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일 전 대우 구조조정본부장이 기억하는 김우중 회장과 대우자동차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김 회장은 대우차의 세계경영으로 인해 전세계에 ‘대우’라는 브랜드를 알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무리한 차입금을 끌어들이면서 대우 패망의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했다. 물론 그동안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특히 김 회장과 GM은 만났다 헤어지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등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욕(榮辱)’을 같이 했다는 게 김 전 본부장의 설명이다.김 회장이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신진자동차를 인수한 것은 지난 76년. 당시 김 회장은 부도 상태에 있는 회사를 외환은행으로부터 넘겨받아 새한자동차로 이름을 바꾼 뒤, 다시 대우자동차로 교체했다. GM과의 인연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김 회장은 전세계에 자동차를 팔고 싶은 욕심이 누구보다 강했습니다. 그래서 파트너로 GM을 끌어들였죠. GM의 판매망을 통해 대우차를 판매할 생각이었습니다.”김 전 본부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김 회장이 생각한대로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는 않았다. 당시 대우자동차의 재무 뿐 아니라 기술, 해외마케팅은 모두 GM이 전권을 쥐고 있었다. 대우는 내수와 생산만을 전담했다. 때문에 증자나 수출을 하는데 있어 GM의 눈치를 봐야 했다. 심지어 자동차 모델을 바꾸려고 해도 GM이 기술을 전수해주지 않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현대자동차가 수시로 디자인을 바꾸는데 반해 대우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 이면에는 GM과 체결한 이같은 ‘불평등 조약’이 숨어있기 때문이었습니다.”사정이 이렇자 김 회장은 GM과 계속 갈 것인지, 공조를 포기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동거를 시작한지 20년 째인 95년. 당시 GM도 동아시아에서의 자동차 사업 철수를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대우자동차에 50%의 지분을 넘겨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러나 양사의 결별 수순은 순탄치 못했다.

100만평에 달하는 부평 자동차공장 부지만 봐도 그렇다. 이 부지의 경우 장부에는 평당 5~10만원 정도로 게재돼 있었다. 때문에 김 회장은 지분 50%에 대해 1,000억원을 GM측에 제시했다. 그러나 GM은 1조원을 요구했다. 실거래 가격이 100만원을 호가하고 있던 점을 훤히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양사는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3년이 훌쩍 흘렀다. 이같은 상황에서 해결사로 나선 사람은 역시 김우중 회장이었다. 김 회장은 GM 본사가 있는 디트로이트로 날아가 잭 스미스 회장과 단판을 지었다. 합의금은 2,600억원. 당시 대우자동차의 자본금이 2,600억원이었기 때문에 언뜻 보면 손해난 장사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김우일 전 대우구조조정본부장은 이 합의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엔트리 코스트(Entry cost)가 최소 10조원임을 감안할 때 성공적인 거래였다는 것이다.

GM과의 결별을 선언한 김우중 회장은 자동차에 ‘올인’ 했다. ‘세계경영’이라는 기치 하에 베트남, 폴란드 등 미개발 국가에 무차별적으로 자동차 공장을 건립했다. 당시 김 회장이 해외 공장 건립을 위해 쏟아부은 돈만 20조원이 넘는다. 김 전 본부장은 이때까지가 김우중 회장의 ‘영(榮)’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과감한 투자를 통해 ‘대우’라는 브랜드를 전세계에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우자동차의 판매를 담당하는 대우자판도 이즈음에 설립됐다. 그는 “생산과 판매를 분리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 대우자판”이라면서 “당시 김 회장은 송도에 40만평을 가지고 있는 (주)한독을 인수한 뒤 대우자판을 설립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자신을 성공 궤도에 올려놓았던 바로 자동차로 인해 ‘욕(辱)’을 겪어야 했다.

그는 20조원에 달하는 공장 건립비 대부분을 차입금에 의존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시장마저 살아나지 않아 공장 가동률이 50%대를 밑돌았다. 그게 촉매제가 돼 결국은 대우그룹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김 회장이 애초에 자동차 산업에 손대지 않았다면 ‘그룹해체’와 같은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난 97년 당시 GM이 발을 빼지 않았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대우는 자동차 산업을 운영하면서 전세계에 대우 브랜드를 알릴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자동차는 까다로운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전 본부장은 이어 전세계 자동차 산업이 향후 ‘빅3’로 압축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자동차는 어떤 소비재 제품보다 애호품 성격이 강하다”면서 “향후 전세계의 자동차 브랜드는 ‘빅3’가 독주하는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