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전 한보철강 회장의 인생유전은 끝이 어디인가.현재 국내 ‘세금체납’ 순위 1위(2,446억원)인 정씨. 올해로 82세의 고령인 그는 자신이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대학의 교비(校費)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다시 검찰에 적발돼 기소됐다. 정씨가 비리 혐의로 기소되기는 지난 91년에 있은 ‘수서 택지 특혜분양’사건과 97년의 ‘한보사태’에 이어 세 번째다. 그야말로 그의 인생은 화려한 재벌총수에서 범죄자로 전락해 검찰의 문지방을 드나드는 신세가 되었다.이번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그는 지난 2003년 3월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한보철강 인수를 모색하다 자금이 필요하자 1983년 인수 후 이사장을 지낸 강릉 영동대학을 이용하기로 했다. 영동대는 지난 63년 간호전문대로 설립된 대학으로, 정태수씨가 한보그룹을 통해 인수한 것은 지난 83년이었다. 이 학교는 한보그룹이 부도난 뒤에도 여전히 정씨가 실질적인 운영자로 있어왔다. 정씨는 이 대학 간호학과 학생들의 임상실습 숙소를 서울에 물색하던 대학측에 자신이 2,700평을 가지고 있는 서울 대치동 ‘은마 상가’의 일부를 빌려주는 것처럼 계약을 맺고 임대료를 챙겼다.

그런데 당시 이 상가는 정씨 소유 지분에 대해 한보철강 채권자인 조흥은행이 이미 압류를 한데다, 상가 자체가 경매에 부쳐져 있던 상황이어서 사실상 정씨 명의로는 임대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정씨는 채권은행의 상가 경매를 지연시키면서 임대 수입을 챙겼다. 검찰 조사결과 정씨는 지난 4월까지 교비를 빼돌려 ▲보광특수산업 운영경비(20억원) ▲생활비와 소송비(10억원)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가회동 저택 임대료(4억8,000만원) 등으로 사용했다. 불행은 한꺼번에 닥치는 걸까. 이런 상황에서 정씨와 그의 아들 정보근 전 한보철강 부회장은 최근 법원으로부터 과거 한보철강이 발행한 보증사채 채무액에 대한 연대보증 책임을 물어 1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서울 남부지법 제13민사부는 최근 한보철강이 발행한 보증사채에 대해 지급보증한 H증권의 파산관재인인 최모씨가 한보철강의 연대보증인인 정씨 부자를 상대로 낸 10억원의 보증금 채권 청구소송에서 원고 최씨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들은 연대해 원고에게 보증계약으로 인한 한보철강의 H증권에 대한 채무액 합계금 190억여원에서 11억여원을 공제한 나머지 178억여원 중 원고가 구하는 바에 따라 10억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정리계획 인가결정에 의해 회사의 채무가 면책되거나 변경되더라도 정리채권자(H증권)가 보증인(정씨 부자)에게 가지는 권리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판시했다. H증권은 한보철강이 발행하는 보증사채에 대해 1995년 7월20일 보증금액 139억원을, 1996년 10월16일 66억5천만원을 각각 보증하면서 정씨 및 아들 정보근씨와 한보철강의 모든 채무를 연대보증키로 계약을 체결했다.

한보철강은 1997년 8월 회사 정리절차 개시결정을 받은 뒤 1999년 7월27일 원금의 30%만을 ‘10년 거치 10년 분할상환’하는 내용의 정리계획 인가결정을 받았다. 한보철강은 2004년 11월18일 11억여원을 H증권에 변제했고, 정씨측은 ‘원금의 30%만을 상환하라’는 결정에 따라 변제액이 줄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정리계획 인가결정이 내려졌더라도 연대 보증인이 갚아야 할 액수 자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앞서 H증권은 한보철강이 부도가 난 뒤인 1999년 파산선고를 받았으며, 원고 최씨는 2005년 2월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파산관재인으로 선임됐다.

# 정태수씨가 살고 있는 정주영 전 회장집

정태수 전 한보철강 회장이 살고 있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저택은 대지 615평에 건평 149평의 2층짜리 건물이다. 이 집은 지난 2001년 3월 정 명예회장이 타계한 뒤 부인 변중석씨 소유로 넘어갔다가 그해 9월 부동산업자인 정아무개(55·여)씨에게 50여억원에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집에 정씨가 전세로 입주한 것은 2003년 10월께. 그가 낸 전세금은 10억원 안팎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이 집의 전세금을 자신이 운영해온 Y대학 학교운영비에서 빼내다가 쓴 것이다. 정씨는 지난 97년 한보철강이 부도난 후 비자금조성 및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2002년 대장암 판정을 받아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정씨는 2005년 8월 말 현재 2,446억원이라는 국내 최고체납자이다. 특히 그의 아들인 3남 보근씨와 4남 한근씨의 체납액도 수백억원대. 이처럼 막대한 세금 체납에도 그는 10억원대의 저택에 세들어 사는 한편 평소 고급 벤츠 승용차를 타고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에 있는 ㈜한보 사무실에 매일 출퇴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보철강이 부도난 뒤 채권단에 의해 개인 재산이 압류되면서 방배동 집이 경매에 부쳐진 이후 정주영 전 회장의 저택으로 집을 옮겼다. 그동안 검찰과 국세청은 정씨의 가회동 전셋집에 대해 자금출처 등을 정밀 조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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