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 3’는 슬프다.치열한 시장경쟁 속에서 ‘빅 3(스리) 법칙’이 무너지고 있다. 시장점유율 1, 2위만 생존하는 이른바 ‘빅 2’ 시대가 가속화되면서 시장점유율 3위 업체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적당주의’를 용납하지 않는 경쟁구도의 속성상 3위 기업은 시장에 발붙일 틈이 없어지고 있다. 그래서 3위 업체는 외롭고 가슴이 아프다.LG경제연구원은 최근 <‘넘버 3’의 생존 전략> 보고서에서 치열한 시장경쟁구도 속에 위기를 맞고 있는 ‘넘버 3’의 유형과 실태를 분석했다.

유형1 :1강1중 체제

태평양과 LG생활건강 1, 2위 고수에 코리아나, 한불화장품, 한국화장품 등 3위권 업체 계속 하락부동의 넘버 1 기업과 확고한 넘버 2가 존재하는 시장에서 넘버 3는 그야말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신세로 전락, 생존이 위태롭다. 넘버 1과 넘버 2의 안정적인 경쟁구도 속에서 넘버 3는 시장에 설 자리가 별로 없는 것이다. 특히 1, 2위 업체들은 시장을 주도하면서 나름대로의 경쟁법칙을 구축, 넘버 3를 시장에서 몰아낸다.대표적인 부문이 화장품시장이다. 현재 이 시장의 주도권을 쥔 기업은 태평양과 LG생활건강. 이들 두 업체는 지금도 시장점유율을 늘려 가고 있다.

그러나 코리아나, 한불화장품, 한국화장품 등 3위권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은 계속 하락세에 있다. 한때 태평양과 함께 2위자리를 차지했던 한국화장품은 LG생활건강에 2위 자리를 뺏기면서 끝없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국내 자동차시장도 전형적인 ‘1강1중’의 경쟁구도를 보이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1강1중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늘려 가고 있는 동안, 3위권에 위치한 대우자동차, 쌍용자동차, 르노삼성 등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04년 말 현재 현대차와 기아차의 시장점유율 합계는 75%에 이르고 있으나 3위를 차지했던 대우차(GM대우)는 2000년 16%에서 2004년 말에는 9%선으로 밀려나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연간 25조원의 황금시장으로 부상한 국내 할인점시장도 신세계그룹 계열인 E마트의 독주속에 홈플러스가 자금력을 앞세워 추격하는 양상을 띠면서 넘버 3의 입지를 노리던 롯데마트, 까르푸 등은 위기를 맞고 있다. 까르푸가 현대백화점과 전략적 제휴를 모색중인 이유도 이같은 위기감 때문이다. 정수기시장에서도 웅진코웨이가 1위 자리를 고수하는 가운데 한국암웨이가 그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강력한 넘버 3였던 청호나이스의 경우 두 업체의 무차별적인 시장공세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

청호나이스의 운명은 바람앞의 등불 신세가 됐다.외국의 경우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세계 PC시장 점유율 3위를 고수하던 IBM이 지난해 PC사업에서 철수했다. 그동안 세계 PC사업을 주도해왔던 IBM이 델과 HP에 시장을 빼앗기면서 넘버 3로 밀려나자 급기야 사업 자체를 포기하게 된 것이다. 2003년 말 기준으로 이들 3강의 시장점유율은 델이 16.7%, HP가 16.2%, IBM이 5.8%였다. IBM의 PC사업은 중국의 레노보(롄상)가 인수합병했지만 시장평가는 그리 긍정적인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IBM의 PC사업 철수가 델과 HP에는 시장확대의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유형2:넘버1 독주체제

우지파동으로 삼양식품 몰락, 농심이 1위 차지시장점유율 60%…2위자리 놓고 치열한 싸움‘넘버 1’의 독주로 인해 ‘넘버 2’ 경쟁이 뜨거운 형태. 2위 자리를 두고 여러 업체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오히려 넘버 1의 위상이 더욱 커진다. 2, 3위 업체간의 치열한 경쟁은 결국 1인자의 입지를 더욱 다져주는 계기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같은 시장상황은 국내 라면업계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공업용 우지파동을 계기로 확고한 넘버 1 자리를 차지한 농심에는,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가 펼쳤던 2위 쟁탈전이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절호의 찬스였다. 후발주자임에도 삼양식품의 몰락으로 1위에 올라선 농심의 라면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말 60%대를 넘어섰다.

농심이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동안,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등은 넘버 2를 향한 치열한 각축전을 벌여야 했다. 따라서 향후에도 농심의 시장 지배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이고, 2위권 업체들의 혼전 양상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손해보험시장도 비슷한 상황이다. 삼성화재가 시장점유율면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동안, 현대해상, 동부화재, LG화재 등 2위권 업체들은 피비린내나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백화점업계에도 이러한 경쟁구도가 나타나고 있다. 롯데가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가운데, 현대백화점과 신세계가 2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백화점업계의 특성상 넘버 3는 설 땅이 매우 좁다. 오직 넘버 1과 넘버 2만이 시장에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유형3:넘버3의 틈새공략

홈쇼핑업체 1위 LG홈쇼핑, 2위 CJ홈쇼핑 현대홈쇼핑은 차별화 전략과 기획력으로 히트‘넘버 3’에 가장 좋은 시장구도는 시장점유율 1, 2위 업체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이다. 선두업체간의 점유율 격차가 크지 않고 그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면, 당연히 시장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할 수밖에 없다. 1위 고지 탈환을 위해, 서로 출혈 경쟁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1, 2위 업체가 상대와의 경쟁을 위해 역량을 소진하고 있는 동안 넘버 3는 조용히 차별화된 전략으로 신시장을 창출하고 새로운 게임의 룰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국내 홈쇼핑업계의 시장 판도가 그같은 모습이다. 2001년 이후 3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켜온 LG홈쇼핑과 강력한 2위 CJ홈쇼핑이 서로 1등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동안 현대홈쇼핑은 기존 강자와는 다른 차별화된 상품과 전략으로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늘려가면서 확실한 ‘넘버 3’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기존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던 ‘이민상품’ 판매 등의 획기적 상품출시는 그야말로 대히트였다. 게다가 저가 브랜드 판매라는 TV 홈쇼핑의 이미지 한계를 넘어서, 유명 브랜드제품으로 고급 이미지를 창출하는데 성공함에 따라 현대홈쇼핑은 독자적인 시장 지위를 얻는데 성공했다. 반면, 1, 2위 업체의 시장점유율은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였다. 이것을 단순한 넘버 3의 등장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미래의 새로운 넘버 1 탄생을 예고하는 시그널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국내 스포츠웨어 및 용품 시장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시그널이 현실로 드러났다. 2001년 시장점유율 기준으로 1위 업체 코오롱과 2위 화승간에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휠라코리아는 넘버 3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휠라코리아는 골프웨어를 중심으로 하는 의류분야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2003년 드디어 25.8%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며 확고한 넘버 1의 자리에 올라 설 수 있게 되었다. 넘버 3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넘버 1이 자리하게 된 것이다. ‘휠라코리아 신화’는 바로 이러한 시장분위기속에 탄생한 것이다.그렇다면 넘버 3가 점차 사라지는 현재의 경쟁 메커니즘 속에서, 과연 넘버 3가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첫째, 게임의 룰을 파괴하라

1위와 2위의 치열한 격전 속에서 ‘새로운 게임룰 메이커’로서의 ‘넘버 3’ 전략을 펴야 한다.기존 시장에서 일명 ‘게임 룰을 파괴하는 자(Game Rule Breaker)’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 강자들의 가혹한 제재와 저항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 2위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넘버 3에 대해 공동의 제재가 불가능한 상황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대홈쇼핑의 약진은 그러한 ‘게임룰 파괴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도 이같은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노키아(34.7%)와 모토롤라(14.5%)가 주도하고 있는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넘버 3 삼성전자(10.5%)의 약진은 주목할 만하다. 삼성전자는 노키아와 모토롤라가 주도하는 경쟁 메커니즘에서 탈피, 기술 컨버전스를 통해 고성능 카메라폰과 같은 프리미엄급 제품으로 시장을 적극 공략했다. 이러한 삼성전자의 차별화전략은 커다란 효과를 거두기 시작했고, 2004년 3분기에는 마침내 세계 시장점유율에서 넘버 2 모토롤라를 앞섰다.

둘째, 업체간 연합 전선을 구축하라

기존의 경쟁 체제에서 넘버 1, 또는 넘버 2가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M&A를 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세계 타이어시장에서 한때 넘버 3로 내려 앉았던 굿이어(17.1%)가 5위업체 스미토모(5.5%)와 통합, 시장점유율을 22.6%로 끌어올려 단번에 넘버 1의 자리에 올라섰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 이전까지 세계 타이어시장은 브리지스톤 18.6%, 미쉐린 18.3%를 차지했으며, 굿이어는 근소한 치이로 이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최근 PDP 모듈 업계에서 FHP와 마쓰시타의 합작사 설립도 그러한 전략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04년 초 PDP 모듈시장은 삼성SDI 24%, LG전자 23%, 마쓰시타 17%, FHP 15%의 순이었으나 마쓰시타와 FHP가 합작사를 설립함에 따라 한치앞을 내다보기 힘들게 되었다.

셋째, 신시장을 공략하라

넘버 3가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기존 영역과 시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을 찾아 가는 것이다. 지난해 대우일렉트로닉스(구 대우전자)가 내수시장을 벗어나 해외 시장공략으로 사업의 축을 전환한 것은 경쟁전략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국내 가전 시장에서 줄곧 넘버 3의 자리를 지켜온 대우일렉트로닉스는 폴란드 TV시장으로 시장거점을 전환, 지난해 말 폴란드에서 단번에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경쟁전략 측면에서 넘버 3가 반드시 특정지역에서만 넘버 1이 될 필요는 전혀 없다. 새로운 타깃지역을 발굴하고 그 지역을 전략거점으로 삼아 다른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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