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과 남대문이 심상치 않다. 땅 값이 들썩여서가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소위 ‘경제 대통령’인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경제 부통령’격인 박 승 한국은행 총재가 자리하면서 냉기를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최근 재경부와 한은의 엇박자는 우리 경제의 액티브한 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바라보고 있는 국민으로 하여금 불안과 걱정을 낳기도 한다.이헌재 부총리와 박 승 총재, 대체 이들은 왜 부딪치고 있을까. 이 총리와 박 총재간 이견을 보이는 경제 정책 중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게 콜금리 정책이다. 지난달 15일 오전 10시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콜금리를 기존대로 3.25%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콜금리는 지난해 11월 연 3.50%에서 연 3.25%로 0.25%포인트 인하된 이후 석 달째 동결된 것. 한국은행 금통위의 콜금리 동결 발표는 공식적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하지만 이 얘기를 접한 정부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해야했다.

박 승 한국은행 총재가 콜금리 동결을 발표할 당시, 이헌재 부총리가 이끄는 재경부에서는 전혀 다른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같은 날 재경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아침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등장했다. 이 관계자는 프로그램 진행자가 콜금리에 대해 언급하자, “콜금리, 즉 통화정책은 한은의 고유 업무여서 재경부가 뭐라 말하긴 곤란하지만, 경기 부양을 위해선 추가로 콜금리 인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프로그램 막판에는 사족을 덧붙여 “한은도 이 같은 정부 정책을 잘 이해하고 통화정책 방향을 잡아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혀 콜금리 결정을 앞둔 한은을 향해 은근히 압박 아닌 압박을 가했다.이는 재경부가 콜금리 인하를 통해 한은이 국민에게 시장에 적극적인 경기부양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하지만 이에 응수라도 하듯 한은은 이날 콜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박 승 총재는 이 날 발표에서 약간 상기된 얼굴로 “우리 경제가 아직 봄(春)은 아니지만 대한(大寒)은 지난 거 아니냐”며 재경부의 콜금리 인하 요구의 당위성을 단숨에 배제해 버렸다.아울러 박 승 총재는 “주식시장과 부동산에 금리 정책을 쓸 단계가 아니다”며 “특히 부동산 부문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해 경제 및 통화운용 정책의 딜레마를 드러내기도 했다.

즉 부동산 버블이 예상된다면 언제든 금리 인상 카드를 쓸 수 있음을 내비친 셈이다. 이는 경기회복 속도와 여타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조만간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자칫 회복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이헌재 부총리의 ‘금리인하’ 기대에 대해 박 승 총재는 ‘금리동결’로 답을 한 것. 관가의 관계자들은 박 총재가 조목조목 밝힌 답변을 곱씹으며 그가 이헌재 부총리에 대해 ‘원펀치’를 날렸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재경부의 몇 몇 관계자들은 부서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전제로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불과 이틀 뒤였다. ‘박 승 대 이헌재’의 정면 충돌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이번에는 이헌재 부총리가 박 승 총재에 대해 정면 공격을 하고 나섰다. 지난달 17일. 이 부총리는 국회 대정부 질의 답변에서 한은을 공격하고 나섰다.얘기의 골자는 지난 1월에 금리가 급등했던 이유가 단순히 국채 수급 악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금리 당국자의 ‘부적절한 발언’ 때문이었다고 언급한 것.

이 부총리가 지목한 ‘부적절한 발언’의 당사자는 박 승 한은 총재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는 게 당국과 시장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중론이자 견해다.콜금리 정책에 이어 급작스런 금리 급등이 이제는 재경부와 한은간 ‘책임 공방’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재경부와 한국은행 주위에는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이들이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상대방을 전면 공격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그동안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첨예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재경부와 한국은행은 콜금리 조정 문제뿐 아니라 외환시장 개입 문제를 놓고도 엇박자를 자주 냈다.이헌재 부총리는 달러-원 환율이 급락할 때마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시장을 안정시켜야만 경제가 안정을 찾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반면 박 총재는 한은 출입기자 대상 브리핑이나 국회업무 보고에 나가서도 “외환시장은 시장 논리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어야 하며, 현재 달러-원 환율은 우리 경제에 큰 무리가 없어 보이는 수준”이라고 강조해왔다.

여하튼 이 부총리와 박 총재는 카리스마가 강하고 항상 언론이 주목하는 ‘뉴스메이커’들이다.또 지금은 수면 아래 가라 앉아 있지만 자존심들이 강해 서로에게 언제든 ‘맞불’을 놓을 수 있는 성격을 지녔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공직 사회에서는 경륜 9단인 이른바 고수들로 통한다.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남은 3년 임기 동안 커다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이중 단연 가장 큰 이슈는 북핵 해결과 경제 회복 여부다.따라서 대한민국 경제 투톱이자 ‘경륜 9단’인 이 총리와 박 총재가 ‘노짱’의 심기를 건드려 가면서까지 서로 대립의 각을 세울 필요는 없어 보인다는 게 관가 안팎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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