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지난 14일 느닷없이 재계서열 20위권의 대림산업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의 성격이 특별조사인지, 정기조사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재계는 이번 조사가 최근 대림산업이 연루된 일련의 사건이 원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기 세무조사와는 달리 특별 세무조사는 탈세 혹은 탈루에 대한 정보가 입수되었을 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재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갑작스런 세무조사를 두고 재계에서는 갖가지 추측을 하고 있다. 다음은 재계에서 오가는 세무조사 배경에 대한 추측이다.

아파트 재건축 비리가 도화선인가

대림산업은 최근 아파트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설계 변경을 부탁해 수백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경찰의 집중수사를 받아왔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일대의 월드타운 재건축 사업이 그 것. 이 사실이 특별 세무조사를 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는 것이다.그러나 대림산업측은 부인하고 있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외국계 펀드 등과 함께 국세청에서 통상적으로 실시하는 세무조사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의 의례적 절차일 뿐, 특별 사안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대림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국세청의 이번 세무조사는 사전에 전혀 예고되지 않은데다, 갑작스럽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특별조사의 성격이 강하다는 게 국세청 주변의 분석이다. 국세청은 세무조사의 성격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지는 않지만 “세무조사는 모두 같다”는 말로 대신했다.

부동산 억제책의 희생양인가

국세청이 대림산업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아파트 재건축 사업 전체를 싸잡아 강도 높은 발언을 해 업계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일부에서는 “이번 대림산업 세무조사는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위배되는 곳에 대한 첫 번째 본보기 징계가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대림산업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2일 오전 10시쯤 국세청 직원 몇 명이 갑작스레 종로구 수송동의 대림산업 본사에 들이닥쳤다고 한다. 국세청 직원들의 달갑지 않은 ‘방문’에 대해 회사측은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림산업 직원들은 이미 한차례 벌어진 경찰 수사로 인해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국세청 직원들은 회사 본사의 재무, 회계 등 핵심 부서를 방문해 서류와 파일을 모두 압수했다. 이번 국세청 수색은 서류를 압류당한 해당 부서를 제외하고는 타 부서에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했을 정도로 신속하게 진행됐다.

이 날 오후 국세청은 대림산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세청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해 조사를 벌이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번 조사를 두고 여러 설(說)들이 오가고 있다.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바로 한덕수 경제부총리의 공격설이다. 국세청이 조사에 착수한 지 3일 만인 지난 15일. 한덕수 부총리는 정례브리핑에서 상당히 이례적으로 부동산 정책에 관련이 있는 기업들에 대해 ‘강공발언’을 날렸다. 한 부총리는 “강남과 분당의 재건축지역을 중심으로 국지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운을 뗐다.

이후 그는 “부동산 투기혐의자나 주택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거짓 신고를 한 사람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한 부총리가 특정업체를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업계에서는 그의 발언을 두고 대림산업의 세무조사가 이 중 하나가 아니겠느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최근 부동산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는 곳은 대림산업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림산업의 재개발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는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건축 과정에서의 모든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세청이 조사에 들어간 것은 시기상 이르지 않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한덕수 부총리는 부동산 재개발 관련자들이나 회사에 왜 이렇게 강공 발언을 날린 것일까.

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의 기조를 확고히 하겠다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보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노무현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강남의 집값을 잡겠다”는 등의 발언을 공공연하게 하며, 집값 안정에 대해 자신감을 보였지만 정작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강남, 강북은 물론, 재개발 아파트에 대한 평당 분양가도 천정부지로 솟아 올랐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정권 중반기에 들어서면서 부동산 정책에 대해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 이런 복합적인 상황이 이번에 의혹을 받고 있는 특정 업체를 향해 불을 뿜는 계기가 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다. 국세청이 향후 대림산업에 대해 어떤 결과를 내릴 지 주목된다 .

국세청의 알쏭달쏭한 행보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선언하자, 업계 관계자들을 고개를 갸우뚱했다. 국세청의 알다가도 모를 듯한 태도 변신 때문이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도 그럴것이 국세청은 지난 3월 대림산업에 대해 ‘우수 납세기업’이라며 표창장까지 수여했으나, 불과 한 달 만에 돌연 태도를 바꿔 세무조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3일. 국세청은 ‘제 39회 납세자의 날’을 맞아 대림산업에 ‘국세 1천억 탑’을 수여했다. 이 날 현대차와 포스코 등 몇 몇 대기업도 국세청의 표창을 받았지만, 재계 20위권의 기업 중에서 상을 받은 곳은 대림산업이 유일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만에 국세청의 태도를 180도 바뀌었다. 지난 4월 12일. 국세청 관계자들은 세금을 성실히 신고했던 대림산업을 방문해, 모든 회계 자료를 가져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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