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신고했더니…배신자로 낙인찍힌 ‘영웅’

<뉴시스>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교육부 공무원이 사학 비리 제보자의 인적 사항 등을 해당 대학 측에 유출한 정황이 드러나 중징계를 받을 전망이다. 이처럼 공공이익을 위해 대학의 비위 사실을 꼬집었지만 사실상 제보자들은 징계나 보복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다. 경찰 내부에선 제보자들이 내부 고발 후 보직 해제, 파면 등 불합리한 처사에 시달리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원 아웃’ 제도 도입, 보상금 제도 개선 등의 조치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 교육부 내부자료도 전송…저녁 식사까지 대접
- ‘보복성 징계’에 노출된 제보자…“보상금 제도 개선돼야”



교육부는 지난 7일 “비리 사학에 내부 정보를 넘겨준 의혹을 받는 이모 서기관의 혐의 일부를 확인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며 이모 서기관에게 정보를 건네받은 A대학 경영관리실장에게도 학교 측에 징계할 것을 요구했다”는 내용의 ‘정보 유출 및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달 16일 ‘사학비리로 실태조사를 받은 사립대 관계자에게 내부 제보자 정보를 유출한 교육부 직원이 있다’는 제보를 접수하고 약 3주간에 걸쳐 사안조사를 진행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모 서기관은 지난해 경기도 소재 B 사립대의 내부비리 신고내용을 아는 상태에서 B대학과 같은 학교법인 소속의 A대학 관계자 ㄱ씨를 수차례 만났다.

이모 서기관과 ㄱ씨는 대학 선후배 사이로 확인됐다.

특히 이모 서기관은 지난해 11월 B대학의 실태조사 결과 발표 이틀 후 세종시 내 식당에서 ㄱ씨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교육부 조사 결과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사실도 확인됐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정보 유출 사실을 극구 부인하고 있어 교육부는 세밀한 진상 규명을 위해 이모 서기관과 ㄱ씨를 상대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식사 비용 4만3000원(1인당 2만1500원)은 ㄱ씨가 냈다.

현행 청탁금지법에서는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 3만 원 이하의 식사 접대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에 교육부는 이모 서기관에게 청탁금지법위반으로 과태료 부과를 요구했다. ㄱ씨 역시 같은 법 위반으로 경징계인 문책과 함께 과태료를 부과케 했다.
 

제보자 인적사항
핸드폰으로 전송
 


이모 서기관의 정보 유출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교육부는 지난해 충청권 소재의 C대학 총장의 비위행위가 언론에 보도되자 제보자의 인적사항과 교육부의 조치계획 등이 담긴 내부 자료를 만들었다.

당시 이모 서기관은 이 대학의 교수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묻자 교육부 내부 자료를 휴대폰으로 찍어 해당 교수에게 전송했다.

게다가 이모 서기관은 2019학년도 전문대학 학생정원 배정 원칙과 배정 제외 대학 기준 등이 담긴 검토단계의 내부자료를 충청권 소재의 또 다른 대학인 D대학 교수에게도 휴대폰으로 보냈다.

교육부는 이 사건에서도 이모 서기관과 D대학 교수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판단, 검·경에 수사를 의뢰했다.

다만 C대학 교수는 수사의뢰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와 관련해 임용빈 교육부 감사관실 과장은 “C대학 교수가 먼저 자료 요청이나 질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서기관이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송했다. 해당 교수는 이 메시지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교육부는 이 같은 일련의 행위가 국가공무원법(성실의무·품위유지의무)과 국가공무원복무규정, 공무원 행동강령 등을 위반하는 일인 만큼 이모 사무관에게 중징계를 내릴 방침이다.

임 과장은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반부패청렴담당관실의 조사 결과가 최종 확정될 경우 해당 공무원한테 무거운 징계가 내려질 수 있다”며 “사안의 경중에 따라 형사처분까지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내부고발자의 정보가 유출됐다는 사실은 교수·시민단체 등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신원 보장을 약속하고 집단의 부조리를 모두 폭로했지만 오히려 비리 사실을 밝힌 제보자가 피해자가 된 형국이라는 점에서다. 류석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법률대응팀장은 “교육부 공무원의 제보 유출은 ‘내부고발을 하면 이렇게 된다’는 신호를 주는 것과 같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이같이 노출된다면 결국 모두 입을 다물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현재 내부고발자의 신분을 보호하는 법률로는 공익신고자보호법과 부패방지권익위법이 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은 공익을 침해하는 284개의 행위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하면 민간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부패방지권익위법은 부패행위를 공공기관에 신고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홍성학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은 비리를 신고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전했다. 학내 제보자를 색출해서 ‘보복성 징계’를 해온 것이 그동안 공공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배신자’로 낙인찍혀
파면·해임된 제보자

 

실제 E대학 교수 6명은 지난 2013년 학교 비리 문제를 제기했다가 신분이 드러나면서 파면·해임 등 중징계를 받은 바 있다.

이뿐만 아니라 동구마케팅고교를 운영하는 동구학원의 비위를 교육부에 제보했던 안모 교사는 지난 2012년 내부 고발 뒤 곧바로 ‘배신자’로 낙인찍혀 두 차례 파면과 직위해제 등의 보복을 당했다.

이를 두고 홍 위원장은 “내부자가 색출돼도 압박은 바로 못한다. 다만 우회적으로 트집을 잡을 방법을 찾으려고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그런 방식으로 그간 학내 제보자를 보복해 왔다”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그는 국회가 지난 2014년 이른바 ‘교피아 방지법’으로 불리는 공직자윤리법을 두고선 ‘반쪽짜리 규제’라며 비판했다. 퇴직 관료들은 여전히 대학 교원 등으로 취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퇴직 관료들이 사학에 재취업해 교육부와 대학 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정보 뒷거래’를 하는 경우 추적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교수단체들은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과 감사권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위원장은 “교육 정책은 국가교육회의에서 제정하면 된다. 교육부가 이 정책을 지원 및 실행만 하게 된다면 대학정책실 등은 없어지게 될 것”이라면서 “A대학 관계자 ㄱ씨는 대학지원사업 등을 교육부에 문의해야 하는 위치였다. 이 때문에 이모 서기관과 친목이 두터울 수밖에 없었다. 교육부의 감사권을 빼앗으면 지원 사업과 관련한 자리에서 최소한 감사 이야기를 배제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한 번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 다시 학교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원 아웃’제도 도입에도 찬성의 목소리를 냈다.

이 밖에 보상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한만수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는 “내부고발에 대한 보복으로 생계가 위험에 처한다면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따라 보상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보상 금액 비율이 높지 않고 산출 기준도 모호하다. 내부고발자 보호제도가 잘 갖춰진 선진국처럼 고발에 따른 사회적 비용의 절감과 공익적 가치 등까지 고려해 상당한 금액을 보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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