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제도가 확정된 29일, 한나라당이 ‘역물갈이론’에 휩싸이고 있다. 초재선 현역의원들도 ‘공천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는 피해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 이미 한나라당 부산·울산·경남(PK) 정치권의 중진 물갈이론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어서 당내 분위기가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당직자들 사이에서는 물갈이 대상자와 폭까지 확대될 것이란 얘기가 돌고 있어 공천 교체 수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나라당 중진들의 물갈이론과 맞물려 퍼지고 있는 ‘역물갈이설’은 다양한 경로로 감지되고 있다.최병렬 대표의 한 측근은 “영남권 중진들을 대거 퇴진시키기 위해서는 공천 심사도 강화될 수밖에 없다”며 “초재선의원들도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핵심 당직자도 “수도권 지역의 일부 젊은 의원들이 공천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공천 작업 실무를 맡고 있는 대외인사영입위측 한 인사는 “공천기준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그 기준에 미달되는 의원들은 초재선을 막론하고 과감하게 정리할 방침”이라고 밝혀 물갈이 폭이 커질 것임을 내비쳤다. 최근 지구당에 대한 당무감사결과도 물갈이설의 진원지로 보인다.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은 “지난 지구당 당무감사결과 각 지구당을 5등급으로 분류했다”며 “영남권 외에도 여러 지역구가 위험 수준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홍 위원장이 거론한 영남권외 지역에서 경계령이 내려진 지구당엔 일부 수도권지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원희룡, 오세훈, 남경필 의원 등 소장파 핵심조차 물갈이 안전지대가 아니란 소문이 떠돌고 있다. 소장파가 밀고 있는 박근혜 의원이 공천심사위원장 내정 직전 낙마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박의원은 소장파를 주요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어 이재오 총장 등 현지도부가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 홍 위원장은 원희룡 위원장 및 오세훈 청년위원장(서울 강남 을) 등을 지목, “서울 강남 지역구 의원들은 강북의 어려운 지역에 도전하고 당선이 쉬운 강남은 신진인사 영입 몫으로 활용해야 수도권에 바람이 분다”며 ‘강남 물갈이론’을 주장했다. 그는 “젊은 의원도 공천탈락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홍 의원은 감사기준과 관련 “지역구 내에서의 여론조사 결과, 당 기여도, 국회 의정활동, 같은 지역구에서 2번 이상 선거에서 패배한 위원장 등을 배제한다는 원칙을 마련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영남권 지구당에 대한 당무감사 결과 교체대상 및 위험지구당으로 판정받은 곳이 60~7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당 지도부는 이 지역 현역의원을 대폭 교체한다는 방침을 사실상 확정한 상태로 전해진다.


이미 원내외 중진들의 불출마 선언 또는 지구당위원장직 사퇴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주말 박헌기(영천), 윤영탁(대구 수성을)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박 의원의 경우 초등학교 학력의 변호사로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 받는데다가 당내에서 당기위원장, 조직책선정위원장 등을 지낼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는 점에서 불출마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 다른 중진들에게도 적잖은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앞서 이달들어 원외인 이자헌(평택을), 이상재(공주·연기), 조일호(충남 부여) 위원장이 지구당위원장직을 사퇴했다. 전국구 의원 중에서도 강창성 의원을 비롯해 몇몇이 정계은퇴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이외에도 한나라당 당내에서는 영남권에서 Y, J, K, P의원, 중부권에서는 K. C, S 의원 등의 불출마 선언이 예상된다.

중진 의원들의 용퇴 분위기는 수도권 바람을 위한 물갈이론과 소임 여부에 따른 역할, 정년제 등 ‘역물갈이론’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처럼 한나라당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대폭적인 공천 물갈이 방침은 내년 총선에 사활을 걸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정면 대결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판단때문이다.노 대통령은 청와대 인사들을 대거 투입해 인물대결로 몰고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현역 의원들로는 압승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당무감사결과가 지도부나 지도부와 가까운 인사들에게는 후한 점수를 줬다”는 반발도 있지만 야당 6년만에 변화의 시동을 걸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는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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