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IT업계의 모든 시선이 한 친목회에 쏠리고 있다. 바로 경기고의 ‘화정회’가 그 주인공이다. 8백여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화정회는 그야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IT모임의 ‘정수’라 부를 만하다. 재계를 비롯한 관가까지 IT업계의 수장들이 대부분 이곳에 적을 두고 있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을 비롯해 SK텔레콤, KT, 하나로통신 사장 등은 화정회의 대표 얼굴이다. 그렇다면 최근들어 왜 이 친목회가 IT업계의 이목을 모을까. 바로 이동통신시장의 태풍을 몰고 올 최대변수로 지목되는 SK텔레텍의 국내 판매규제를 놓고 SK텔레콤이 화정회 인사들을 통해 규제해지에 총력 로비전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IT업계의 빅뱅이 있을 때마다 주목받아온 화정회. 이 모임의 실체를 벗겨본다.

정·관·재계 회원만 800여명

화정회 회원들은 그야말로 ‘IT대표팀’이라고 할 만하다. 국내 IT사업을 총괄한다고 할 수 있는 정보통신부의 역대 수장들이 대부분 이곳 출신이라는 점 외에도 황금알을 낳는 사업인 이동통신 사업자의 수장들 또한 이곳 출신들이라는 점에서 이 모임의 파워를 가위 짐작할 수 있다.경기고 출신 IT업계 종사자들의 모임으로 이루어진 화정회는 경기고가 있던 화동의 ‘화’와 정보통신의 ‘정’자를 따 명칭이 지어졌다. 이 모임에는 현재 8백여명의 회원들이 활약하고 있으며 매월 조찬모임을 통해 서로간의 친목을 다지고 있다. 화정회는 언뜻 포럼형식의 단순한 정보교류의 동창회 소모임 정도로 치부될 수 있으나, 이 모임에 참가하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단순한 동창 모임 정도로 보기에는 상당한 무게가 느껴진다.

일단 국내 정보통신 산업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진대제 정통부 장관을 비롯해, 이상철 전 장관과 오명 전 장관까지 모두 이 모임의 회원들이다. 게다가 IT산업의 꽃이라 불리는 이동통신 사업체들의 수장 역시 모두 이 모임의 멤버이다. SK텔레콤의 김신배 사장과 남중수 KTF사장, 남용 LGT사장이 바로 그 주인공. 여기에 IT기반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초고속인터넷 사업체의 수장도 이곳에 적을 두고 있다. 이용경 KT 사장과 윤창번 하나로통신 사장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통신정책을 결정하는 국가기관에서부터 기반산업 분야와 활용산업까지 모두 화정회 인맥들이 포진해 있는 모양새다. 업계관계자들이 “화정회 동정만으로도 IT업계의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하다.

IT정책결정 막후 영향력

화정회가 최근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는 SK그룹 계열사인 휴대폰제조업체 SK텔레텍(SKTT)의 내수판매 규제와 일맥상통해 있다. SKTT의 규제해제 결정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이들이 대부분 화정회 소속 인물들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SKTT 내수판매 규제는 시장지배자인 SK텔레콤이 단말기제조업까지 병행할 경우 공정경쟁을 해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정보통신부가 이를 한시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으로 기한은 내년까지. 때문에 정통부는 SKTT에 대한 규제 연장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규제해지 결정은 정보통신부에서 관여하는 사안으로 여기에는 진대제 장관을 비롯해, 이해당사자인 이동통신 3사와 단말기 업체들이 관계되어 있다.

화정회 인맥들이 상당수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IT업계 관계자들이 화정회를 주목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정통부와 SK가 화정회를 통해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이번 SKTT의 규제해지에 대해서도 상당한 영향력 행사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정보통신부는 이 같은 업계의 시선에 대해 난감한 입장이다. 정통부 관계자에 따르면 “진대제 장관과 김신배 사장의 개인적 친분관계가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면서 “진 장관이 ‘쏠림현상’을 언급하며 연장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SK측에서는 김신배 사장이 직접 나서 업계의 의혹해소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2일 “SK텔레텍의 규제해제와 SK텔레콤의 시장지배력 전이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 것도 이 같은 IT업계의 의혹을 해소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특히 “공정 경쟁의 경우 정통부가 아닌 공정거래위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주장한 김신배 사장의 주장은 이후에라도 있을지 모르는 구설수에 대해 진 장관을 자유롭게 풀어주려는 일종의 배려차원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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