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질 전쟁’삼성가가 또 볼썽 사나운 숙질간 전쟁을 벌이고 있다. 주인공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조카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다. 두 사람은 지난 90년대 초 당시 제일제당이 삼성그룹에서 분가한 직후 삼성그룹측이 이재현 회장의 자택 담벼락에 감시카메라까지 설치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상호비방전까지 벌이는 등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다.그같은 신경전이 10년이 지난 뒤인 최근 다시 벌어지고 있다. 이번에 벌어진 마찰의 핵심은 집이다. 선대인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살던 장충동 자택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문제로 맞붙은 것. ‘생뚱 맞은’ 것은 이병철 전 회장의 자택을 두고 이건희-재현 회장간에 서로 ‘내 것이 아니다’며 상대측에 떠밀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된 일일까.

이 일이 불거진 것은 지난 4월8일 행자부에서 전국 부동산공시가격 현황조사 발표가 나온 직후였다. 당시 한 언론에서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주요 재벌총수의 집값을 산정해 보도했고, 이 때 이 신문은 “이병철 회장이 살았던 장충동 1가 110번지에 있는 주택(공시지가 적용 가격 65억8,000만원)은 이재현 회장 소유”라고 밝혔다.이에 대해 CJ측은 즉각 “이재현 회장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자택은 서울 중구 장충동 1가 110번지가 아닌 인근 107-1번지”라며 “110번지 집은 이건희 회장의 소유”라고 반박했다. 실제 확인 결과 이재현 회장은 주민등록등본상에도 지난 96년 12월30일자로 장충동 107-1번지에 전입신고한 이후 계속 거주하고 있다. 이재현 회장이 살고 있는 이 집은 빌라로 현재 공시주택 가격 산정작업이 진행 중이다.

흥미로운 것은 삼성그룹측의 반응이다.삼성그룹 홍보실 이철우 과장은 “분명히 이재현 회장은 장충동 110번지 집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사실 확인에 대한 질문에 “그러면 언론이 오보를 했다는 것이냐”며 매우 역정을 냈다.여기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이 집의 등기부등본상 소유자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명의라는 점과 왜 멀쩡한 집을 두고 이건희 회장측과 이재현 회장측이 서로 “자신이 살지 않는다”고 주장하느냐는 점이다. 이는 65억8,000만원(공시지가 기준)에 이르는 막대한 가격이라는 점 때문에 여론의 눈총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으로 해석된다. 말하자면 한국 최고의 재벌가인 삼성그룹이 여론의 눈총을 우려해 ‘죽은 조상’이 남긴 유산마저도 홀대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왜 등기부등본상 이건희 회장 소유로 되어 있는 장충동 110번지 주택을 뜬금없이 언론에서 ‘이재현 회장 것’이라는 식으로 보도한 것일까.

취재 결과 이 사실을 보도한 A 신문은 기사를 게재하기 전 직접 장충동 현장을 찾아 취재를 하는 과정에 110번지 집에 이재현 회장이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그같이 보도하게 됐다.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재현 회장은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주저앉아 살고 있는 셈이고, 이건희 회장은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을 아무런 이유없이 조카인 이재현 회장에게 실질적인 거주를 허용한 셈이다. 이 점은 그동안 이건희 회장이나 이재현 회장간에 있었던 여러 가지 정황에 비춰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또하나 궁금한 부분은 이병철 회장이 작고한 뒤 장충동 자택이 어떻게 3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물려지게 됐느냐는 점이다. 한국적 관습으로 비춰보면 장손인 이재현 회장에게 소유권이 넘어갔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어떤 과정을 거쳐 이건희 회장에게 이전등기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특히 이건희 회장은 한남동에 대규모 타운을 만들어 거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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