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신임 금감원장 취임…금감원의 독립성 강조
윤석헌 신임 금감원장 취임…금감원의 독립성 강조
  • 장휘경 기자
  • 입력 2018-05-11 17:55
  • 승인 2018.05.11 17:55
  • 호수 1254
  • 62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신껏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 “금융시장 견제와 균형 통해 위험관리 역할 다해야”…행정의 마무리 수단 곤란
- 금융 전문성과 개혁성 두루 갖춘 인물…진보적 금융학계 이끈 리더 역할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2013년, 금융 분야 학자 및 전문가 143명이 모여 ‘올바른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안은 크게 3가지로 금융위원회 해체, 금융소비자보호 기능을 전담하는 금융소비자보호원(가칭) 설치, 셋째는 금융안정협의회(가칭) 법제화를 주장했다. 이때 발표된 선언문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던 윤석헌 전 서울대 객원교수를 지난 4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금감원장으로 제청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다. 이날 금융위는 윤 원장에 관해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대응해 금융 감독 분야의 혁신을 선도적으로 이끌어 갈 적임자로 평가됐다”라고 제청 이유를 밝혔다.
 

 
“법과 원칙에 따라 소신을 갖고 적절하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지난 8일 윤 원장은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윤 원장은 “(브레이크 밟기는) 때로 환영받기 힘든 일이지만 대한민국 금융과 경제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8년 이후 금융위원회의 하부 기관 구실에 머물러왔던 금감원이 윤 원장 취임을 계기로 상당한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며 감독 행정에 나설 것을 예고하는 발언이다. 금융회사에 대한 조사·검사 권한을 가진 금감원은 그동안 정치 권력의 해결사 노릇이나 금융위원회의 손발 구실에만 머무르며 금융 감독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래서일까, 윤 원장은 금융감독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그는 “금융감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독립성 유지가 필요하다”며 “금융감독이 단지 행정의 마무리 수단이 돼서는 안 되며 ‘견제와 균형’을 통해 위험관리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원장은 금융감독이 실패한 원인은 금감원이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금감원의 정체성을 재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감원은 국가 위험관리의 중추”
 
윤 원장은 “그동안 가계부채 문제 등 금융감독의 본질인 국가 위험관리가 제대로 수행되지 못한 면이 있다”며 “감독정책의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의 역할이 국가 위험관리의 중추라며 잠재 위험이 가시화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현실화된 위험에 엄중하게 대처하는 것이 본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금감원은 이 역할에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수많은 과제에 포획돼 금융 감독의 지향점이 상실되면서 감독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가계부채 문제가 국가 경제를 위협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저축은행 사태나 동양그룹 사태와 같은 금융 소비자 피해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금감원을 둘러싼 다양한 외부 이해관계자들로 인해 금융감독 본연의 역할이 흔들리는 경우가 있었고 금감원 또한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시장에 혼선을 초래한 점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는 윤 원장이 학자 시절 꾸준히 지적하던 금감원의 문제점이자 진보 성향 금융학자들이 일관되게 지적하던 내용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 개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금융정책에 금융감독이 휘둘리는 현재의 금융감독 체계의 개편이며 금감원의 독립성 확보”라며 윤 원장과 같은 인식을 드러냈다.
 
윤 원장은 “금융소비자 피해 사례가 이어지면서 금융감독원에 대한 신뢰가 자라지 못하고 있다”며 금감원 신뢰를 되찾기 위한 방법으로 공직자의 도덕성 확립을 제시했다.
 
그는 “금융 법규를 집행하는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청렴함과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 감독, 검사의 질적 수준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윤 원장은 “금융감독의 전반적인 역량 강화를 위해 감독 유관기관들과의 정보공유와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며 “원장으로서 금융감독원 임직원이 금융감독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금융 혁신’ 밑그림 그린 학자
 
윤 원장은 1948년생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온 뒤 미국 산타클라라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윤 원장은 줄곧 대학과 연구소 등 학계에서만 활동해 왔다. 교수 경험만 있는 인사가 금감원장에 임명된 것은 윤 원장이 처음이다. 이런 이유로 윤 원장의 조직 관리 능력에 의구심을 드러내며 자질론을 펴는 주장도 일부에서 제기된 바 있다. 공직 경험이 없고 학자 출신인 윤 원장이 금감원 수장 역할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드러낸 것.
 
금감원의 한 간부는 “금융감독의 현장은 교과서와는 거리가 멀다. 정부의 압력과 업계의 로비, 금감원 직원들의 관성적 태도 등 윤 원장이 앞으로 넘어서야 할 장벽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원장은 청와대가 줄곧 금감원장 잣대로 내세운 금융 전문성과 개혁성을 두루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한림대 경영대학장과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한국금융학회 회장도 역임했다. 현 정부에선 금융위원장 직속 금융행정인사혁신위원회 위원장과 금융위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진보적 금융학계를 이끈 리더 역할도 꾸준히 해 왔다. 특히 윤 원장은 학자 시절 금감원의 독립성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금융감독체계 개편과 관치 금융 청산을 위한 목소리를 내 왔다.

윤 원장은 지난해 말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금융위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여러 권고 사안을 내놓은 바 있다. 금융행정혁신위는 금융위가 기존 금융행정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민간 자문기구다.
 
금융행정혁신위는 당시 금융사 근로자 추천이사제 도입을 권고했고 케이뱅크 인가 과정에서의 절차적 문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 등을 금융위에 권고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융행정혁신위 권고안에 대해 “최대한 수용하겠지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건 등 일부는 당장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금감원ㆍ금융위, 의견 충돌 심화
 
이러한 가운데 윤 원장이 취임함으로써 금융감독 체계 개편 논란이 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윤 원장은 평소 금감원의 독립성 강화와 금융위의 축소를 주장한 대표적 인물이다.
 
윤 원장 취임 다음 날인 9일 최 위원장과 윤 원장은 상호 존중하고 소통 채널을 활성화하는 등 양 기관 간 협력을 강화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최 위원장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관련 금감원의 처신을 공개적으로 강하게 비판하면서 향후 금융위와 금감원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회계 위반을 뜻하는 조치사전통지서를 전달하고 이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이 과정에서 금융위와 사전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논란도 함께 불이 붙었다. 원승연 금감원 부원장은 “사안 자체가 크고 투자자 다수가 연관돼 이들을 보호할 방법을 찾다 내린 고육지책”이라며 “(이번 사안과 관련해) 금융위와 지속적으로 협의 중이며 현재도 그렇다”고 강조했다.
 
반면 최종구 위원장은 “사전통지 업무는 증선위(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가 금감원에 위탁한 업무인 만큼 금감원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라면서도 “다만 이번 건의 경우 전례없이 사전통지 사실을 공개했고 시장에 충격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금감원의 결정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전통지로 문제가 생긴 만큼 지금처럼 금감원에게 사전통지를 맡겨놓을지 여부는 별도로 검토해 봐야 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윤석헌 원장이 취임사를 통해 밝힌 금감원 ‘독립성 강화’에 대한 의미에서조차 최 위원장은 “금감원은 금융위 설치법에 따라 설치된 기관”이라며 “정책 업무를 수행하는 데 두 기관 간 선을 긋기보다는 유기적으로 협조해 나가야 한다”고 밝히며 입장 차가 극명함을 나타냈다.
 
한편 앞서 삼성증권 배당사고 결과 발표에서도 금감원 검사단과 금융위 검사단은 따로 검사를 실시하고 다른 결과를 발표하는 등 엇갈린 행보를 보였다.
 
금감원은 주문 수량이 1주에 불과하고 상한가 주문 후 지체 없이 취소한 1명을 제외한 21명의 직원들에 대해서는 매도의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해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로 금주 중 검찰 고발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금융위는 중간 조사 결과 삼성증권 직원들이 주식매도를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거나 시세 변동을 도모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혀 금감원과는 다른 온도차를 드러낸 바 있다. 다만 금융위 관계자는 “유령 주식을 대량 매도해 삼성증권 주가를 왜곡한 행위에 대해서는 시장질서교란행위 해당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위와 금감원의 의견 충돌 이슈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두 기관의 특성 상 기본적으로 일정 부분의 시각 차이가 있는 데다 개혁 성향의 윤 원장의 취임을 계기로 금감원이 감독 당국으로서의 독립성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은산분리 완화 문제, 금융회사 노동이사제 도입, 초대형 IB 등 주요 쟁점들이 금융권에 산적해 있는 만큼 양대기관의 갈등이 깊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윤 원장은 현 정부의 세 번째 금감원장이다. 첫 금감원장이었던 최흥식 전 원장은 하나금융 채용비리 의혹에 연루되며 6개월 만에 낙마했다. 전임 김기식 전 원장은 국회의원 시절 외유성 출장과 임기 말 셀프 후원금 논란으로 2주 만에 불명예 사퇴했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