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이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유려하게 착륙한다. 묘한 헤어스타일의 트펌프가 멜라니아의 손을 잡고 게이트에 모습을 드러낸다. 수많은 방송카메라와 구경꾼이 된 여행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 트럼프는 검은 색 방탄차량에 탑승해 숙소로 향한다.
 
곧 이어 김정은이 탄 참매1호가 4700여 Km를 날아와 창이공항 상공에 모습을 드러낸다. 대기 중이던 사람들의 환호와 경탄 속에 활주로에 내린 낯선 소련제 비행기의 입구에서 김정은과 이설주가 나온다. 환영인사가 이어지고 고조된 열기 속에서 김정은 역시 준비된 방탄차량을 타고 숙소로 향한다.
 
북미정상회담의 시작을 알리는 이 모든 상황은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당연히 전 국민이 눈과 귀를 싱가포르 쪽으로 돌리고 있는 한국에서도 트럼프와 김정은의 표정과 몸짓 하나 하나를 주목하고 있다.
 
이틀 후인 13일은 지방선거 일이지만, 뭐 어떤가. 선거는 이미 지난 4월 27일 경에 끝났다.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한반도를 둘러싼 평화의 물결은 6.13 지방선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집권세력이 종종 선거에 활용하던 ‘북풍’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할 정도다.
 
6.13지방선거는 시·도지사와 교육감 각 17명과 기초단체장 250여 명, 기초의원 690명, 광역의원 2927명을 뽑는 선거다. 이번에는 10여 명의 국회의원을 다시 뽑은 보궐선거도 함께 치러진다. 승패는 보통 시·도지사를 누가 많이 가져가느냐, 수도권 주요 기초단체장을 어느 쪽이 석권하느냐로 판단한다.
 
4년 전에는 야권이 17개 시도지사 중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서울을 비롯한 9개 지역을 가져갔지만 여당인 새누리당도 광역단체장을 하나 더 늘린 8개를 가져가고 기초단체장, 기초광역의원을 대폭 늘리는 성과를 거뒀다. 표면적으로는 무승부, 내용적으로는 새누리당이 이긴 선거였다.
 
이번 선거는 누구나 여당이 압도할 것으로 쉽게 예상한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2개를 가져갈 것이냐 3개를 가져갈 것이냐 설왕설래할 뿐이다. 드루킹에 연루된 김경수 후보의 당락이 이번 선거의 하일라이트다. 경남도지사마저 이기면 홍준표 대표는 당권 유지가 쉽지 않을 것이다.
 
여의도에서 도는 찌라시대로 당대표에서 사퇴하고 다시 전당대회에 나와 당권에 도전하는 시나리오는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방선거 역사상 전무후무한 참패 앞에서 야권은 비탄과 혼란에 빠질 것이다. 야권 앞에는 분열과 합종연횡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야권이 어떻게든 김경수를 무너뜨리기 위해 드루킹 특검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압도적인 패배가 예정된 야권에 선거 결과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지방선거 이후 보수대표성을 놓고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가 김문수 후보에 밀려 3위에 그친다면 안철수 후보와 바른미래당은 미래를 잃게 될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더 이상 유력 대권주자로 행세하기 어려울 것이다.
 
화끈함이 없는 한국 정치 특성상 잠정 은퇴를 선언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화려한 복귀를 꿈꾸지 않을까. 자유한국당은 김문수 후보까지 당권 주자로 나선 전당대회를 통해 지도부를 새로 구성하고 전화위복의 기회를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게 끝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치를 좌우하는 30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은 2020년 4월에 있다. 한국정치에서 2년은 길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무소불위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문재인 대통령으로 바뀌는 데 1년도 걸리지 않았다. 남은 2년, 여권은 ‘이대로 2년’을, 야권은 ‘2년은 길다’고 동상이몽을 꾸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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