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국의 부동산 가격을 산정해 공시하면서 대기업 총수들의 집 값이 공개됐다. 재벌총수들은 어떤 집에서 살까.재벌 집성촌 1번가로 꼽히는 곳은 서울용산구 한남동이다. 용이 여의주를 감싸 안은 형국으로 복과 재물이 항상 넘친다는 곳. 뒤로는 남산에 의지하고 앞으로는 굽이쳐 흐르는 한강이 보이는 곳. 터널 하나 지나면 강북시내와 바로 통하면서 앞으로는 강남 고층 빌딩들이 내려다 보인다. 현재 한남동에는 국내를 대표할만한 부자들이 상당수 살고 있다. 국내 10대 재벌 총수 중 5대 재벌가가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을 정도. 삼성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LG 구본무 회장, 현대차 정몽구 회장, 금호 박성용 명예회장, 박삼구 회장, 동부 김준기 회장 등이 살고 있다. 하얏트 호텔 아래쪽은 이른바 ‘삼성타운’으로 불리는 곳.

이곳에는 이건희 회장(공시가 27억8,000만원)을 비롯한 이숙희(이 회장의 누나)씨와 이명희 신세계 회장 등이 살고 있어서다. 삼성에 이어 재계 서열 2위로 올라선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의 집도 한남동에 있다. 한남동에 자택만 2동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정 회장은 2동을 모두 합친 공시가가 18억3,900만원으로 재벌자택 평균가를 밑돌았다. 한남동 재벌가 중 이건희 회장과 구본무 회장은 이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도 눈길을 끌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원래 집은 삼성미술관 ‘리움’ 인근. 하지만 농심과 분쟁이 있었던 새집의 공사가 끝나는 대로 곧 옮겨갈 예정이다. 구본무 회장의 자택은 공관들이 몰려 있는 단국대 쪽의 매봉산 기슭이었지만 한남동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한남동은 남산을 끼고 한강으로 뻗어 나가는 배산임수의 지형. 때문에 풍수학적으로 상당히 좋은 위치라는 게 학계관계자들의 견해다. 여기에 남산 너머의 종로 일대와 반포, 동작, 한남으로 이어지는 한강다리들은 강남을 한층 더 가깝게 하고 있다. 외국대사관들과 공관들이 대거 이 지역에 밀집돼 군데군데 초소가 운영되는 관계로 타 지역보다 안전하다는 점도 이곳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다. 성북구 성북동도 재벌가 밀집지역 중 하나다. 북한산에서 뻗어내린 산자락에 들어선 성북동.

한남동이 ‘재벌가 밀집촌’이라면 성북동은 ‘전통 부촌’이라고 할 수 있다. 한집 한집이 성으로 보일정도로 고급 주택가가 즐비한 성북동에는 대기업의 전대 회장들의 자택들이 상당히 많다. 성북동의 특징은 주로 재벌 1세대들과 중견 기업 창업자들이 주로 거주한다는 것. LG 구두회 창업고문과 김영대 대성그룹 회장, 김각중 경방 회장, 이회림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등이 성북동민으로 알려져 있다. 성북동의 또다른 특징은 한국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현대가의 자택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는 점. 창업주였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의 청운동 자택을 비롯해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현정은 회장의 성북동 자택도 이곳에 있다.

현정은 회장의 자택은 공정위가 발표한 주택공시지가 중 두 번째로 높은 가격(45억4,000만원)을 받았다. 한남동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대사관저가 상당히 많이 분포해 있다. 일본, 독일, 오스트리아, 캐나다 대사관 등이 성북동에 터를 잡고 있다. 재벌 1세대를 비롯해 중견기업인들이 대거 거주하고 있는 성북동 일대의 평균 공시지가는 평당 약 800~1,000만원 사이.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는 “고급 단독주택만 1,000가구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조용하고 외진 곳일수록 가격이 비싸며 대지가 넓을수록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중구 장충동이 꼽힌다. 서울 남산 동북쪽 퇴계로에서 훈련원길을 거쳐 장충체육관에 이르러 건너편 골목 안으로 진입하면 한남동과 성북동을 능가하는 대저택들이 드러난다. 이곳이 바로 198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 부촌 일번지를 자신했던 장충동(장충동 1가) 일대다. 다른 지역들과 다를 바 없지만, 골목입구의 르노삼성대리점 안으로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500여평에서 2,000여평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규모의 대저택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다. 장충동은 지난 60~80년대 기업인들이 대거 모여 살던 곳. 이중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고 정주영 현대 창업주도 이곳에서 이웃으로 지냈다. 또한 유일한 유한양행 회장, 설경동 대한전선 회장 등 창업 1세대들도 이곳에서 터를 잡았다.

현대 정주영 창업회장이 살던 장충동 집은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이 이어받아 살고 있다. 삼성 이병철 창업회장의 옛 저택은 등기상 이건희 회장으로 돼 있으나, 현재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거주하고 있다는 게 삼성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히 고 이병철 회장의 자택의 공시지가는 65억8,000만원으로 공정위가 발표한 공시지가 중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이밖에도 인근에는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 장충동의 대저택들은 10여채 정도만이 남아있다. 대부분 저택들이 고급 빌라로 탈바꿈하고 있어 ‘부촌 장충동’의 이미지도 이제는 퇴색됐다는 게 인근 중개업자들의 설명이다.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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