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욕타임즈는 ‘대통령은 법 위에 있지 않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특검 해임 움직임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로버트 뮐러 특검이 ‘러시아 게이트’(2106년 대선에서 트럼프 측이 러시아와 공모했다는 혐의)에 대한 수사의 칼끝을 자신에게 겨눈 데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그를 맹비난하며 해임을 시사하자 강력한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사설은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만에 하나 뮐러 특검을 해임한다면 이는 미국 정부의 뼈대를 흔드는 행위이며, 미국 시민들 중 유일하게 법 위에 군림하게 되는 선례를 남기는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앞서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이 ‘러시아 게이트’와 관련,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하려 하자 그를 전격 해임한 바 있다.
이 같은 트럼프의 행위를 뉴욕타임즈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의한 ‘권력남용’으로 진단하고 있는 듯하다. 트럼프가 소속된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우려하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렇듯 미국에서만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 논란이 일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역시 이른바 ‘드루킹 댓글조작’ 파문으로 ‘제왕적 대통령제’가 다시 한 번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당초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경찰청장의 태도가 논란의 불을 지폈다.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 ‘댓글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전 민주당원 ‘드루킹’을 잡아놓고도 보름간이나 쉬쉬했다. 11억 원에 달하는 사무실 운영비 출처와 계좌추적 조사도 미적거렸다. ‘드루킹’과 연결됐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김경수 의원의 해명을 재차 학인해주는 식으로 일관하다가 김 의원이 드루킹과 시그널이라는 메신저로 비밀대화를 한 사실이 드러나자 그제야 김 의원 소환조사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미적미적 수사’에 ‘축소·은폐 수사’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없었다.
이 청장이 이 같이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는 것은 경찰 인사와 관련이 있어서라는 게다. 서울경찰청장이 차기 경찰청장으로 유력한 자리가 아닌가. 게다가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까지 걸려 있어 이 청장이 청와대의 눈치를 본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미국 대선 막판에 집권당인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불리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법 집행 기관으로서 엄정한 수사 태도를 보여준 미국의 FBI와 너무도 대비되는 터다. 미 FBI는 비록 수장이 해임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살아 있는 권력인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서 수사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 서울경찰청장의 처신은 또 자칫 권력기관장 인사제도에 대한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본다.
현행법상 경찰청장을 포함해 국가정보원장, 감사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등 이른바 5대 권력기관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 있다. 대통령이 이들의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으니 어느 정권에서나 권력기관장들이 대통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살아있는 권력에는 납작 엎드려 있다가도 정권이 바뀌면 그 정권 인사들을 향해 칼을 들이대는 악순환이 계속돼 온 것이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대통령의 권력기관장의 인사권을 그대로 유지한 채 4년 연임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내놓았다. 이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8년으로 늘린 것에 불과해 계속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권력기관장에 앉히겠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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