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2조원을 돌파하며 저축은행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HK상호저축은행(구 한솔저축은행, 이하 HK)의 주가가 최근 곤두박질치고 있다. HK의 전·현직 사령탑들과 최대주주가 경영권 분쟁을 시작하면서 내부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어서다. HK에 따르면 “이종윤 전 부회장이 한솔그룹 소유의 HK 지분을 싹쓸이하면서 대주주로 올라섰다”면서 “이후 이 부회장과 리처드 영석 오 사장, 최대주주인 퍼시픽팩퍼시픽림에프아이펀드(이하 PPRF·미국계) 등이 경영권 쟁탈전을 벌이면서 사내 분위기가 매우 어지러운 상태”라고 말했다.

경영권 놓고 전·현직 CEO 법정소송

HK의 ‘경영권 분쟁’은 최근 대표에서 물러난 이종윤 전 부회장으로 비롯됐다. 이 부회장이 지난 1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가디언홀딩스 등을 통해 한솔개발·케미칼·건설이 보유하고 있던 HK의 지분 117만8,222주를 장외에서 인수한 이후 장내매수 등으로 지분을 추가 확보했다. HK의 얼굴이던 부회장에서 물러난 이후 대주주로 다시 컴백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임시주총 소집허가 신청을 서울지법에 제기한 것. 김모씨의 명의로 제출된 이 소송은 ▲임시주총 개최 허가 ▲HK의 CEO를 맡고 있는 리처드 영석 오 사장의 해임건 ▲오 사장이 주도하고 있는 HK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대한 의결권 제한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법원은 임시주총 개최와 의결권 제한 등은 허가했지만, 오 사장 해임건은 불허했다.

금융업계는 이 부회장의 이번 소송을 최대주주였던 PPRF로부터 경영권을 되찾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이 부회장이 끌어들인 미국계 펀드 PPRF가 이 부회장을 견제하기위한 수단으로 오 사장을 선출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이 부회장이 밀려났다”면서 “자신이 살려 놓은 기업을 다른 이에게 넘길 수 없다는 자존심이 발동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대주주로 컴백하자 가장 위협을 느끼고 있는 이는 리처드 영석 오 사장이다. 지난 10월 자신이 HK 대표로 선출되면서 이 부회장의 퇴출이 기정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주주로 돌아온 이 부회장이 자신의 해임건을 포함한 임시주총을 서울지법에 요청하자, 오 사장도 반격에 나섰다. 이 부회장측 주주들을 설득해 신주발행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 하지만 오 사장의 반격은 법원의 불허로 무산됐다.

PPRF “이러다 HK 뺏길라”

이 부회장의 대주주 컴백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곳은 오 사장 외에도 또 있다. 바로 PPRF다. 미국계 펀드로 알려진 PPRF는 지난 2003년 한솔그룹에서 주식 인수 방식으로 한솔저축은행을 인수했으며 현재 HK의 최대주주(31.9%)다. 하지만 PPRF는 현재 ‘HK 경영권 수성’에 비상이 걸려있다. 인수 당시 545만여주(지분율 47.9%)를 보유하며 안정적인 최대주주의 위치에 있던 PPRF가 HK의 잇따른 3자배정 유상증자 등으로 지분율이 추락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들에 의해 대표로 선출된 오 사장과의 관계에도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어 더욱 불안한 상태다. PPRF의 회계장부 열람 요구를 오 사장측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PPRF-리처드 오 사장’과의 관계도 대결구도로 치닫기 시작한 것이다. 장부 열람 신청을 거부당한 PPRF는 지난 6일 서울지법에 ‘회계장부 열람 및 등사 가처분’을 냈다.

PPRF가 제출한 신청서에 따르면 “오 사장이 회사 대표로 업무집행에 있어 법률과 정관을 위반해 회사의 대외명성과 경영상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시정을 위해 회사장부 등을 열람하려 했으나 오 사장의 방해로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HK는 이에 “회계장부 열람을 신청한 이들이 PPRF의 위임장을 확인해 주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업계는 HK의 회계장부 열람 거부에 대해 “PPRF를 통해 HK를 접수한 오 사장이 PPRF에서 독립하려는 것 같다”며 “이 부회장에 이어 오 사장도 HK의 경영권 쟁탈전에 참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실제 오 사장은 지난 1/4분기 이사회를 주도하며 신규 주주들에게 제3자배정 방식의 170만 유상증자를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유상증자로 얻게 된 170만주는 현재 이 부회장의 가처분 신청으로 인해 의결권이 제한된 상태다.

운명의 날 ‘25일 임시주총’

HK 경영권을 놓고 각축전이 계속되면서 업계의 시선은 25일 열리는 임시주총에 쏠려있다. 이날 표대결을 통해 ▲리처드 오 사장(외 1명)의 해임 ▲상근이사 2명 ▲사외이사 2명 ▲감사 1명 등 2명을 해임하고 총 5명의 이사를 새로 임명할 계획이다. 주총을 소집한 이 부회장측은 “우호지분을 51% 이상 모을 수 있다”며 자신하고 있지만, PPRF도 이에 대한 대비를 꼼꼼하게 준비하고 있다. 인근에 위치한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이 부회장과 오 사장은 회사인수 및 경영에, PPRF은 투자금 회수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경영권 분쟁중이란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식 유통량이 적어져 장내매수가 어려운만큼 25일 임시주총에서 최종 승자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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