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동해권·환서해권·군사분계선… 접경지역 ‘요동’
- 집권 여당 지방선거 공약에 대거 반영 ‘선거 마케팅’
 

4.27 남북정상회담 중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한반도 신경제공동체 구상’이 담긴 USB를 전달했다. 낙후된 북한의 사회간접자본시설(SOC)에 대한 남측의 대대적인 투자와 개발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의 반영이다. 통일연구원이 추산하는 통일비용은 831조 원, 이 중 북한 SOC 구축에 필요한 비용은 289조 원이다. 민간 부문에서 통일에 투자할 2790조 원을 제외한 수치다.
 
한반도 신경제구상의 핵심적인 내용은 ‘환동해 경제벨트’, ‘접경지역 평화벨트’, ‘환서해 경제벨트’ 등 이른바 ‘H형 벨트’로 묶어 개발해 통일시대를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아직 구체적인 실행 계획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접경지역과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개발이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환동해 경제벨트의 경우 금강산-원산, 단천-청진, 나진과 선봉을 남북 공동개발 후 동해안과 러시아를 잇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원산의 경우 동해선은 물론 서울과 강원도를 연결하는 경원선의 합류지로 교통의 요충지다.
 
환서해 경제벨트의 경우 수도권부터 개성공단, 평양, 남포, 신의주를 연결해 산업·물류·교통 벨트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남북공동선언문에 유일하게 경의·동해선 연결이 포함돼 당장 남북이 실행할 수 있는 경협사업이라는 점에서 해당 지역구민들의 기대감은 높아졌다.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은 2003년 단절 구간 공사가 완료돼 이미 연결이 끝난 상황이다. 남북이 합의한 만큼 철로에 대한 보수만 진행하면 열차 운행이 가능하다.
 
동해선은 강릉-금강산 구간을 잇는 게 핵심인데 북한이 금감산역부터 남한의 제진역까지는 2005년에 복원이 끝나 남북 간 철도 연결은 완료된 상태다. 이 때문에 동해선은 남측 미연결구간인 강릉과 제진 간 110.2km 구간만 선로를 새로 놓으면 남북 연결이 최종 완성된다. 강릉과 제진은 모두 남한지역이므로 유엔 제재 여부와 관계없이 공사가 가능하다.
 
접경지역 평화벨트는 휴전선 일대를 말한다. 접경지역은 DMZ 생태평화안보관광지구, 통일경제특구를 연결하는 환경, 관광벨트로 역할을 하게 된다. 환동·서해에 경제벨트에 비해 경제적 비중은 떨어지지만 한반도 평화의 상징적인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를 둘 수 있다.
 
남북경협이 접경지역, 개발제한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해당 경기, 인천, 강원도 등 지역은 큰 호재를 맞아 환호하고 있다. 특히 집권 여당에서는 6.13 지방선거를 한 달여 남겨두고 선거 마케팅의 주요전략으로 활용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대표적인 곳은 접경지역이 많은 강원도의 경우다. 최문순 더불어민주당 강원도지사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접경지역을 평화지역으로 선언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최 지사는 5월1일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 주민대표와 함께 이같이 결정했다. 현재 3선에 도전하고 있는 최 지사는 남북관계 훈풍과,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으로 대항마 없이 독주하며 무난하게 당선될 전망이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도 개발호재를 만난 강원도 민심은 전통적인 보수 색채를 버리고 집권 여당의 여도로 변하고 있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도지사 선거만 민주당 후보가 우세했을 뿐인데 이번에는 기초단체장뿐만 아니라 지방의원 선거까지 여당 후보가 압도적 우위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8명의 시장·군수를 뽑는 기초단체장 정당 후보 지지도를 보면 민주당 후보가 자유한국당 후보에 비해 평균 2배 이상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당 지지도 역시 마찬가지로 두 배 이상 민주당이 한국당을 크게 이기고 있다.
 
경기도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의선이 통과하는 파주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정상회담 전 3억 원이면 살 수 있던 토지가 최근 5배가 오른 15억 원에 팔렸다는 소문도 돌고 있을 정도로 요동치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는 강원도와는 반대로 경기지사 선거만큼은 한국당 계열이 강세였고 몇몇 군사도시와 접경도시만 보수당 후보가 차지했다.
 
도지사의 경우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임창렬 후보가 경기지사로 당선된 이후 한국당 계열 도지사가 내리 네 번 당선됐다. 하지만 올해 지방선거는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감으로 접경지역과 군사지역까지 여당 우세지역으로 바뀌고 있다는 게 지역정가의 분위기다. 대표적인 곳이 파주·동두천, 연천·포천, 의정부, 가평 등 보수 정당 후보의 우세지역이었지만 더 이상 보수 텃밭으로 한국당 내에서도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주당에서는 5월 말경 6.13지방선거 정책 공약에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대거 반영하겠다는 복안이다. 선거를 맞이해 취약지역이었던 ‘H경제 벨트’ 지역을 중심으로 통일과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교두보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당 정책위는 경기·인천·강원 등 북한과 맞닿은 접경지역 주민을 위한 맞춤형 공약을 통해 실현 가능성을 한 단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정책공약을 단계적으로 공개하되 5월 말경 전국과 지역 단위 공약을 한데 담은 정당 공약집을 대대적으로 발간 배포할 계획이다.
 
이처럼 문 대통령의 ‘한반도 신경제구상’이 현실화될 공산이 높아지면서 가뜩이나 여권 후보가 강세인 마당에 취약지역까지 ‘개발호재’를 들어 ‘여권 싹쓸이 현상’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신경제구상관련 전문가들 입장에서도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게 아닌 비판과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런 주장은 지난 2017년 9월에 열린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이행 방안’을 주제로 열린 세종정책포럼 비공개 토론 시간에 비판과 개선의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일부 전문가들은 “그동안 대북경협 프로젝트를 모아놓은 것으로 새로운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부터 “과거 구상으로 현실에 맞지 않는 것들도 있다”, “전반적으로 남한 중심주의가 깔려 있어 북한에서 실행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남북 경협을 위한 법제 미비와 관련 물적 인프라 부족”등을 지적했다.
 
남북 경협의 활성화에 따른 부동산 폭등도 문제다. 앞서 언급했듯이 발 빠른 부동산 큰손들이 대거 파주에 몰리면서 정부가 어렵사리 잡아가고 있는 부동산 시장이 출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 이익이 돈 많은 큰손 수중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 지역 주민들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믿음도 심어줘야 한다. 아울러 통일은 민족의 운명이 걸린 대사로 선거 승리를 위한 도구로 전락해서도 안 될 말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