이 회사가 M&A의 가능성에 노출돼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호주계 펀드가 단숨에 최대주주 자리 등극을 노리고 있으니 삼성으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만일 플래티넘이 종전의 태도를 바꿔 적대적 M&A를 선언할 경우, 주가 폭등으로 인한 소액주주의 피해는 물론 삼성그룹 전체의 경영권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삼성의 ‘X파일’ 사건으로 인해 이래저래 뒤숭숭한 삼성그룹에 골칫거리가 더해지는 셈이다. 제2의 SK사태(소버린이 (주)SK 지분 15%를 전격 사들인 것)에 대한 악몽이 삼성물산에서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 플래티넘에셋매니지먼트는 어떤 회사

이번에 삼성물산의 최대주주 자리를 넘보고 있는 플래티넘에셋매니지먼트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펀드 중에서 가장 오래된 펀드 중 하나다. 국내에 처음 설립된 것은 지난 94년 2월. 2005년 9월 현재 이 회사의 자본금은 3,050억원 정도다. 이 회사의 정식 이름은 ‘플래티넘에셋매니지먼트 리미티트’로 호주 시드니 해링턴거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자산운용회사다. 이들이 굴리는 총 자산규모는 약 11조원. 미국계 펀드 템플턴자산운용, 영국계 펀드 헤르메스 등과 더불어 가장 자본금이 많은 자산운용회사로 꼽힌다. 이 회사의 홈페이지를 보면, 이 회사가 추구하는 것은 글로벌한 자산운용. 과거에는 미국, 유럽 등지의 유망 회사에 주로 투자했으나, 최근에는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지로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이 펀드는 국내에 설립된 지는 오래됐지만, 그동안 눈에 띄는 투자를 하지는 않아왔다. 그러던 중에 지난 2003년 단숨에 롯데제과의 주식 10.13%를 확보하면서 국내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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