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산업개발이 행정소송을 당한 건교부의 수억원대 법정소송 비용을 대납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현대산업개발은 지난 2003년부터 건교부로부터 2조원대 규모의 ‘서울-춘천간 민자고속도로’ 사업시행자로 지정돼 관련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하지만 이 민자사업은 현재 ‘사업취소’ 행정소송에 들어간 상태. 민자사업부지 인근 토지피수용자들이 건교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현대산업개발이 건교부의 소송 변호인단 선임과 관련, 비용을 대납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변호비용 뇌물’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건교부 소송비용 대주는 현산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지난 2003년 서울-춘천간 민자고속도로 건설사업의 시행자로 지정된 현대산업개발은 이미 지난해 4월부터 고속도로 공사를 시작했다. 현대산업개발이 건교부에 제안해 승인받은 서울-춘천간 민자고속도로 사업은 총길이 61.4km로 교량 54곳, 터널21곳 등 건설비용만 2조2,2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규모 도로공사. 당초 이 사업은 지난 2000년 현대산업개발이 프랑스의 브이그사와 공동으로 제안했다가 브이그사가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철수해 무산될 뻔 했다. 하지만 지난 2003년 현대산업개발과 한국도로공사가 재차 제안해 결국 현대산업개발이 시행자로 지정됐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이 민자사업은 현재 중대한 위기에 봉착한 상태다. 민자고속도로 공사구간 중 6공구(가평휴게소 일대) 일대의 토지 피수용자들이 지난해 3월 건교부를 상대로 ‘사업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토지 피수용자들은 정희창 변호사를 축으로, 건교부는 기업소송 전문 로펌인 ‘김&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해 소송이 진행 중이다. 문제는 건교부와 토지 피수용자들간의 행정소송에 사업 시행자인 현대산업개발의 개입의혹이 불거진 것. 의혹의 핵심은 건교부의 변호인을 현대산업개발이 선임했으며, 이와 관련된 비용을 모두 현대산업개발이 대납하고 있다는 게 피수용자들의 주장이다. 이것은 사실일까.

소송비용 대납은 ‘뇌물’성 논란

결론부터 말하면 변호비용 대납은 사실로 밝혀졌다. 건교부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이 소송비용을 내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히고, “그러나 민자사업 시행자인 현대산업개발과 맺은 ‘실시협약’에 따르면 ‘민원 문제는 모두 현대산업개발측이 처리’하도록 규정돼 있다”며 “현대산업개발의 변호비용 대납은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업부지와 연관된 당사자들이 낸 소송이므로 현대산업개발이 협약에 따라 민원을 처리하고 있다는 것. 사업시행자인 현대산업개발 역시 “민원처리는 우리가 맡고 있다”며 “실시협약에 따른 당연한 행동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토지피수용자측의 정희창 변호사는 “현대산업개발의 개입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 변호사는 “우리는 건교부의 행정처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지, 민자사업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 아니다”면서 “현대산업개발의 건교부 변호비용 대납은 뇌물혐의로도 고발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에 따르면 현대산업개발은 앞으로 30년간 건교부로부터 서울-춘천 민자고속도로 운영에 대한 감독을 받도록 돼 있다. 그럼에도 피감독기업인 현대산업개발이 건교부의 변호비용을 대납해준다는 것은 뇌물혐의가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게 정 변호사의 설명이다. 즉 사업이행을 목적으로 한 변호비용 대납일 수 있다는 것.

시행업체 보전용 ‘보험’ 의혹

그렇다면 왜 현대산업개발은 뇌물 혐의란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건교부의 변호비용을 대납한 것일까. 이에 대해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서울-춘천 민자고속도로 사업은 향후 30년간 정부가 수입을 보전해주는 안정적인 고수익 사업”이라며 “소송에서 패하면 민자고속도로 사업 자체가 전면 재검토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현대산업개발이 무리를 해서라도 사업을 유지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건교부의 보은 “감사원의 외풍은 내가 막는다”

현대산업개발로부터 변호비용을 대납받은 것으로 알려진 건설교통부가 이 사업과 관련된 감사원의 지적을 두 차례나 무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민자사업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결과 건교부가 진행하고 있는 서울-춘천간 민자고속도로 사업과 관련 사업승인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교통수요예측이 부풀려졌다”고 지적했다. 당시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건교부는 서울-춘천간 고속도로 수요예측량을 하루 5만2,236대(2009년 기준)로 예상했지만, 감사원의 조사결과 2만6,768대(2008년 기준)에 불과했다. 건교부의 수요예측량이 두배 이상 부풀려진 셈이다.

또한 올해 감사원이 서울-춘천간 민자고속도로 사업을 감사한 결과 ▶서울-춘천간 전철 복선화 ▶경춘국도 확장 ▶지방도와 영동고속도로 확장으로 인해 신설고속도로 확장에 따른 교통분담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감사원의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건교부는 “이미 민간 사업시행자와의 계약이 완료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발주한 사업을 다시 철회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감사원은 “국책사업은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지는 만큼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취소하든가, 재고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감사원의 시정명령에 대해 해당부처가 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건교부가 시정조치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철저하게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 사안에 대해 “어찌됐든 겉으로 보기에 현대산업개발은 건교부를 위해 변호비용을 대납했고, 건교부는 민자사업을 맡고 있는 현대산업개발을 위해 감사원의 외풍을 막아준 모양세가 됐다”며 “국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행정기관이 민간기업체의 뒤를 봐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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