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제적 여론조성용 비핵화와 맞바꾸나

<뉴시스>
[일요서울 | 박아름 기자] ‘종전·비핵화’의 동전 뒷면은 ‘주한미군 철수’일까. 4.27남북정상회담의 성공 개최로 형성된 평화무드가 3일 만에 와해되고,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졌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미국 외교전문지 기고글이 도화선이 됐다. 문 특보는 이 글에서 “평화협정(종전선언)이 되면 미군 주둔이 정당화되기 어렵다”면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다소 현실적으로 언급했다. 문 특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입’으로서 알려져 있어 파장은 더욱 크다. 그동안 ‘사견(私見)’을 전제로 한 문 특보의 돌출 발언은 실현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 평창올림픽을 기점으로 한 한미연합훈련의 축소, 성주 사드 배치의 잠정적 중단 등이 모두 그의 입에서 시작됐다. 일각에서는 문 특보의 이번 발언 역시 주한미군 철수의 첫 수순일거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청와대는 “미군 철수는 없다. 문 특보의 개인 의견일 뿐”이라고 선을 그으며 즉각 진화에 나섰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된 문 특보의 해촉에 대해서는 침묵해 ‘文-文 교감’ 의혹을 쉽사리 잠재우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私見’이라 선 긋더니 실현된 경우 多… ‘문정인 예언설’까지
“사실 아니라면 문 특보 책임 물어라” 해촉 촉구 목소리 커져

 
문 특보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글을 통해 “평화협정(종전선언)이 성사된다면 주한미군은 어떻게 될까. 그 이후에는 주한미군의 계속적 주둔이 정당화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되면)보수 야당은 주한미군의 감축‧철수를 강하게 반대하고, 이는 문 대통령의 정치적 딜레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종전선언 이후 주한미군 철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오해의 소지를 남겨 여론의 불안감을 확산시켰다.
 
논란이 확산되자 청와대는 “문 특보의 사견일 뿐”이라며 즉각 선을 그었다. 문 특보에게 대통령 생각과 다른 발언으로 혼선을 일으키지 말라는 경고성 메시지도 덧붙였다. 지난 2일에는 이례적으로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다.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자 문 특보는 지난 3일 “주한미군 철수를 얘기한 적 없다”면서 “평화협정 후에도 동북아의 전략적 안정과 국내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 주한미군의 지속적 주둔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사드 배치 중단도 문 특보 입에서 시작
 
하지만 문 특보의 ‘입’에서 시작된 주한미군 철수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문 특보의 기고글이 발표되기 전 이미 문재인 대통령과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문 특보는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다. 문 특보의 돌발 발언이 실현된 경우가 많아 정치권에서는 그가 사실상 ‘문 대통령의 입’으로써 역할을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청와대가 예민한 사안을 두고 문 특보의 발언대로 움직이는 사례가 상당수 반복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우선 지난해 9월 베를린 강연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은 핵 및 미사일 활동을 중지하고, 한미는 군사훈련의 축소·중단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당시 정부는 이번과 마찬가지로 “문 특보의 사견”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3개월 뒤인 지난해 12월 문 대통령은 미국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평창 동계 올림픽 기간 중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연기할 것”을 밝혔다. 당시 북한도 핵미사일 시험 중단을 선언했다.
 
이에 앞서서는 ‘사드 배치 중단 예언설’도 있었다. 문 특보는 지난해 5월 “사드 배치 과정에 절차적 정당성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하며 중단설을 제기했고, 문 대통령은 얼마 후 진상조사와 환경영향평가를 지시했다.
 
이 밖에 지난해 9월에는 문 특보가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참수부대 운영 계획’ 발언에 문제를 제기하자 얼마 후 정부는 ‘참수부대’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으로 방침을 세웠다.
 
‘철수’는 카드일 뿐 ‘감축’으로 타협할 것
 
이를 종합해 보면 ‘비슷한 프로세스’를 추론할 수 있다. ‘문 특보의 강경 발언→여론 반응→靑의 부인→문 대통령의 절충적 조치’가 그 순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예민한 사안마다 문 특보를 앞세워 아주 교묘한 수를 쓰고 있다”며 “일례로 문 특보가 ‘한미 합동군사훈련 축소‧중단’이라는 다소 강경한 단어를 사용하면, 얼마 후 문 대통령이 ‘한미 합동군사훈련 연기’를 조치하는 식”이라고 분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발언 역시 문재인 정부와 문 특보의 ‘의도된 천기누설’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표면적으로는 문 특보가 ‘자유로운 학자’로서 ‘사견’을 쏟아내지만, 사실 정부의 밑그림에 따라 여론을 떠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국회 국방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 특보의 기고글이 발표되기 전, 종전이니 평화협정이니 얘기가 나올 때부터 결국 주한미군 철수라는 종착점에 달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면서 “의도된 수순으로 보인다”고 의구심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결국 북한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라며 “북한이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미군의 핵전략이다. 그걸 배제하겠다는 의도에 따라가면 6.25전쟁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 말란 법 없다”고 경고했다.
 
야당의 한 의원도 “문 특보의 기고글을 보면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이 있을 명분이 없다. 보수 세력이 강력히 반대할 것이다. 평화협정에 대해 국회 비준을 받겠지만 야당이 반대할 것’이라고 전개된다. (이를 역순으로 보면)주한미군의 명분을 말하는 주장 빼고는 판문점 선언에 따라 모두 진행되고 있다”며 “결국 문 특보의 ‘예언’대로 정부가 이러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강력히 제기했다.
 
北에 본선은 ‘북미회담’ 남북 연방제 향한 시나리오
 
만약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청와대의 단계적 계획이 예측 가능해진다. 이와 관련 북미정상회담을 전후로 주한미군 ‘철수’ 대신 ‘감축’이라는 타협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외교 전문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타협안으로 ‘감축’이 나올 수 있다”며 “지속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중국과 북한도 실질적으로는 ‘철수’는 카드로만 이용하고 ‘감축’ 선에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 특보의 주장대로 머지않아 주한미군이 완전히 철수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번 북미회담은 사실상 핵·미사일을 손에 쥔 북한이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담판을 짓는 회담이다.
 
이는 한반도 핵 문제는 철저히 북미 사이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던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대목이다. 물론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북한에겐 ‘몸풀기’일뿐 결국 ‘본선’은 북미정상회담이기 때문이다.
 
만약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 ‘동결’이 아닌 핵 ‘포기’를 선언하고 미국으로부터 ‘주한미군 철수’라는 선물을 받아온다면 북한의 숙원사업인 ‘미·북 평화협정→주한미군 철수→연방제하에서 북 주도 통일’ 시나리오의 절반 이상이 이뤄지는 셈이라는 지적이다.
 
‘대통령 특보’로서 사견을? “정책 혼선 책임 물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와대의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문 특보의 발언이 문제가 된 바, 청와대의 의견과 결이 다른 것이 확실하다면 응당 해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차대한 시기에 부적절한 언행으로 정부 정책에 혼선을 일으킨 문 특보를 더 이상 감싸고돌지 말라는 것. 문 특보는 일반 학자가 아닌 ‘대통령 특보’이기 때문에 책임 화살을 피하기 더욱 어렵게 됐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번에도 ‘문 특보의 사견’일 뿐이라며, 해촉 촉구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문 특보의 거취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한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한 외교 전문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특보가 개인으로 기고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미국의 경우에는 (문 특보와 같이) 개인적 발언으로 문제가 되면 해임한다”며 “남북이 평화 모드로 접어들고 미국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이 때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야당에서도 청와대의 ‘문 특보 감싸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 특보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 등 소위 진보 정권에서 중용됐지만 청문회를 거치는 공직은 맡지 않았다. 자제력과 절제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학자의 양심에 반하는 언사를 참을 수 없는 자”라며 “청와대는 외교·안보정책에 혼선을 불러일으키는 문 특보를 해촉하지 않을 듯하다. 청와대의 입(口)마담이 아니라면 문 특보가 스스로 물러나라”고 일갈했다.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도 지난 2일 당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문 특보 주장이 본인의 생각과 분명히 다르고, 앞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입장과 다르다고 한다면 즉각 해임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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