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 지지기반 급속히 허물어져

‘트럼프와의 우정’ 내세우지만 뚜렷한 실적 없어
 향후 미국의 자국중심 전략 심화하면 일본 난감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 중인 가운데 바람 잘 날 없는 아베 내각에서 또다시 사고를 치는 각료가 출현해 아베 총리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이번에 불거진 것은 문부과학상의 '섹시 요가' 스캔들이다. 25일 발매된 일본 주간지 주간문춘(週刊文春)은 "하야시 문부과학상이 백주(白晝)에 다니는 '섹시 개인실' 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하야시 요시마사 문부과학상이 지난 16일 오후 2시 30분쯤 전직 성인비디오 배우가 경영하는 도쿄 시부야의 '개인실(밀폐된 공간에서 하는) 요가' 업소를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주간문춘은 하야시 문부과학상이 의원 배지를 뗀 채 관용차를 타고 이 업소에 갔다고 전하며 "이곳은 개인실에서 요가를 한 후 성인잡지 모델이 손님의 눈을 가린 채 1대1로 오일 마사지를 해 주는 특별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하야시 문부과학상은 이 업소에서 2시간 정도 머문 뒤 다시 관용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가 이 업소를 방문한 날은 가케(加計)학원 스캔들에 대한 국회의 추궁이 거셌을 때다. 아베 내각은 아베 총리가 모리토모(森友)학원, 가케(加計)학원 등 2개 사학 재단이 특혜를 받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학(私學) 스캔들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더해 방위성의 일일(日日)보고 문건 은폐 의혹도 제기됐고, 최근에는 후쿠다 준이치 전 재무성 사무차관의 여기자 성희롱 사건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현재 아베 내각 지지율은 30% 선이 위협 당하는 수준이다. 일본은 내각 지지율이 20%대이면 '위험수역'으로 인식하며, 20%로 떨어지면 총리가 물러나곤 했다. 그런데 최근 한 민방 여론조사에서 아베 정권 지지율이 27%까지 주저앉았다(NNN방송 16일 조사). 아사히(31%)·마이니치(30%)·요미우리(39%)·NHK(38%) 조사에서도 매달 뚝뚝 떨어지는 추세다.
전후(戰後) 최장수 총리를 꿈꾸어온 아베 총리로서는 지금이 최대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선배 총리마저 악담(惡談)을 쏟아냈다. 2001~2006년 총리를 지낸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사학스캔들과 관련된 재무성 문서조작, 자위대의 보고문건 은폐 등으로 위기에 처한 아베 총리가 6월에는 사임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간조일(週刊朝日) 16일자호에 따르면 그는 이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베 정권의 전망을 묻는 질문에 “위험해졌다. 아베 총리의 (총리직) 사퇴는 현 국회가 끝나는 때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현재 소집돼 있는 통상(정기)국회는 오는 6월 20일까지 지속된다. 일본 정계 일각에서는 고이즈미를 아베의 정치적 스승이라고 부른다. 아베 총리는 고이즈미 전 총리가 2002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 관방장관으로 수행하는 등 그에게서 많은 정치적 영향을 받았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아베 총리의 6월 사퇴를 전망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모리토모·가케 학원 문제에 깊이 연루돼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 영향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회가 끝나면 1년 전부터 참의원 선거운동 준비를 하므로 공천할 후보를 결정해야 한다”며 “아베 총리로는 선거를 할 수 없다고 후보들이 불안해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아베 총리가 스캔들과 관계 있으면 그만둔다고 했지만, 지금은 들통날 거짓말을 뻔뻔하게 하고 있다고 국민은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아베 총리와 40분간 전화 통화를 하고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 때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이 동북아 평화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지난 17〜18일 있었던 미·일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피)납치자 문제를 제기하고 납치자가 일본으로 귀국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며 "문 대통령도 남북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제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이미 기회가 닿는 대로 북쪽에 납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입장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문 대통령에게까지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제기해 달라고 부탁한 것은 일본 국내에서 추락할 대로 추락한 자신의 지지도를 약간이라도 만회해 보려는 안간힘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당국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는 북한에서는 “완전히 해결됐다”고 주장하며 일본에서는 “해결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실체가 모호한 측면이 있지만 일본 국내에서는 정치 지도자가 북한을 향해 ‘납치자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점수를 따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가장 먼저 미국으로 날아가 트럼프와 회담한 외국 지도자가 그였을 정도로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을 들여왔다. 트럼프 취임 이후에도 아베 총리는 트럼프와의 친밀을 강조해 왔다. 미일 정상 간에 자주 연출돼 온 다정한 모습이 없더라도 적어도 이론상으로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여전히 미국의 가장 충실한 동맹국이다. 그런데 동아시아 정치 지형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중요한 시점에 아베 총리는 지난 17~18일 트럼프 대통령의 별장인 마라라고에서 가진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를 움직일 이렇다 할 카드를 내놓지 않았다. 북한을 상대로 하는 일련의 대화 국면에서 일본이 주변으로 밀리고 있고, 미국의 통상 전략이 일본에 우려를 안기는 상황에서, 동북아의 정치역학이 급속히 진화하면서 미국이 자국의 경제·안보 이익을 심화시키는 자체 전략을 어떻게 가져가느냐를 면밀히 평가해야 할 중대한 전환점에 일본이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코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예상치 못했던 극적인 상황 변화도 아베 총리를 초조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아베 쪽에서 떠들썩하게 홍보해 온 아베와 트럼프 간 우정이 어떤 확고한 결실도 맺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베 자신과 그의 각료들이 연루된 여러 스캔들로 인해 점증(漸增)하는 정치적 압력에 직면하고 있는 이 시점에 특히 아베 총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한 지난 15개월은 공교롭게도 아베 총리가 국내 정치전선(戰線)에서뿐만 아니라 세계무대에서도 급속히 지지기반을 상실한 기간으로 기록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