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일. 이날짜 주요 일간지에는 국민연금관리공단 노조가 내놓은 광고가 실렸다. 문구는 자극적이었다. “정부(재정경제부)는 떼먹은 국민의 돈 2조6,000억원을 갚으라”는 것이었다. 이 광고의 내용에 따르면 정부는 그동안 국민 개개인이 매달 꼬박꼬박 낸 연금을 빌려써놓고는 그에 대한 이자를 내지 않았다는 것. 무슨 사연일까. 사건의 발단은 지난 90년대 초반 김영삼 정부가 만든 공적자금관리기금법(이하 공자법)에서 시작된다. 재경부는 그동안 공자법에 의거해 국민연금측으로부터 46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돈을 끌어다 썼다. 그런데 그동안 이자를 갚지 않았다는 게 국민연금노조측의 주장이다. 정부가 연금을 끌어쓰기 시작한 것은 지난 93년. 당시 재경부는 공공목적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공자법을 만들어 그동안 국민연금, 공무원 연금, 국민체육진흥기금 등으로부터 돈을 끌어다 썼다.

주무부처는 재경부였고, 이 기금에 대한 심의 및 집행은 재경부 장관이 주축이 된 공자위에서 담당했다. 재경부는 법률에 의거해 이 기금의 사용처에 대해 밝힐 필요도 없다고 했으며, 이자율도 은행보다 턱없이 낮았다. 그런데 국민연금의 경우 해마다 자산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다보니, 다른 곳보다 더 많은 돈을 재경부에 내주게 되었다는 게 국민연금 노조측의 주장이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결국 정부는 공자법의 ‘강제예탁’이라는 제도 하에 지난 2000년까지 연금 기금 46조원을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강제예탁제는 국민연금같은 공적자금을 공자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강제로 예탁토록 한 제도. 그러나 이 제도는 지난 2001년 폐지됐다. 이후 재경부는 국민연금으로부터 빌려간 돈 46조원을 지난 98년~2003년에 걸쳐 나눠갚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재경부와 국민연금측은 별다른 마찰이 없었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100조원을 돌파하면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연금의 기금 투자 내역이 상세하게 알려지면서 다시 불거졌다. 당시 공자위가 빌려간 기금의 이자율을 임의로 결정했기 때문에 은행 이자보다도 턱없이 낮았던 것이다. 때문에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도 저조해졌다. 결국 국민연금과 시민단체의 항의로 인해 정부는 새로운 대책을 내놨다. 국민연금이 만약 정부가 꿔간 46조원을 독자적으로 투자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예상수익률과 재경부가 꾸어간 돈에 대한 이자간에 차이가 날 경우 차액 만큼을 보전해준다는 것이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이같은 계산법을 적용할 때 차액을 계산한 결과 2조6,000억원 가량으로 추산됐다”며 “재경부가 이 돈을 지급키로 한 기간이 오는 12월 말까지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연금과 재경부는 올들어 삐꺽거리기 시작했다.

국민연금측은 수차례 돈을 갚으라고 요구했지만, 재경부는 콧방귀만 뀌었다. 재경부는 이 ‘손실보존’ 규정은 강제성이 없는 규정이라는 입장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국민연금측으로부터) 빌린 자금에 대해서 적정한 수준의 이자를 지급해왔다”며 “이자손실 보전 부분은 임의규정이어서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다보니 난감해진 것은 국민연금공단측. 더구나 일반인들의 국민연금에 대한 원성은 최고조로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의 기금이 40년 후에 고갈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진단되면서 공단측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연금을 더 내야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자칫하면 모든 덤터기를 공단측이 써야 할 판인 것. 실제로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서는 ‘국민연금폐지운동’ 까페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을 정도다. 국민연금의 자금 운용과 관련해 비리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혹의 시선도 여전하다. 상황이 이러하니 공단측에서는 재경부가 빌려간 원금에 대한 이자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한 상황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임의 규정이라고 해서 주지 않아도 된다는 법은 없지 않느냐”며 “정부로부터 돈을 받기 위해 모든 조치를 강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천문학적인 돈을 둘러싼 재경부와 국민연금공단의 충돌이 어떻게 결론날지 주목된다.

# 150조 굴릴 책임자 찾아라!

요즘 국민연금의 시선이 또 다른 곳으로 쏠리고 있다. 바로 국민연금 150조원의 운용을 책임지고 있는 기금운용본부장 자리다. 조국준 현 국민연금 기금이사의 임기가 오는 27일 만료되기 때문. 국민연금은 최근 몇 몇 일간지에 “기금운용본부장을 초빙한다”는 내용의 공고문을 띄운 상태. ‘포스트 조국준’ 찾기에 돌입한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 이사의 연봉은 1억원 안팎. 하지만 이 자리는 15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움직이는 곳인데다가, 국민연금이 복지부, 농어민단체 등 수많은 기관으로부터 간섭을 받는 자리라는 점을 감안할 때 결코 만만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 공단 관계자의 설명. 실제로 조국준 이사 역시 지난해 2월 난데없이 공단측에 ‘사표’를 제출해 증권가의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당시 조 이사는 “소신껏 일하기 어려워 사표를 제출했었으나, 여러 사람들의 만류로 철회했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연금측은 과연 누가 이 자리에 선임될는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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