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눈을 뜨고 보니 좀비로 득실대는 세상을 마주하는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은 심정일 것이다. 4.27남북정상회담이 ‘위장평화쇼’라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나 ‘판문점 선언은 쓰레기 더미’라는 최대집 의사협회장과 같은 몇몇에게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 낯설고 두렵게 다가오는 것으로 보인다. 전 국민이 환호하고 감동하며 만끽한 판문점의 봄날이 그들에게는 엄동설한의 한복판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문재인과 김정은이라는 두 주연배우가 써 내려간 역대급 서사는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봄눈 녹듯 녹여버리고 삶의 곳곳에서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고 있다.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80%를 넘는, 여론조사 전문가도 놀랄 정도의 지지율이다. 임기 1년이 돌아오는 대통령이 이런 정도의 국민지지를 얻은 경우가 드물었다.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노벨평화상은 트럼프에게, 우리에게는 평화를!”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성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의미심장한 언급 이후 국민들도 이심전심의 심정을 내비치고 있다. 트럼프의 ‘평화가 상이다(peace is the prize)’란 발언처럼 평화가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상이니까. 온라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트럼프의 노벨평화상을 수상을 응원하고 있다. 여차하면 트럼프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해 촛불이 다시 타오를 수도 있겠다.
 
어김없이 통일비용이 다시 들춰지고 있다. 모 경제지에서는 20년간 705조가 든다고 보도했다. 금융권 연구소에서 나온 보고서를 인용한 기사로 보인다. 통일비용은 통일 이후 SOC투자비용과 북한 주민을 1만 달러 소득에 이르게 하는 비용 등이 있는데, 20년간 705조는 후자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통일비용을 계산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도 김칫국을 들이키는 행위에 불과하다. 남북화해 분위기에 어깃장을 놓고 싶어 써본 기사라면 몰라도.
 
“아, 멀다고 말하믄 안 되갔구나.” 김정은은 평양냉면처럼 밍밍하지만 나름의 맛을 가진 우스개를 던질 줄 아는 청년이었다. 우리가 그를 오판했던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김정은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답변이 80%에 달했다. 단 하루 보인 모습으로 북한 지도자가 아이돌급 관심을 받는 것은 납득이 쉽지 않지만, 대량살상무기의 발사 버튼을 가진 사람이 미치광이보다는 상식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방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용한 점쟁이가 아니라도 예상이 적중할 정도로 선거 판세가 일방적이다. 여당의 압승이 예상된다. 북미정상회담과 남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미 관계가 종전선언, 평화협정까지 내달린다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일 것이다. 오히려 선거 뒤가 더 궁금해지는 상황이다. 선거 이후 전당대회가 예정된 민주당은 과연 여당다운 여당이 될 수 있을까. 압도적 패배 앞에서 야당은 어디에서 활로를 찾을까.
 
국회는 당분간 닫혀 있을 것 같다. 자유한국당의 농성천막은 국회 본청 앞을 가로막고 있고, 원내대표라는 사람은 무기한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정부가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은 볼모 신세다. 답답한 상황이지만 드루킹 특검을 해도 야당이 정상회담 정국을 돌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4조 원짜리 추경으로 여당이 민생 문제를 해결하긴 역부족인 것처럼. 국회는 당분간 닫아 놓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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