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진보성향 단체들은 “70년 전 제주를 피로 물들였던 미국은 아직도 이 땅 한반도에서 핵전쟁 위협과 대북적대정책, 그리고 통상 압력으로 우리 민족을 철저히 유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에 대한 적개심의 표출이었다. 
또 한국대학생진보연합과 국민주권연대라는 단체는 광화문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한미연합전쟁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 촉구 대회’를 열고 “북미평화협정 체결로 한반도의 근본적 문제인 분단을 종식하고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북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체결이 거론되고 있는 바,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은 더 이상 한반도에 있을 필요가 없으니 주한미군 철수하고 우리 민족이 자주적으로 평화통일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아니라 우리가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 주민들을 향해 “미국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조선에서 침략 군대와 전쟁 장비들을 모두 철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관리들도 과거 미·북 대화에서 한국 전쟁의 공식적인 종전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와 이에 따른 한·미 상호방위조약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로 연결했다. 
그랬던 김정은이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북 정상회담에서도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꺼내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주한미군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180도 달라지기라도 한 것일까?
손자병법의 삼십육계 중 제 삼계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이다. 타인을 이용하여 적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김정은은 바로 이 차도살인계를 쓰고 있는 게다. 자신들이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하지 않고 한국 국민들로 하여금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게 하겠다는 것 말이다. 4·3 사건과 같이 미국이 연관된 일들을 드러내며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자생적으로 고조시킨 뒤 평화협정을 명분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게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이와 비슷한 일은 1973년 베트남에도 있었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이후 프랑스군이 철수를 했기 때문에 전쟁이 완전히 종식되는 줄 알고 있었던 베트남인들은 미군이 베트남에 들어오자 전쟁의 재발발을 우려하며 미국을 적대시하게 됐다. 
또 당시 베트남에는 간첩들이 암약하며 반정부 시위를 선동해 미군 철수를 주장했었다. 때마침 미국 내 반전 여론이 확산되자 닉슨 대통령은 미군 철수를 강행했던 것이다. 미군의 철수 후 베트남은 베트콩에 의해 순식간에 적화됐다. 
물론 그 때의 베트남과 지금의 우리 상황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뿐더러 베트남이 그랬다고 우리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베트남이 어떻게 적화되었는지를 알고는 있어야 하는 시대 상황이다. 미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북한 정권은 평화협정을 통해 주한미군의 주둔 근거를 무력화하고 동맹 와해, 미군을 철수시켜 궁극적으로 한국에 대한 무력 통일을 이루려는 목표를 포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북한의 주한 미군 철수 주장이 자취를 감춘 것은 작전상 그럴 필요가 없다는 북한의 판단 때문이라는 생각이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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