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수 본부장의 거취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최근 터진 안기부 X파일에서 지난 97년 대선 당시 홍석현 주미대사(당시 중앙일보 회장)와 대선후보 지원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파장으로 홍 대사가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시하는 등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사건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이 부회장 역시 거취를 표명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중요한 것은 이 부회장의 거취가 삼성그룹 전체의 경영인맥판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부회장은 DJ정부가 출범한 지난 98년 삼성그룹이 비서실 체제에서 구조조정본부로 조직이 바뀔 때부터 본부장을 맡아왔다. 올해로 본부장을 맡은지 8년째이다.그는 IMF라는 경제비상 시국에 삼성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면서 이건희 회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그룹내에서는 2인자로 불릴 만큼 막강한 파워를 행사해왔다. 일각에서는 그를 미래의 그룹경영권을 이어받을 것으로 관측돼온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개인 경제교사로 인식되어왔다. 특히 그는 현정부들어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부산상고 동문이라는 점 때문에 그의 입지와 관련해 갖가지 추측을 낳아왔다.

이건희회장 절대 신임

그런 이 부회장이 퇴진할 경우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경영인맥판도에 일대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칠 것으로 분석된다. 더욱이나 삼성그룹의 인사구조에서 구조본의 역할이 절대적인 데다가, 구조본이 그룹 전체의 경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점도 그의 퇴진이 가져올 후폭풍이 엄청날 것이라는 점을 예견케 하고 있다.현재로선 이 부회장의 퇴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재계의 관측이다. 안기부 불법 도청테이프 보도 이후 삼성그룹에 밀어닥치는 비난여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그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자리를 지킨다면 자칫 ‘도청 폭풍’이 이건희 회장에게로 직접 점화되는 최악의 상황을 최대한 그의 선에서 막아야 한다는 점도 그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이미 지난 2002년 대선자금과 관련해서도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사법처리를 받은 바 있다.만약 이 부회장이 구조본부장을 물러나게 된다면 삼성그룹 경영인맥에는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삼성관계자는 “삼성그룹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인다. 이 부회장이 물러날 경우 그의 공백을 쉽게 메우기 힘들다는 후유증이 예상되지만 혼란을 가져오는 최악의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의 무게에 버금가는 인물을 대체하기란 힘든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건희 회장의 마음을 가장 잘 읽어내는 몇 안되는 측근경영인이라는 점은 이 부회장의 공백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이다. 사실 이 부회장은 다리가 불편해 그동안 현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여러차례 이건희 회장에게 피력했으나 이 회장의 강력한 만류로 업무를 계속 수행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98년부터 실세

이 부회장이 구조본을 떠나고 새로운 인물이 구조본을 맡게 되면 우선적으로 그룹 전체의 경영진에도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먼저 교체바람이 예상되는 곳은 이 부회장이 몸담고 있는 구조본 내부. 현재 구조본은 이 부회장을 정점으로 재무팀, 기획팀, 인력관리팀, 경영진단팀, 홍보팀 등 5개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학수 부회장의 직접 통제를 받지는 않지만 법무팀과 회장실(비서팀 관장)도 구조본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몸담고 있는 임직원들은 각 계열사에서 파견되어 있는 형태지만 구조본에 몸담고 있는 팀장과 임원들은 이 부회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그룹내 인맥들이다. 따라서 이들이 이 부회장의 퇴진과 시차를 두고 구조본을 물러나게 되면 향후 계열사 전체에 인사교체 바람이 불 공산이 크다.

삼성의 ‘재무통’

특히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에버랜드, 삼성물산, 제일기획 등 주요 핵심 계열사의 경영진에 직접적인 교체바람이 불어닥칠 것이란 전망이다. 왜냐면 그룹의 경영구조상 이들 주요 계열사의 경영인맥은 이학수 부회장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 언뜻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일지 모르지만, 재무통인 이 부회장의 영향력이 막강한 이들 주요 계열사의 전문경영인들의 자리교체가 함께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재무팀과 홍보팀이다. 재무팀의 경우 이 부회장의 핵심 측근인 김인주 사장이 맡고 있다가 대선자금 파동이 있은 후 김 사장은 회장실을 맡고, 대신 최광해 전 삼성에버랜드 감사가 필두로 발탁되었다. 구조본 재무팀의 파워에 대해서는 그룹 내에서도 이미 ‘막강파워그룹’이라는 게 정설이다. 재무팀의 차장이면 계열사 임원을 좌지우지한다는 우스갯소리도 그룹 안팎에서 나돌 정도로 재무팀의 힘은 막강하다는 것. 그런 재무팀을 만들어낸 이 부회장이 퇴진하면 재무팀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란 예측이고, 이 변화는 향후 그룹 전체로 파급될 것이란 유추이다.

노 대통령 고교동창

홍보팀의 변화도 점쳐지고 있다. 현재 구조본 홍보팀은 중앙일보 출신 이순동 부사장이 맡고 있는데, 최근 잇단 악재로 인해 홍보팀이 안팎 곱사등이 신세가 되어 있다. 최근 홍보팀 소속 정아무개 상무가 미국 연수를 떠나면서 계열사 임원이 충원되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떠날 경우 홍보팀은 전면적인 대수술이 예상되기도 한다. 삼성전자에는 지난 7월부터 MBC 출신 이아무개 전무가 영입됐지만 최근 MBC에서 안기부 X파일을 집중 보도하면서 향후 변화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학수 부회장의 거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차기 구보조정본부장에 대한 하마평도 오가고 있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도석 삼성전자 경영지원총괄사장, 김인주 회장실 사장, 황영기 우리지주금융 회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 중 이학수 부회장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고, 이건희 회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김인주 사장과 삼성전자 재무팀을 이끌었던 최도석 사장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김 사장의 경우 재무통이긴 하지만 대외적인 부분에서 약하다는 평가이고, 최 사장은 구조본이나 비서실 출신이 아니라는 점 등 이건희 회장의 복심이 어떻게 작용할지 주목된다.


# ‘삼성 싱크탱크’ 삼성구조조정본부는 어떤 조직인가

삼성그룹 60여개 계열사에서 검증된 인력 100여명이 모인 삼성구조본은 차장급 이상의 그룹내 인재를 모아 구성되어 있는 곳이다. 과거 회장비서실이 98년부터 이름을 바꾼 것이긴 하지만 조직상 과거와는 약간의 차이는 있다. 현재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 회장이 직함이다. 따라서 이 회장을 직접 보좌하는 조직은 삼성전자 회장실이며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올초까지 구조본 재무팀장이던 김인주 사장이다. 삼성전자 회장실은 구조본과는 별개 조직이지만, 구조본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삼성구조본은 이학수 본부장을 정점으로 크게 5개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획팀, 재무팀, 경영진단팀, 인력관리팀, 홍보팀이 그 것. 구조본 핵심 부서는 재무팀이다. 이학수 부회장도 재무팀 출신이다.

현재 재무팀은 김인주 사장이 삼성전자 회장실로 옮기면서 최광해 부사장이 맡고 있다. 최 부사장은 삼성에버랜드 감사 출신으로, 원래는 비서실 재무팀 출신이었다.구조본의 조직이 계열사에 절대적인 파워를 행사하지만 그중에서도 더욱 ‘힘’이 센 곳은 경영진단팀이다. 그룹내에서는 ‘저승사자’라는 표현을 쓴다. 현재 경영진단팀은 삼성전자 미주 본사 출신 최주현 부사장이 팀장이고, 조직원은 15명 안팎이다. 한 때 비서실 감사팀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비교적 늦게 출발한 기획팀은 원래 홍보팀 소속이었다가 분리했다. 기획팀은 삼성물산 전략기획팀장 출신인 장충기 부사장이 총괄하고 있다. 이 조직에 소속된 임직원은 10명 가량이지만 산하에 전략지원팀을 두고 그룹의 경영전략과 대내외 정보를 촐괄수집분석한다. 장 부사장 밑에 소속된 전략지원팀은 이범주 상무가 상주하고 있고, 이 상무는 삼성경제연구소 임원을 겸직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구조본 전략지원팀과 협의해 최고경영자인 이 회장에게 보고서를 작성해 올린다. 그룹 계열사 임원 인사 업무를 총괄하는 인력팀은 노인식 부사장이 맡고 있다. 노 부사장은 삼성전자 인사팀에서 일하다가 지난 97년 자리를 옮겼다. 계열사 신규 임원 선임은 노 부사장 전결 사항이고, 임원 승진은 이학수 본부장 전결 사항이며, 이건희 회장은 계열사 임원인사만 관장한다. 삼성그룹 전체의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는 홍보팀은 이순동 부사장이 맡고 있다. 이 부사장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지난 20년 동안 홍보팀장을 맡고 있다. 구조본 홍보팀은 매주 1회씩 계열사 홍보담당 임원들을 모아 회의를 갖고 주간 홍보계획을 지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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