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처음엔 ‘단순자살’… 초대형 스캔들로 폭발
경찰 졸속 수사 의혹… 검찰 과거사위 조사 권고

 
한 방송사 드라마에 출연했던 탤런트 장자연(당시 30세)씨가 2009년 3월 7일 오후 경기도 분당의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면서 ‘장자연 씨 사건’은 시작됐다. 당시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고 1년여 전부터 우울증으로 병원치료를 받으며 약물을 복용해 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장 씨의 죽음은 우울증을 앓고 있던 한 명의 연예인이 자살한 단순한 변사사건으로 처리됐다.
 
유가족들은 경찰로부터 시신을 인도받아 숨진 지 사흘 뒤 장례를 치렀다. 그러나 장 씨의 소속사에서 함께 일하다 호야스포테인먼트라는 연예기획사를 차린 유장호(당시 30세)씨가 장 씨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겠다고 나서면서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유 씨는 장 씨가 자살한 다음날 자신의 미니홈피에 “장자연이 심경을 토로한 문건을 건넸다. ‘공공의 적(敵)’이란 영화가 생각난다. 자연이를 아는 연예계 종사자는 자연이가 왜 죽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며 우울증에 의한 단순자살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처음 던졌다.
 
유 씨는 이날 2개 언론사에 문건을 보여줬고, 이를 본 2개 언론이 9-10일 ‘저는 나약한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문건 일부 내용을 보도, 장 씨의 자살 경위에 의문을 제기했다.
 
장 씨 문건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커질 무렵 한 방송사가 ‘유력 인사들에게 성(性) 상납과 술접대를 강요당했다’는 구체적인 문건 내용을 공개, 경찰이 전면 재수사에 착수하면서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됐다.
 
경찰이 매일 오전 시작하는 수사브리핑에 100여 개가 넘는 언론사가 몰렸고, 인터넷에는 장 씨에게 성상납과 술시중을 강요한 인물이라며 그럴듯해 보이는 것에서부터 터무니없는 것까지 각종 ‘장자연 리스트’가 난무했다.
 
또 장 씨 유가족이 유 씨와 방송사 기자 2명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일본에 체류 중이었던 소속사 전 대표 김모(당시 40세)씨 등 문건 관련 인물 4명을 성매매특별법 위반과 강요 등 혐의로 고소하면서 경찰 수사에 힘이 붙는 듯했다.
 
특히 피고소인 가운데 3명이 언론사, IT업체, 금융업체 대표로 알려지면서 장 씨의 자살은 연예계, 재계, 언론계 스캔들로 확대됐고, 과연 장자연 리스트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지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다. 장자연 사건은 연일 각 신문의 사회면과 방송국 주요 뉴스로 다뤄질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지만, 경찰 수사는 국민의 기대만큼 발걸음이 빠르지 못했다.
 
경찰은 언론이 장자연 관련 새로운 사실을 보도한 다음 날 보도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거나 언론이 가르쳐 준 팩트를 찾아 수사하는 수준에 그쳤다. 경찰이 ‘수사 대상’이라고 한 피고소인과 문건 등장인물 등에 대한 수사는 갈팡질팡해 ‘힘있는 인사’를 상대로 한 수사에 부담을 가져 몸을 사린다는 지적과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경찰은 40일이 넘게 수사하고도 사건의 핵심인물인 소속사 전 대표의 신병을 확보하거나 유력인사를 형사처벌하지 못한 채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 ‘수사를 서둘러 덮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더 받았다.
 
결국 ‘성상납, 술접대를 강요받았다’는 내용의 문건으로 촉발된 장자연 씨 사건은 문건에 언급된 범죄행위와 한 여성 탤런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유가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은 채 일단락됐다. 그리고 9년이 지났다. 최근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지난 2월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록된 “고(故)장자연의 한(恨) 맺힌 죽음의 진실(眞實)을 밝혀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은 마감 닷새 앞둔 같은 달 23일 청와대의 공식 답변 기준인 30일 이내 20만 명 이상 동의를 충족시켰다.
 
장자연 사건 재수사 청원이 20만을 돌파하자 SNS에는 “진실을 꼭 밝혀주세요. 꼭 재수사해 주세요”, “저도 참여했지만 청원에 동의해 준 분들 고맙습니다”, “장자연 사건 재수사가 진정한 미투 운동이다”, “떨고 있는 사람들 많겠네”, “장자연 씨 억울하지 않게 재수사 반드시 해야 함” 등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그동안 재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이어져 왔으나 이렇다 할 동력을 얻진 못하던 장자연 사건은 지난 1월 말 창원지검 통영지청 소속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국내에서 미투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미투 운동이 확산하면서 SNS에는 “미투 운동은 장자연 사건 재수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9년간 이어진 장자연 사건 의혹을 풀 절호의 시기. 지금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글들이 잇따랐고, 장자연 9주기를 맞아 서울 광화문에서 장자연 사건을 재조명하는 전시회가 열렸다. 정치권에서도 힘을 보탰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검찰은 고 장자연 양 사건에 대해 하루빨리 수사해야 한다. 추악한 권력의 타락을 온몸으로 막고자 했지만 끝내 숨져간 장자연 양 사건에 대해 여지를 두지 말고 과감히 수사하길 촉구한다”고 말했고, 같은 당 이재정 의원도 “장자연 사건이 최초의 미투 운동 아니냐. 언론사 사장이 관련돼 있어서 묻혔다는 의혹이 있다. (수사를) 다시 검토해달라”고 촉구했다.
 
정의당 추혜선 대변인은 장자연 사건과 2009년 발생한 단역배우 자매 사망사건을 언급하며 “이들 사건은 죽음을 통해 이뤄진 피해자들의 간절한 ‘미투’이다. 하지만 이 사건들은 모두 억울한 피해자만 있을 뿐 가해자는 보이지 않는다”며 “이제라도 해결되지 않은 두 사건의 진상을 재조사하고 가해자를 엄중히 처벌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앞선 1월에는 여성단체 148곳이 장자연 사건의 재수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장자연 씨의 죽음으로 소문으로만 떠돌던 여성 연예인들의 성접대가 사실로 드러났지만,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10년이 지났다”며 “어떻게 권력과 이해관계에 있는 집단에 의해 성상납을 강요받았고,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지목된 사람들을 검찰이 왜 무혐의 처분을 했는지 철저하게 재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불’처럼 번지자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지난 4월 2일 오전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10차 회의를 열고 장자연 사건을 2차 사전조사 사건으로 선정해 대검찰청 산하 진상조사단에 사전조사를 권고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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