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의 슬로건은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회사측과 조종사 노조간의 충돌은 끝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지난 5일을 기준으로 파업 20일째를 맞고 있다. 전 세계 항공회사 역사상 가장 장기간 동안 이뤄지고 있는 스트라이크다. 아시아나 항공 관계자는 “사측과 노조가 지난 5일 제 17차 교섭을 시작했으나 결국 합의하는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아시아나의 파업은 언제 끝날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아시아나 노조와 이에 맞서는 사측 양측 모두 강경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어, 정부가 협상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만들고 있는 아시아나 조종사들이 파업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업계 한 관계자는 “파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당초 아시아나가 왜 파업을 시작했는지의 이유조차 잊혀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뚜렷한 이유도 없이 막무가내식 파업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아시아나의 파업 이유는 노조 측이 제시한 ‘13가지 사항’에 대해 회사가 동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시아나노조는 연간비행과 유급휴가, 정년, 여성조종사 처우문제 등 13가지 사항을 조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연간 비행시간을 현행 1,200시간에서 1,100시간으로 줄여줄 것, 유급휴가를 현행 9.6일에서 10일로, 정년 퇴직을 만55세에서 58세로 늘려달라는 것 등이 주요내용이다. 하지만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아시아나 안팎에서는 이들이 파업을 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경쟁사인 대한항공과 관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아시아나의 한 관계자는 “노조의 핵심 쟁점을 잘 살펴보면, 결국 대한항공과 비슷한 처우를 해달라는 것이 중요 안건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애시당초 아시아나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이유는 업무가 대한항공보다 과중하다는데서 시작됐다는 것. 이는 아시아나가 대한항공보다 후발주자이기도 하지만,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몇 차례 파업을 통해 이미 근무조건이 개선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한항공 조종사는 지난 2000년 노조를 설립했다. 하지만 아시아나 조종사는 지난해에야 노조 설립 허가를 받았다. 대한항공 조종사는 노조를 설립한 이후, 지난 2000년, 2001년 연이어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3일씩 파업을 한 적이 있다. 물론 파업의 횟수에 따라 조종사들의 근무조건이 개선됐을 것이라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렇다보니 그동안 노조가 없었던 아시아나 조종사들에게는 임금은 물론, 근무조건에 있어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갔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 노조가 주장하는 연간비행 시간의 경우, 대한항공은 이미 연간 1,000시간으로 제한해왔다”며 “아시아나 조종사들은 이들(대한항공 조종사)보다 연간 200시간 더 운행하면서 불만이 쌓여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의 얘기에 따르면 아시아나 노조가 제시한 사안은 무척 여러 가지로 보이지만, 사실 그 속내는 ‘우리도 경쟁사 수준으로 맞춰달라’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이번 파업을 두고 아시아나 회사측의 태도와 관련해서도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지나치게 강경한 태도 때문이다. 아시아나 사측은 “노조의 주장을 무조건 다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공수를 던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항공사의 특성상 노사간에 충돌할 경우, 사실상 회사가 약자일 수밖에 없음에도 ‘초강경’ 자세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 업계 안팎에서는 이는 아시아나 경영진의 결연한(?) 의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예상보다는 손실이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종사가 파업할 경우, 회사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부분은 민간 여객기보다는 화물기로 인한 손실이다”며 “아시아나의 경우 화물기가 몇 대 되지 않아 다른 항공사의 파업과 비교할 경우 큰 손실은 입지 않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파업으로 인한 손실은 당연하지만, 치명적이지는 않다는 주장이다. 사측에서 아직까지는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여력이 남아있다는 얘기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시아나는 부인하고 있다. 아시아나 조종사노조 관계자는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3천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며 “사측에서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겠다는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일축했다.

# “‘社’보다 ‘勞’가 항상 우위” 기형적 구조

매년 봄이 되면 노동계는 임금 협상 등을 위해 ‘춘투’를 벌인다. 하지만 다른 제조사보다도 항공사 노조의 파업은 유난히도 시끄럽고, 치명적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사 노조의 경우 사측보다 노조의 힘이 훨씬 막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항공사들이 납품 기한을 어길 경우, 곧 손실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조회사는 잔업을 통해 납품기일을 맞추는 등 문제 해결 방식이 여러 가지지만, 항공사의 경우 비행기가 제 시간에 출발하지 못하면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항공사 조종사들이 파업을 할 경우 대체 인력이 전무하다. 결국 이런 ‘근본적인 이유’로 인해 항공사의 파업은 매번 조종사들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