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이건희 회장은 황영기 전 삼성생명 이사(현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 및 우리은행장)등 6인을 통해 삼성생명이 한빛은행과의 비상장 투신사 주식 스왑(swap)거래 과정에서 삼성투신 주식을 증인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게 매각함으로써 부당이득을 제공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삼성자동차에 대한 여신을 지원하여 삼성생명에 손해를 끼친 사실은 인정합니까.”“그런 적 없습니다. 두 사건 모두 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 받은 걸로 압니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건희 회장.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노리는 듯한 재경위원들의 예리한 질문에 진땀을 뺐다.

물론 이는 앞으로 있을 재경위의 국감 모습을 가상으로 구성한 것이다.실제론 국회 재경위소속 위원들이 저마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을 꾸고 있어, 이건희 회장의 증인채택이 불투명하다. 법사위는 이미 이건희 회장 증인채택문제를 놓고 난항을 거듭하다 무산되기도 했다. 증인으로 채택이 돼도 이 회장은 신병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나가있어 국감이 시작되는 20일까지 돌아올지도 미지수다. 증인출석은 강제권이 없기 때문에 출석하지 않아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당초 열린우리당에서는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배정충 삼성생명 사장,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 이경우 전 삼성카드 사장, 윤종용 부회장, 황수웅 삼성생명 사외이사(전 국세청 차장) 등 삼성 핵심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무산된 상태다.

이 회장의 사례처럼 증인채택 문제를 놓고 각 당간의 당리에 따라 채택여부가 불투명한 기업인들이 적지 않다. 한화의 김승연 회장이 대표적이다. 한나라당측이 대한생명인수 건과 관련하여 김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하기를 강력하게 원하고 있으나 열린우리당측이 “현재 재판 중인 사안인 만큼 증인 채택이 어렵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 불투명하다. 금강산관광 등 대북사업을 둘러싼 북한과 현대그룹의 갈등과 관련하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을 증인으로 요청했다. 현 회장과 김 전 부회장이 국감 증인석에 서게 되면 김 전 부회장이 경질된 사유가 된 ‘개인적인 비리’가 무엇인지, 북측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향후 대북사업에 대한 현대측 대책은 무엇인지에 대해 따질 예정이다. 특히 현대아산이 주도해온 금강산 관광사업은 남북협력기금이 투입되는 등 국민적 부담이 뒤따른 사업이어서 이들을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 정문헌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의 주장이다.

증인채택이 이미 확정된 기업인들도 있다. 대우그룹 분식회계 및 정치권 로비문제와 관련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부인 정희자씨, 두산그룹 분식회계 사건과 관련한 박용성 두산 회장과 박용오 전회장, 하이트-진로 기업결합 승인과 관련한 박문덕 하이트맥주 회장 등이 이미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기업인으로는 진로를 인수한 박문덕 하이트 맥주 회장. 하이트측에 따르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이트와 진로 기업결합’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결과를 매개로 국회가 증인을 채택하자 하이트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가 심사를 끝내 종결된 사안을 두고 왜 증인을 채택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다소 난감해 하는 표정이다. 맥주업계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하이트가 소주업계 1위인 진로를 인수하게 되면서 지방소주사와 두산 측에서 “맥주와 소주시장의 독과점이 우려된다”며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했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소주값 가격제한 등의 조건을 내걸어 승인해주면서 공정성 시비를 촉발시켰다. 이미 진로에 인수기획단까지 파견해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는 양사의 결합 일정이 혹시 국감과정에서 돌발 변수가 발생돼 차질을 빚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일부에선 기업총수들의 무더기 국감증인 출석에 대해 적지 않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건호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기업은 물론 국가 이미지에 악영향이 우려된다”며 반대 의사를 밝힌 것. 조 부회장은 “기업인을 국감 증인으로 세우는 것은 기업이 위법을 저지른 것처럼 비쳐질 수 있고, 외국인에게도 나쁜 이미지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 부회장은 “잘잘못은 검찰이나 재판에서 밝혀질 것인데, 경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 이미지 훼손은 우리에게 좋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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